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방문에서 더욱 자신만만해진 푸틴 대통령, 이스라엘 때문 만은 아니다?
베이징 방문에서 더욱 자신만만해진 푸틴 대통령, 이스라엘 때문 만은 아니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0.20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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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회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 (Международный форум «Один пояс, один путь», 일대일로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연설한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 3월 시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 이후 7개월 만이다.

그 사이에 용병 '바그너 그룹'의 6·24 군사 반란이 일어났고, 우크라이나군의 여름철 반격작전이 시작됐으며, 미 하원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터지는 등 러시아 안팎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불거졌다. 현안의 대처 방안을 놓고 양 정상은 서로 할 말이 많았을 터. "시 주석과 3시간여에 걸쳐 경제, 금융, 정치, 국제 분야에서 협력 등 양국 간 많은 의제에 관해 논의했다”고 푸틴 대통령은 설명했다.

일대일로 포럼장으로 이동하는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푸틴 대통령의 베이징 기자회견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코메르산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과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포함한 외부 요인이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그같은 외부 요인은 모두 두 나라에 공통적인 위협이며, 양국 협력을 강하게 만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3월에 비해 베이징에서 한결 여유롭고 자신에 찬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 공급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졌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왜 에이태큼스를 지원했는가?”라고 반문하며, “우리가 졌다면 그런 무기들을 도로 가져가고, 러시아에 차와 팬케이크를 드시러 오라”고 짐짓 여유를 부렸다. 또 "우크라이나가 협상으로 분쟁(전쟁)을 해결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옳은 방향이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협상 재개를 원한다면, (푸틴 대통령과는) 협상을 금지하는 법을 철폐하는 등 먼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중국을 향해 “올해로 10년을 맞은 일대일로 사업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치켜세운 뒤, "러시아도 일대일로 사업에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과의 협력을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확장하는 등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받은 후 첫 해외 방문에서 여유를 부린 것은, 그의 기자회견 발언과는 달리 '외부 요인'이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슐츠 독일 총리 수행단이 공습경보가 울리자 총리 전용기 옆 바닥에 엎드려 있다/텔레그램 영상 캡처

실제로 지난 7일 터진 하마스(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은 푸틴 대통령의 입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다. 서방 언론에서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이라고 욕을 먹을 지언정,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 대해 연일 '러시아식 해법'을 내놓고 있다. 팔-이스라엘 정상은 물론, 주변국 정상들과 전화통화를 통해 중재를 시도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때를 만난 듯 목소리를 높이는 그를 지켜봐야 하는 서방국가들은 곤혹스럽다. 무엇보다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갖는 지정학적 특성상,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와 같은 단일 대오를 유지하기가 힘든 탓이 크다. 서방 진영의 '중동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서방의 이같은 고민을 명쾌하게 짚으면서, 중동위기가 러시아에게는 '신의 선물'이라는 분석에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서방의 대(對)이스라엘 지지가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개발도상국가들)를 우크라이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노력을 좌절시켰다고 지적했다.

수십 명의 서방 관리들은 FT측에 "모스크바를 몇달 만에 국제법을 위반한 '왕따'로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전쟁 규칙을 위반하는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모스크바 왕따 만들기'가 '위선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고 토로했다. 한 외교관은 "우리(서방 진영)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말한 것은, 가자지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며 "그렇지 않으면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등에게 뭐라고 답변할 것인가"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또 다른 외교관은 “개발도상국들(글로벌 사우스)은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을 바꿀 것"이라며 "차기 유엔 총회에서 우크라이나 지지에 대해 기권하는 국가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위험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유엔 총회 모습/사진출처:유엔 홈피

미 하원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둘러싼 공화-민주당, 공화당내 불화로 조타수 격인 의장의 부재가 길어지는 것도 러시아에 유리한 외부 요인으로 꼽힌다. 미 하원은 18일에도 의장 선출에 실패했다.

푸틴 대통령은 군사적으로도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 우크라이나군의 공격(반격)이 완전히 실패했으며, 새로운 공격에도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하더니, 18일에는 흑해 공해 상공의 상시 순찰 계획을 내놓았다. 미국이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항공모함 2척을 지중해로 끌어들인 데 대한 대응이라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그는 "미 항공모함의 지중해 진입을 위협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탑재한 미그(Mig)-31K 전투기가 흑해 공해 상공에서 계속 순찰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트라나.ua는 '킨잘'의 사거리가 흑해 상공에서 지중해의 목표물을 타격하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코메르산트 등 러시아 언론은 19일 흑해 공해 상공에 자주 출몰하는 미 무인 정찰기 RQ-4 글로벌 호크(Global Hawk)가 갑자기 경보음을 울리며 급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러시아 공군기의 공해상 순찰 비행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관측된다. 

캡처1=무기 미국 드론 RQ-4B Global Hawk 위키피디아
미국의 RQ-4B Global Hawk/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에도 당장 비상이 걸렸다. 유리 이그나트 국방부 대변인은 "침략자(러시아)의 새로운 성명(흑해 공해 순찰 비행)으로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면서도 "미그(MiG)-31K 이륙 정보가 접수되면 공습 경보가 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작전사령부 측도 러시아가 '킨잘' 미사일로 흑해 항구를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사회 분위기도 전쟁의 장기화에 불안해 하는 모습이다. 
스트라나.ua(10월 17일자)에 따르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쳤고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러시아와 용납할 수 없는 타협을 할 수도 있으며 △정치 지도자(대통령실)와 군부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믿는다는 여론이 지난 1년간 크게 늘어났다.

키예프 사회학 국제 연구소(KIIS,Киевский международный институт социологии)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지쳐 지지가 약화됐다'는 응답은 30%로, 1년 전의 15%에 비해 갑절이나 됐다. 또 1년 전에는 응답자의 5%만이 우크라이나 당국이 러시아와 수락할 수 없는 타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었으나, 올해는 12%로 늘어났다. 정치 지도자와 군부 사이의 갈등을 믿는 응답자도 32%로, 지난해14% 보다 크게 늘었다.

물론, 이같은 답변은 여전히 소수에 그쳤지만, 위기(전시) 상황에서 자신의 속내를 감춰야 하는 우크라이나인의 심리를 감안하면, 무시하지 못할 비율이라고 스트라나.ua는 분석했다.

실제로 한 때 대통령실에서 같은 밥을 먹었던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과 알렉세이 다닐로프 국가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 장관급)가 현 전황에 대한 진단과 향후 전략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등 오피니언 리더들의 분열 조짐도 확연하다.

발단은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의 거친 발언이다. 그는 17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우리 정치 지도부는 역량의 한계를 드러냈고, 상황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으며, 계속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를 재앙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권력을 교체해야 한다"고 쓴 게 발단이 됐다. 

이 발언은 최근 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에서 잇달아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과 맞물려 큰 파문을 몰고 왔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친러 정권이, 폴란드에서는 친유럽 정권이 탄생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유럽 대륙에서 '정권 교체'가 현실화되었다는 점에서, 주변 국가들에게 던진 심리적 타격은 적지 않아 보인다.  

아레스토비치 전 우크라 대통령실 고문/사진출처:페북

푸틴 대통령의 군사적 자신감은 지난 15일 러시아 국영방송 '러시야-1'의 파벨 자루빈 기자가 진행하는 정치 프로그램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 인터뷰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우크라이나 반격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우리는 상대가 새로운 방향으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대처하고 있다"며 "우리는 거의 전 전선에서 입지를 개선하는 등 '적극적 방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아브데예프카(아우디우카)와 쿠퍈스크 등을 겨냥한 러시아군의 공세를 지적하며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푸틴의 이날 발언에 앞서 바실리 네벤자 주 유엔 러시아 대사는 13일 유엔 안보리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끝났으며, 이제는 러시아군이 적극적인 전투 작전(공세)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했다.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 지상군 사령관은 최근 하르코프(하르키우)주(州) 쿠퍈스크와 도네츠크주(州) 리만 방향으로 전황이 크게 악화됐다고 인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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