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대통령과 대선 - 잘루즈니 군 총참모장과 공방전은 제 2라운드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대선 - 잘루즈니 군 총참모장과 공방전은 제 2라운드로?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1.0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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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과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 간의 갈등설, 미-유럽의 우크라이나 평화방안 논의설, 젤렌스키 대통령의 내년 3월 대선 연기 주장,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부관 차스챠코프 소령의 수류탄 폭발 사망,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해임 건의설, 우크라이나 계엄령 연장...

우크라이나 주요 전선에 가을비가 쏟아지면서 러-우크라 간의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진 사이, 수도 키예프(키이우) 주변에서는 6~8일 크고 작은 일들이 숨가쁘게 펼쳐졌다. 현지 언론들은 각 사안을 모두 비중있게 다뤘지만, 국내 언론은 조용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선 연기 주장 정도 겨우 지면에 올렸다. 국제 사회의 관심이 본격 시가전으로 돌입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쏠려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정치 권력이 사실상 모든 것을 지배하는 우크라이나에서, 아귀가 잘 맞지 않을 것 같은 지난 사흘간의 크고 작은 일들을 '대통령 선거'라는 잣대로 보면 의외로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평소 같으면 별 일 아닌 일을, 현지 언론에서 주목하고 기사를 키우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된다.

◇ 고조되는 우크라 내부의 정치적 갈등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 영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보도에서 촉발된 대통령과 군부의 갈등설은, 군사 전략적 측면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측면에서 우크라이나 내부의 긴장감을 키웠다. 가뜩이나 전쟁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전투 현장을 책임지는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막다른 골목' 발언은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서방의 대우크라 군사 지원 열의를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이 점을 지적하면서 그의 부적절한 처신을 비판했다. 당연히 갈등설은 고조됐다.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사진출처:President.gov.ua

이같은 상황에서 미-유럽간에 우크라이나 평화안 논의가 있었다는 미 NBC 보도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밀어올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방 측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적이 없다'고 직접 부인에 나섰지만, 역부족. 특수전 사령관 경질 인사에 대한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패싱설에 그의 부관에게 건네진 수류탄의 폭발, 국방장관의 해임 건의설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대립을 부추기는 사건, 소문들이 잇따라 터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이 모든 사건, 소문의 뒤에는 잘루즈니 총참모장이 내년 3월의 차기 대선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강력한 대항마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깔려 있다. 대통령의 대선 연기 주장과 계엄령의 90일 연장으로 '대선이 물건너 갔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설이 언론 주목도에서 떨어지고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대선 논의는 언제든지 다시 터질 수 있는 지뢰와 같은 것. 잠복된 시한 폭탄이다. 

◇ 모든 길은 대선으로 향한다?

스트라나.ua는 7일 하루를 결산하는 기획 기사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선 반대?'(Зеленский против выборов?)라는 코너에서 "지난 몇주 동안 우크라이나 정치권은 다가오는 대선 소문으로 매우 흥분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선 소문으로 촉발된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멈추거나, 적어도 늦추기 위해 (전쟁 중) 선거, 즉 대선에 반대한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텔레그램 영상에서 "지금이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달려 있는 방어의 시간, 전투의 시간"이라며 "우리는 또다른 정치적 분쟁을 종식시키고, 오직 단결을 통해 계속 나아가야 하며, 그래서 선거(대선)는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자신도 정치적 갈등의 종식을 입에 올렸다.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치적 갈등은 대통령 측의 작용과 야당 세력의 반작용 과정에서 초래됐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측이 먼저 대선 실시 가능성을 흘렸기 때문이다. 

스트라나.ua는 "쿨레바 외무장관 등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들은 최근 내년 대선 실시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며 "바로 전날에는 알렉세이 콘차렌코 최고라다(의회) 의원이 대통령이 대선 준비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의회가 계엄령 기간에 선거를 금지한 법안의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대선이 정상적으로 치러진다면 내년 3월 31일이다. 

이에 포로셴코 전 대통령 세력 등 야당 측은 잘루즈니 총참모장이 가장 유력한 야권 후보로 보고 일련의 사건들을 두 사람의 갈등설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지적이다.

그러나 집권여당인 '인민의 종'은 8일 우크라이나의 계엄령과 동원령을 2024년 2월 14일까지 연장했다. 의회의 법률 개정 없이는 헌법이 정한 시한(2024년 3월 31일) 내에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지 않는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선거운동은 선거 전 90일, 즉 2023년 12월 말부터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계엄령과 총동원령의 연장이 통과됐다. 반대는 소수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수석 부대변인도 이날 "우크라이나의 내년 대선은 실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힘을 실었다.

◇ 양날의 검이 될 차기 대선 연기

대선 연기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양날의 검이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내년 봄 선거가 유리할 수 있다"며 "현재의 전장 교착상태가 장기화될수록 대통령 지지율은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 지지도는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다. 키예프 사회학 국제 연구소(KIIS,Киевский международный институт социологии)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비교적 지지한다'는 응답이 지난 2월 90%에 달했으나, 지난 9월에는 82%로 줄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7%에서 16%로 늘어났다.이 조사는 지난 9월 4~20일 2005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는 잘루즈니 총참모장으로부터 대선 불출마 약속을 받아내는 것. 여의치 않다면, 잘루즈니 총참모장에게 여름철 반격 실패의 책임을 물어 해임한 뒤 그의 대(對)국민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게 차선이다. 둘 중의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의회의 법 개정을 거쳐 내년 3월에 정상적으로 대선을 치를 것으로 스트라나.ua는 내다봤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달전 쯤에 "전쟁이 끝난 뒤에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투표 장면/사진출처:스트라나.ua

하지만, 두 가지 방책 모두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데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민이 있다. 잘루즈니 총참모장은 지금까지 대선에 나서겠다는 뜻을 표시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현 집권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커져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특히 그는 자신의 부관인 겐나디 챠스챠코프(Геннадий Частяков) 소령의 수류탄 폭사에 대한 당국의 발표에 직접 반박에 나서는 등 감정을 드러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잘루즈니 총참모장은 차스챠코프 소령이 생일 선물로 받은 '수류탄'의 취급 부주의로 폭사했다는 당국의 발표에 "그가 생일 선물 가방이나 선물 중 하나를 열려고 할 때 알 수 없는 폭발 장치가 터져 사망했다"고 반박했다. 부관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테러 공격의 희생자가 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속한 야당 '유로연대'는 대놓고 부관의 죽음을 젤렌스키-잘루즈니 갈등과 연계시키는 주장을 폈다.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이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분열'을 시도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총참모장의 최측근 부관이 매우 이상하게(?) 폭사한 것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스트라나.ua는 "죽음의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은 이미 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총참모장 사이의 갈등을 크게 확산시켰다"고 진단했다.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부관이 생일 선물을 개봉하다가 폭발로 사망한 현장 모습/사진출처:Украинская правда

◇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선택은?

그를 더욱 열받게 한 것은 루스템 우메로프 국방장관이 해임 건의안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올렸다는 소식이다. 유로연대의 블라디미르 아리예프 대표가 7일 페이스북을 통해 그같은 소식을 전했다가 나중에 이를 철회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야당이 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추악한 정보전의 본보기, 가짜 뉴스"라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아리예프 대표는 그러나 "잘루즈니 총참모장이 해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쇄기를 박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 총참모장을 섣불리 해임하기도 어려운 입장으로 몰린 셈이다.

물론, 그의 해임설이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알렉세이 다닐로프 국가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 장관급)가 영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빗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권력을 갖고 명령을 내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전날에는 호렌코 특수전 사령관이 사전 협의도 없이 갑자기 경질됐다. 이 인사는 노골적으로 잘루즈니 총사령관의 '뺨을 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종의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더욱이 젤렌스키 대통령은 7일 자신이 주재하는 '최고위 지휘관 회의'에 특수전 부대의 새 사령관으로 발탁된 세르게이 루판추크 장군을 들어오도록 지시했다. 잘루즈니 총참모장을 패싱해 우메로프 국방장관-젤렌스키 대통령 라인으로 임명된 인사다. 이 조치 또한 잘루즈니 총참모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계속 코너로 몰리는 그로서는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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