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 최고 책임자 잘루즈니 총참모장을 앞으로 법정에 세운다고? 왜?
우크라이나군 최고 책임자 잘루즈니 총참모장을 앞으로 법정에 세운다고? 왜?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9.2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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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확실한 전쟁 '투 톱'이 흔들리고 있다.

알렉세이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서방의 군사지원을 둘러싼 추문과 군납비리 연루설 등 부정부패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난 5일 옷을 벗었고, 발레리 잘루즈니 총참모장(합참의장 격)도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헤르손 지역)을 개전 초기 허망하게 러시아군에게 넘겨준 데 대한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자칫하면 전쟁 중에 장수의 목을 베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의 악수가 될 판이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 21일 소식통을 인용, 우크라이나 국가수사국(SBI)과 안보국(SBU, 정보기관)이 남부 지역의 방어 실패에 대한 책임 규명을 위해 잘루즈니 장군을 심문하는 등 1년 반 동안 조사를 진행해 왔다고 보도했다. 현지 정치권에서는 이를 아예 '잘루즈니 사건'으로 부른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총참모장 간의 긴밀한 협의(위)와 생일 선물로 '권총'을 주는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이튿날(22일) 현지 매체 스트라나.ua는 이 '잘루즈니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사법당국이 잘루즈니 장군을 사실상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잘루즈니 장군 외에도 세르게이 나예프 방위군 사령관과 남부군 사령관을 지낸 안드레이 코발추크 장군과 안드레이 소콜로프 장군 등 50여명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 발발과 함께 우크라이나군 최고 지휘부에서 잘루즈니 장군을 도운 여럿 장성들도 조사 대상이 됐다. 

이 사건은 개전 당시 헤르손주(州) 지방행정부 수반(주지사 격)이었던 겐나디 라구타가 지난 16일 수도 키예프(키이우)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불거졌다. 라구타 전 수반은 러시아군이 공격을 개시했던 지난해 2월 24일, 재빨리 도망쳤다는 폭로성 보도가 나왔고, 그해 7월 초 젤렌스키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그도 당연히(?) '잘루즈니 사건'의 조사 대상이 됐고, 자살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주목을 끄는 것은 '잘루즈나 사건'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잘루즈니 장군의 치솟는 인기를 시기해서 '법정'에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레즈니코프 국방장관이 물러나고, 그 뒤를 군사 부문에서 초짜인 루스템 우메로프가 맡으면서 잘루즈니 장군이 전쟁 '원 톱'이 되는 게 버겁다는 분석이 더욱 구체적이다. 전쟁이 끝난 뒤 잘루즈니 장군이 높은 인기를 업고 정치권에 뛰어들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재선을 위협하는 심각한 경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사진출처:페북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유명 블로거 칼 볼로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잘루즈니 장군의 인기는 그들(대통령실)에게 위협이 된다"고 썼다.

상식적으로, 군 최고지휘관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1천여명의 아조프(아조우) 연대가 목숨을 걸고 사수했던 도네크츠주 '마리우폴' 공방전과 비교하면, 헤르손은 너무 쉽게 러시아군의 수중에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지지부진한 현 반격 작전의 책임을 묻다가는 군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1년 6개월 전인 개전 초기의 방어 작전을 문제삼는다는 의혹을 지우기도 힘들다. 

또 하나.
SBU(안보국)의 크림반도 전 담당자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의 부대 배치에 대한 기밀 정보를 러시아에 제공하는 등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 본토로 이어지는 '촌가르 다리' 등의 파괴를 막았다고 한다. 잘루즈니 장군도 여기에 연루돼 있는 것일까?

BBC 방송과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잘루즈니 장군에 대한 공식적인 소환은 아직 없었다. (참고인에서)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신분이 바뀐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잘루즈니 총참모장을 보좌하는 우크라이나군 참모부의 한 소식통은 "이번 조사는 군 사령부에 일정한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압력을 가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당시 상황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비공식적으로 해명했다. 예를 들면, '촌가르 다리'를 즉시 파괴했으면, 러시아 기갑부대가 그렇게 빨리 헤르손으로 진입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들이다.

크림반도와 헤르손주를 잇는 촌가르 다리(오른쪽 원)/사진출처:스트라나.ua
헤르손 초기 방어작전의 실패 논란을 부른 촌가르 다리. 뒤늦은 우크라이나군의 폭격으로 손상된 모습이다/사진출처:텔레그램  

그렇다면 '촌가르 다리'를 폭파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아니라, 군 지휘관이라는 주장이다. 군은 대통령의 별도 지도 없이도 교전 규칙에 따라 '촌가르 다리'를 폭파하는 등 방어작전을 펼쳐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군 주변에서는 대통령실이 개전 초기의 방어 실패 책임을 군에서 찾고 싶어한다고 본다. 당국의 조사를 받은 소콜로프 전 남부군 사령관은 한 군사 인플루언스(인기 SNS 운영자)와의 만남에서 "벨로루시 국경에서 크림반도에 이르기까지, 전체 국경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군대가 당시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국가 총동원령이 발령되었어야 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총동원령은 정치의 영역이어서, 전쟁 초기의 패배 책임을 진다면, 군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총참모장 간의 불화설은 이미 여러차례 터져 나왔다. 물론 양 측은 이를 부인하고, '러시아의 선전전'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지 정치학자 안드레이 졸로타레프는 "남부 지역의 조기 함락에 대한 조사에는 정치적 동기가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그들은(대통령실) 분명히 잘루즈니 장군을 무너뜨릴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국민들이 이제 우크라이나군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잘루즈니 장군의 권위와 평가에 타격을 줄 가능성은 없다"고 전망했다. 

우크라 대통령실

오히려 이 조사가 (대통령실의 의도와 달리) 엉뚱한 곳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SBU)의 오판이다. 미국의 거듭된 러시아 침공 경고에도 불구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계엄령도, 총동원령도 발령하지 않았고,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러시아의 공격 계획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당시 SBU의 책임자는 대통령의 어린 시절 친구인 이반 바카노프 국장이었다. 

전쟁이 끝나든 아니든, 어떤 식으로든 우크라이나 대선(내년 3월)이 치러질 경우, 대선판에서 전쟁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는 것도 '잘루즈니 사건'을 보는 또 하나의 키가 될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재선 기획팀으로서는 군에게 그 책임을 먼저 묻는 방식으로 여론를 장악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잘루즈니 장군의 정치적 위협을 제거하기 보다는 스스로 정치 참여의 포기를 유도하는 것을 노리고 있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잘루즈니 장군을 잘 아는 인사들은 그가 정치적 야망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잘루즈니 장군은 스스로를 현대전 전문가로 칭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진정한 권위자가 되고 싶어한다"고 그들은 귀띔했다. 

관심은 '잘루즈니 사건'이 실제로 형사사건으로 비화할 지 여부다. 또 그가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바뀔 경우, 여론의 향방이다. 

스트라나.ua는 "그가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총참모장 지위를 박탈당할 경우, 본인은 물론, 우크라이나군과 사회, 서방 동맹국들의 반응이 주목된다"며 "잘루즈니 장군과 주변 장성들이 (개전 당시의) 정치적인 결단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등 적극 방어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 개전 초기 뿐만 아니라, 현재 반격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간의 전쟁에 따른 피로감과 부패 스캔들 등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군과 대통령실 간의) 그같은 논쟁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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