러시아 '바그너 그룹'의 초라한 새출발? - 계란으로 바위치기 vs 나토 동부전선 위협
러시아 '바그너 그룹'의 초라한 새출발? - 계란으로 바위치기 vs 나토 동부전선 위협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7.2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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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푸틴 체제'를 위협했던 러시아 '바그너 용병'(바그너 그룹)들의 6·24 군사반란은 일부 세력의 인접국 벨라루스 이동을 끝으로 완전히 정리되는 모양새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19일 자신을 따라 벨라루스로 온 전사들을 환영하면서 동시에 새 출발을 다짐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이날 어둠이 짙게 깔린 야외에서 전사들을 향해 "벨라루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우리는 명예롭게 싸웠다. 여러분들은 러시아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치하했다. 또 "전장에는 여전히 치욕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우리는 다시 특수 군사작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사이에 벨라루스 군대를 세계 두 번째로 강력한 군대로 만들고, 필요하다면 그들을 위해 싸우자"고 말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야외에서 연설하는 프리고진(위)와 연설을 마치면서 두손을 번쩍 들고 있다/텔레그램 영상 캡처

영상을 보면 그는 야외에 모인 전사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하고 있는데, 한 용병의 질문에 "우리는 전세계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며 "아프리카를 향해 힘을 모으자"고도 했다.

이날 발언으로 미뤄 그를 따르는 '바그너 전사'들의 벨라루스 이동 작전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우크라이나의 또다른 매체 rbc-우크라(러시아어판)은 19일 '바그너 그룹'의 6번째 부대 행렬이 벨라루스의 오시포비치 인근 '야전 캠프'에 도착했다며 "최소한 2,000 명의 무장 세력이 벨라루스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벨라루스 군사정보 감시단체인 '벨라루시안 가윤'은 "100~120대의 차량으로 이날 들어온 행렬이 마지막 부대"라고 주장했다. 

rbc-우크라에 따르면 벨라루스 용병은 전날까지 5차례에 걸쳐 최소 382~400대의 차량으로 2,000~2,500명이 벨라루스에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 200명은 독자적으로 야전캠프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벨라루스로 향하는 '바그너 그룹'(위)와 모스크바로 진격하던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영상 캡처, globeecho com

이 정도의 규모는 지난 6월 24일 모스크바로 향해 진격하던 '바그너 그룹' 군사력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러시아 언론들은 '바그너 그룹'이 군사 반란 당시, 탱크와 보병 장갑차량, 다연장로켓(MLRS) 군용 트럭, 버스 등 1천여대의 장비를 4개 부대로 편성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결국, 대부분의 바그너 전사들이 군사장비들을 러시아 국방부로 이전한 뒤 국방부 소속으로 갈아탄 것으로 추정된다. 

프리고진의 벨라루스 행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6·24 군사반란 중재 과정에서 '바그너 그룹'의 사면및 벨라루스 망명안을 제시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전투력 있는 '바그너 그룹'의 전선 투입을 계속 원했다는 것. 이를 거부한 것은 프리고진이었다.

스트라나.ua는 20일 "군사반란 닷새후인 6월 29일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주요 지휘관들을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크렘린은 면죄부를 준 것으로 간주됐다"면서 그러나 "그후 진행된 과정은 정반대였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국영 언론들이 마치 입을 맞춘 듯이 프리고진을 비난하고 나선 게 6월 29일 이후였다는 것.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졌다. 푸틴 대통령이 현지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와의 회견에서 "바그너 그룹의 존경받는 지휘관중의 한명인 호출 부호 '세도이'(백발이라는 뜻, 본명은 안드레이 트로셰프 전 대령)의 총지휘 아래, 바그너 전사들이 예전처럼 함께 생활할 것을 제안했으나, 앞줄에 앉아 있던 프리고진이 이를 거부했다"고 공개했다.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 회동 결과에 극도로 실망했고, 프리고진도 자신을 따르는 일부 전사들과 함께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분석이다. 

'바그너 그룹' 6번째 부대 행렬의 이동 경로. 러시아에서 벨라루스로 향하는 43번 고속도로를 이용했다/사진출처:우크라이나 매체 rbc-우크라
바그너 그룹의 차량 행렬/사진출처:텔레그램 영상 캡처

'바그너 그룹'의 벨라루스 이동이 포착된 것은 지난 13일 쯤이다. 러시아와 점령지 루간스크주(州) 캠프에 머물던 '바그너 그룹'은 전날(12일) 보유한 중화기를 러시아 국방부에 이전한 뒤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약 1주일간에 걸쳐 벨라루스가 마련해준 오시포비치 인근의 '첼'(Цель) 야전 캠프에 짐을 풀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 '이제는 말할 수 있다'(Можем объяснить)는 18일 러시아의 '바그너 그룹' 본부는 완전히 해체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주(州)에 있는 '바그너 그룹' 지휘 본부 캠프에서 '바그너 깃발'이 전날(17일) 내려졌고, 용병 채용도 중단됐다. 채용 안내 전화는 "연결을 기다려달라"는 메시지만 나오고, 소셜 미디어 '브콘닥테'(VK)의 계정도 차단됐다. 

스트라나.ua는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군사반란이 실패한 후 푸틴 대통령이 요구한 대로 '바그너 그룹'은 해체됐고, 숙련된 전사 대다수는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했으며,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만 벨로루시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벨라루스에 짐을 푼 '바그너 그룹'의 향후 진로는 어떻게 될까?
우선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지금과 같은?) 치욕적인 패배를 거듭하면서 자신들을 다시 불러주기를 기다리면서 벨라루스군의 훈련에 나설 것(프리고진 발언)으로 예상된다. 때맞춰 루카셴코 대통령이 18일 러시아와 합동 훈련소 운영에 관한 협정을 비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지난 3월 양국 간에 체결된 이 협정은 벨라루스와 러시아 내 군부대에 공동으로 훈련소를 만들어 운영하기로 한 것으로, 벨라루스에 2곳, 러시아에 1곳 등 총 3곳에 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벨라루스군의 훈련은 '바그너 그룹'의 주력 부대에게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바그너 그룹 야전 캠프/사진출처:우크라 매체 rbc-우크라
벨라루스군 훈련에 나선 '바그너 전사'/사진출처: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군정보국(GUR)은 "바그너 전사들은 주로 벨라루스군 훈련을 맡을 것이지만, 나토(폴란드, 리투아니아) 국가들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군 장성 출신의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군사위원장은 벨라루스 주둔 목적을 더욱 분명히 했다. 그는 16일 러시아 국영TV에서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군을 훈련하는 것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바우키 회랑에 대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수바우키 회랑은 벨라루스에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거쳐 러시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이어지는 약 100㎞에 이르는 구간으로, 유사시 칼리닌그라드 안보의 목줄을 쥔 곳이나 다름없다. 

카르타폴로프 위원장은 "유사시 이 회랑을 수 시간 내에 점령할 수 있는 병력이 필요하다"며 "바그너 그룹이 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폴란드도 '바그너 그룹'의 주둔에 대응해 1천명의 병력과 200대의 군사 장비를 벨라루스 접경 지역에 추가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트라나.ua도 20일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훈련 교관 역할에 만족하면서 지내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일을 저지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벨라루스 접경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를 습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수천명의 전사들로 충분하다는 것.

다만, 우크라이나측 국경은 이미 요새화되어 있어 바그너 전사들이 돌파하기가 쉽지 않고, 우크라이나 습격 자체도 전시 상황에서 별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설사 벨라루스와의 접경 지역 방어를 위해 우크라이나군이 주요 전선에서 병력을 빼 지원군을 보내더라도, 이는 프리고진이 원하는 시나리오(러시아군의 치욕적인 패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은 것은 우크라이나 군정보국(GUR)의 예측대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와 같은 나토 국가와의 국경에서 '치고 빠지는' 식의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이다. 이는 지난 2021년 폴란드를 향해 '난민공격'(난민들을 폴란드 국경지대로 내몰았던 사건)을 시도한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나쁘지 않고, '가짜 깃발 작전'으로 그 책임을 다른 곳으로 전가할 수도 있다. 

벨라루스 국방부가 20일 폴란드 접경 지역인 '브렛스키'(Брестский) 훈련장에서 바그너 그룹이 자국 특수부대와 1주일간 전투 실전 훈련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벨라루스 국방부가 지난 14일 아시포비치 인근 군사 지역에서 벨라루스 신병들을 교육하는 영상을 배포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폴란드 집권 '법과 정의'당도 오는 10월 총선을 앞두고 '바그너 그룹'의 도발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서로 이해가 맞으면, '작은 사건'이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스트라나.ua는 예상했다. 크렘린에게는 거꾸로 곤혹스럽다. 자칫하면 나토와 직접 충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벨라루스 주둔 바그너 전사들의 운명을 뒤흔들 변수는 러시아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푸틴 대통령이 새로 지목한 '바그너 그룹' 지도자이자 호출 부호 '세도이'의 '러브 콜'이다.

호출 부호 '세도이'로 알려진 안드레이 트로셰프/사진출처:스트라나.ua
크렘린에 초대받은 트로셰프(푸틴 대통령 왼쪽)과 우트킨(맨 오른쪽)/사진출처:스트라나.ua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프리고진 휘하의 유능한 지휘관 중 하나인 그는 벨라루스로 간 드미트리 우트킨과 거의 같은 급이다. 우트킨과 함께 지난 2016년 12월 크렘린 리셉션에 초대받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체첸 전쟁 참전으로 다수의 국가 훈포장을 받았고, 시리아 내전에 참전했다가 유럽 ​​연합(EU)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세도이'가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한 '바그너 전사'들의 전열을 재정비한 뒤 벨라루스로 간 동료들에게 연락하면, 그들이 흔들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따분한 벨라루스 생활에 지치고, 계약이 만료된 용병들이 러시아로 돌아가 이전의 '바그너 전사'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장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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