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CIS 토크) 러시아 시장, 현대·기아차의 ‘아픈 손가락' - 묘안 찾기 가능할까?
러시아CIS 토크) 러시아 시장, 현대·기아차의 ‘아픈 손가락' - 묘안 찾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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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02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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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매각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부총리 겸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현대차 매각에 관한 결정이 이미 내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러시아) 기업이 2년 내 환매 옵션을 조건으로 인수할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특정 인수 기업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현지 언론에 유력하게 거론된 인수 기업은 2곳이다. 러시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서 현대·기아차를 조립, 생산했던 '아프토토르'와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독일 폭스바겐 자동차의 자산을 인수한 '아빌론 홀딩스'의 AGR 오토모티브 그룹이다. AGR 오토모티브 그룹은 폭스바겐 러시아 법인의 새로운 이름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3년 제 10호(2023년 10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러시아 시장을 개척하고 장악해온 현대·기아차의 운명을 집중 조명했다. 김민의씨(석사, 러시아·CIS 경제 전공)가 쓴 《러시아 시장, 현대·기아차의 ‘아픈 손가락'》이다.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 우크라이나 전쟁 유탄 맞은 현대·기아자동차

자동차는 달리는 외교관이라 불릴 만큼, 그 의미는 오늘날 탈것 이상이다. 한 국가의 기술력을 대변하며 해외에서는 제조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요한 상징이다.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 도로를 가득 메운 한국산 자동차는 ‘K-제조업 기술'의 표본이자 국력의 상징적 표현이다.

한국산 자동차가 러시아 도로를 차지한 이유는 뛰어난 제조 기술력과 좋은 가성비에서 나온다. 해외시장의 개척 측면에서 러시아는 한국 자동차의 유라시아 수출을 아우르는 거점이자 교두보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지난 10년 넘게 현대·기아차로 대표되는 한국 자동차는 고품질과 가격 경쟁력으로 러시아 ‘국민차' 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 

그러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은 승승장구하던 러시아 내 한국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에 큰 타격을 가했다. 미국 등 서방 측의 전방위적인 대러시아 제재로, 기존 외국 자동차 업체들의 러시아 시장 대거 이탈은, 후발 주자에게 시장 신규 진입·및 확대 기회를 제공했다. 러시아 자동차 산업은 서방의 촘촘한 제재 여파로 부품 수급에 큰 차질을 빚었고, 공장 가동에서도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는데, 이때 중국이 그 빈틈을 재빨리 파고들어 채우고 있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 진출 한국 자동차 기업에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기존의 서방 기업 공백을 메워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야 할 지, 아니면 러시아 시장을 떠나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 무임승차하는 중국, 내몰리는 한국

현재 중국 브랜드 자동차는 마비 1보 직전의 러시아 자동차 산업에 일종의 산소호흡기 구실을 하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서방 기업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 중국이 들어와서 공백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 시장 동향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자동차 판매량은 2022년 대비 37.8% 급감했다 이는 주로 부품 공급과 유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서방 자동차 업체들이 공장 운영을 중단하거나, 매각한 결과로 분석된다. 

반면, 하발(Haval) 체리(奇瑞) 지리(吉利)  창안(长安)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브랜드 자동차는 러시아에서 인기가 폭발했다. 실제로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품질 향상과 값싼 가격을 앞세워 러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네 배나 확대했다.

러시아 소비자들이 중국 자동차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울며 겨자 먹기' 측면도 있다. 기존 외국 자동차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자,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전쟁이 지속되면서 부품 공급과 AS(애프터서비스)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대러 제재에서 자유로운 중국차가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 핵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품질과 유지·보수 문제 등으로 러시아 시장에서 줄곧 고전을 면치 못했던 중국차들이 “호랑이 없으니 여우가 왕 노릇” 하는 격으로 대러 제재에 따른 반사 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딜레마

한국 자동차 관련 기업(완성차 업체와 부품 공장)들은 2022년 5월 이후 러시아에서 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반추해 보면 아쉬운 대목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지난 2014년, 서방의 대러 제재에도 한국 자동차 기업들은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러시아 시장 공략에 나서 점유율을 확대했다. 이후 한국 자동차 브랜드는 러시아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고, 현대차 '솔라리스'와 기아 '리오'는 러시아에서 국민차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현대 공장이 러시아에서 '규모를 축소한다'는 자막이 떠 있다/사진출처:유튜브

◇러시아 자동차 시장, 어떻게 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가 동참을 선언한 대러 제재 국면 속에서 현대·기아차에게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아픈 손가락'이다. 그렇다면 국내총생산(GDP) 세계 9위 규모의 경제력을 지닌 러시아 자동차 시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몇 가지 선택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털고 나오는 방식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외국 차)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러시아를 '손절한다'는 것은 현실적 이익과 기대이익의 손실 측면에서 바람 직한 방안이 될 수 없다. 

다음은 언론 보도 처럼 현대차에 우호적인 카자흐스탄의 특정 기업에 매각하는 형식으로 타자에게 맡겨놓고 대러 제재가 풀리면, 다시 러시아 시장에 진입하는 '미봉책'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철수 후 러시아 시장에 재진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최선의 방책은 물밑에서 미국을 설득해 한국 자동차 기업들의 잔류를 대러 제재의 예외로 인정받는 방식이다. 논리는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 1위의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철수한다면, 러 시아 시장을 중국이 장악할 것이고 그럴 경우 러시아 경제의 중국 종속화는 더욱 심해지리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워싱턴도 러시아 경제의 중국 예속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가운데 러시아 경제의 중국 의존성을 막는 선봉장으로서 한국의 역할을 집요하게 설득한다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선행된 현대차의 대규모 미국 투자도 하나의 설득및 압박 카드가 될 수 있다. 

미국 기업도 예외를 적용해 러시아 시장에 진출해 있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런 노력이 수포로 그친다면, 우회 수출을 강화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서방 진영이 대러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완성차의 우회 수출은 막을 수 없다. 러시아 현지 공장의 가동을 멈춰도 인근 국가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딜러를 통하면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크렘린은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른바 ‘병행 수입’(정식 수입업체가 아닌 개인이나 일반 업체가 특정 제품에 대한 수입및 판매를 허용하는 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지난 8월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어려움에 빠진 러시아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위해 외국산 수입차 구매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예기치 않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로 현대·기아차가 러시아 시장 사수를 위한 묘수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여러 선택지가 있겠으나 어떤 경우에도 러시아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공든 탑을 한순간에 허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절대 쉽지 않겠지만, 위기를 기회를 바꾸는 역발상의 돌파 전략을 마련해 현대·기아차가 유라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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