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같이 몰려간 러시아군, 기어코 아브데예프카의 전술적 거점인 산업지대 점령?
좀비같이 몰려간 러시아군, 기어코 아브데예프카의 전술적 거점인 산업지대 점령?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1.27 0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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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츠크주 마리우폴→바흐무트→아브데예프카(아우디이우카)로 이어지는 격전지 전투에서 러시아군이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6월 대반격 와중에도 아브데예프카 공격을 늦추지 않았던 러시아군은 이 도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코크스(석탄을 가공해서 만든 탄소 고체 연료/편집자)공장 지대를 점령한 것으로 25일 전해졌다.

아브데예프카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시작된 지난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러시아계 무장세력(현재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민병대)이 맞서온 최전선 중 한 곳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도네츠크주(州) 주도인 도네츠크시(市)를 코앞에 둔 이 곳에 방어진지를 구축한 뒤 도네츠크시 탈환을 노렸다. 특히 재래식 포병 자산으로도 도네츠크시 어디든 공격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안고 있어, 러시아계 시 주민들에게는 '목의 가시'와 같은 우크라이나군의 진지였다.

아브데예프카 위치(표시), 바로 아래 쪽에 도네츠크시가 있고, 맨 위쪽에 바흐무트가 보인다. 맨 왼쪽 아래의 '벨리카야 노보숄카'는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6월 반격을 가했던 주요 전선과 접한 지역이다/얀덱스 지도 캡처

러시아군과 도네츠크 DPR 민병대는 2022년 개전 직후부터 아브데예프카를 장악하기 위해 공세를 가했으나, 코크스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구축된 우크라이나 방어선을 뚫는데 실패했다.

개전 21개월을 맞은 25일에야 러시아군이 코크스 산업지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친(親)러시아 텔레그램 군사 계정들은 25일 러시아군이 도시 남동쪽 끝에 있는 아브데예프카 코크스 산업 지대를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에 대해 아직 논평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있다. 아브데예프카 도심 등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군의 통제 하에 남아 있다. 

산업 지대의 장악을 놓고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들이 흥분(?)하는 것은, 이 지역의 지형적·전술적 이점 때문이다. 구릉지대에 위치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구축된 우크라이나군 방어 진지는 러시아군의 아브데예프카 진입을 차단하는 최대 장애물이었다. 러시아군이 이 지역을 확보하면, 아브데예프카가 한 눈에 들어오고, 군사적으로도 전방으로 넓은 시야가 확보돼 다음 작전을 펴기가 한결 쉬워진다. 

개전 초기 최대 격전지인 '마리우폴' 공방전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제철·야금 산업 단지를 최후 거점으로 삼아 끝까지 저항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브데예프카에서는 이제 우크라이나군의 결사항전 거점마저 사라진 셈이다.

폭격에 부서지고, 곳곳에 연기로 뒤덮힌 아브데예프카의 모습/텔레그램 영상 캡처

물론, 현지 전황이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공개된 산업지대 영상에는 코크스 공장 대부분이 연기로 덮여 있으며, 많은 건물이 파괴된 상태다. 

MKru(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텔레그램 군사 채널을 운영하는 유리 코테노크는 25일 러시아군이 미사일과 항공 전력을 앞세워 산업지대에 숨어 있는 적(우크라이나군) 요새를 파괴하고, 300여명의 우크라이나군을 산업지대에서 몰아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텔레그램 채널도 "러시아군이 야시노바타야-2 기차역 주변의 산업지대를 해방시켰다"며 "산업용 건물과 지하실, 요새, 집속탄, 추가 병력도 더 이상 우크라이나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군사 전문가 알렉산드르 슬라드코프는 "아브데예프카 산업지대는 우크라이나군 방어력이 전 전선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곳"이라며 "이 곳 점령은 대업을 이룬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러-우크라 양 측에서 나온 전황 보고를 감안하면, 러시아군의 산업 지대 점령은 사실 시간 문제였다. 러시아군은 열흘 전쯤인 11월 16일 아브데예브카 북쪽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방어선을 돌파했고, 남부 지역도 손에 넣었다.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군사력을 보강하면서 승부를 가늠할 수 없는 접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독일 빌트지가 보도한 아브데예프카 전선 상황. 러시아군은 북쪽(위)에서 스테프노예로, 남쪽에서 보디아노로 진격하면서, 아브데예프카 주둔 우크라이나군은 포위 상태에 빠지고, 군수 물자 공급로도 상당히 좁아졌다(붉은 색 선)/빌트지 캡처. 

이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우크라이나군이 아브데예프카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러시아군과 맞서 싸우고 있다"며 "탄약 부족으로 모두에게 총을 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 47여단의 이등병 보흐단 리센코는 WSJ에 "그들은 좀비처럼 몰려온다"고 학을 떼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은 이미 한달전 쯤인 지난달 23일 아브데예프카의 군사정부 책임자인 비탈리 바라바시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그는 TV 방송을 통해 "장갑차를 앞세운 러시아군은 24시간 내내 대규모로 몰려오고 있다"며 "러시아군을 쓰러뜨리고, 또 쓰러뜨려도, 그들은 미친 듯이 계속 몰려온다"고 말했다. 

우크라-서방 측 전문가들이 아브데예프카에서 러시아군 우위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이달 초다. 우크라이나군 텔레그램 채널 '딥스테이드'(Deep State)는 지난 9일 러시아군이 전날 스테프노예로 진입했다고 인정했고, 미국 전쟁 연구소(American 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도 이를 확인했다. 

러시아군이 동쪽에서 시작해 남북으로 전선을 넓혀 아브데예프카 포위 공격에 나선 것은 우크라이나 주둔군의 보급선을 끊기 위한 작전이다. 아브데예프카 주둔군으로 연결되는 군수물자 보급로가 러시아군 포대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올 경우, 우크라이나군은 고립될 수 밖에 없다. 빠른 철수가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러시아군의 공격 모습/텔레그램 캡처

우크라이나군 사령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브데예프카를 방어할 것이라고 거듭 선언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러시아군이 아브데예프카를 점령하면, 최전선이 도네츠크시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지게 된다. 우크라이나군의 도네츠크시 무력 위협도 거의 사라진다. 또 러시아군이 서쪽으로 진격을 계속할 경우, 지난 6월부터 남부 멜리토폴과 아조프해를 향해 반격에 나선 남부 전선의 우크라이나군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꼭 한달 전인 지난달 25일 아브데예프카가 곧 러시아의 손을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매우 슬프지만, 아브데예프카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며 "반격에 나섰던 남부 전선의 우크라이나군 부대가 아브데예프카로 이동했다는 것은, 남부 전선의 공세도 끝났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같은 방어 요새를 구축하지 않고, 무작정 도시를 지켜려다가 7개 주요 도시를 잃었다"고 우크라이나군의 작전 실패를 질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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