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엔) 방어 작전으로 전환하는 우크라이나의 새해 군사 전략, 그 목적은?
(2024년엔) 방어 작전으로 전환하는 우크라이나의 새해 군사 전략, 그 목적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1.01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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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0일 최고 정치·군사 지휘부 회의를 소집해 2023년 한해의 군사작전을 평가한 뒤, 새해 군사 전략을 승인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올 한해 군사 작전의 결과를 분석하고, 보완 방안을 찾아 내년도 군 작전 방향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자체적인 2023년 평가는 "우크라이나는 어느 방향으로도 후퇴하지 않았고, 바다를 되찾았으며 하늘을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젤렌스키 대통령 주재의 우크라이나 최고 지휘부 회의/영상 캡처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새해 우크라이군의 군사 전략을 어떻게 정했을까? 발표를 하지 않았으니, 언론도 짐작만 할 뿐이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군총참모장의 최근 기자회견 발언이다. 그는 지난 12월 26일 전쟁 발발후 처음으로 가진 공식 기자회견(실제로는 전황 브리핑)에서 "내년은 군사 전략 측면에서 지금과 달라져야 하고, 또 달라질 것"이라며 “최대 목표는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전선의 병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어 작전으로 군사 전략을 변경하고, 필요하면 러시아군의 공세가 치열한 격전지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분석이 현지에서 나왔다. 

유력한 곳은 '제 2의 바흐무트'로 알려진 아브데예프카(이우디우카)와 오스콜강 동쪽에 위치한 쿠퍈스크와 보로바야다. 또 하나의 방어 진지인 마리인스크는 지난 연말 이미 함락됐다. 많은 군사 분석가들은 "아브데예프카와 쿠퍈스크, 보로바야 등은 지형적으로 방어가 힘든 곳"이라며 "너무 늦지 않게 철수해 병력 손실을 막고, 새로운 곳에 방어 요새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여러 곳에서 건설중인 방어진지의 모습/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영상캡처

우크라이나군의 방어 진지 구축도 이미 시작됐다. 러시아군이 2023년 초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막기 위해 구축한 방어 진지를 본 딴 요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최고 정치·군사 지휘부 회의가 마지막으로 열린 30일, 방어 진지 구축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지역 군사정부(지역 군정청)뿐만 아니라 교통부와 건설부도 요새 건축에 참여하고 △재원을 추가로 확보해 건설 비용의 최대 70%까지 참여 업체에게 선지급하며 △방어 진지의 사양(형태와 규격/편집자)도 통일하기로 했다.

그러나 격전지 아브데예프카의 경우,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전격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는 등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자존심을 걸었다는 뜻인데, 새해 들어 군 지휘부와의 이견을 어떻게 풀어갈 지 주목된다. 잘루즈니 총참모장은 기자회견에서 아브데예프카는 2~3개월내에 함락될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 자존심을 걸고 끝까지 저항하다 함락된 2022년 5월의 '마리우폴', 2023년 5월의 '바흐무트'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우크라이나가 새해들어 방어 작전으로 돌아선다고 해서 공격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새로운 방어 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는 크림반도내 군사 시설과 흑해 함대 등을 겨냥한 미사일 공격으로 러시아군을 흔들면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또 서방의 지원에만 의존해온 무기와 포탄, 군사 장비들을 자체 생산도 병행한다. 러시아군이 지난해 겨울과 달리 우크라이나 방산업체를 겨냥한 대규모 공습을 최근(12월 29일) 감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흑해함대 상륙함 노보체르카스크호가 지난 12월 26일 우크라이나의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에 피격되는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지난 12월 26일 우크라이나의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에 피격된 러시아 흑해함대 상륙함 노보체르카스크호/사진출처:텔레그램

우크라이나군의 전열 재정비는 병력 보충과 F-16 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 등 서방의 새로운 무기 배치로 요약된다. 러시아군 후방을 지속적으로 공략해 적의 손실을 극대화하고, 주요 전선에서 힘의 균형을 바꾸기 위한 정지 작업에는 새해 도입될 F-16 전투기 등이 투입된다. 또 각종 드론 등 자체적인 무기·장비 생산도 제한된 서방의 군사 지원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새해 들어서는 지난 2년과는 달리 경제 회복에도 나서야 한다. 서방의 경제 지원 의존도를 줄이고, 사회 분위기를 최대한 '평시'로 되돌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미래 희망을 안겨줘야 '장기전'에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목표 설정의 실현 가능성이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가 한결 나아진 조건 하에서도 '방어 전략'만으로는 극복하지 못할 딜렘마를 조목 조목 지적했다.

방공시스템도 크게 강화된 게 가장 개선된 여건이다.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습 이후 우크라이나 전역에 전기 공급이 끊겼던 지난 겨울과는 달라졌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후방 지역의 경제 회복및 생산 활동을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 

또 러시아의 흑해 봉쇄 조치에도 불구하고, 새로 구축된 '안전 항로'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흑해 해상 운송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곡물 뿐만 아니라 금속, 광석 및 기타 상품도 흑해를 통해 운송되고 있다. 이같은 추세가 더욱 확대된다면 우크라이나 수출 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딜렘마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우크라이나의 방어 작전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부터 새로운 영토가 빼앗기지 않도록 막는데 그친다. 궁극적으로 영토 수복에 나서지 않을 거라면, 전쟁을 계속할 이유와 휴전을 계속 거부하는 이유, 장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국익 등에 대한 사회적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에 따른 사회적 불만도 시간이 흐를 수록 커질 수 있다. 

방어 작전을 위한 새로운 동원법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이다. 새 동원법이 시행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 도피를 시도하거나, 경제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경제 회복은 물론, 평시체제로의 전환, 일상생활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동시에 사회 불만세력이 더욱 늘어날 게 뻔하다. 

동원을 피해 해외로 도피하려다 체포된 우크라이나 남성들/사진출처:우크라 국경수비대
동원 해제를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우크라이나 어머니들

우크라이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미국 등 서방의 추가 지원 여부다. 서방의 지원이 줄어들거나, 줄어들 기미가 보이면, 우크라이나 안팎의 휴전 요구 목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들리게 될 것이다.  

또다른 고민은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전체 분위기다. 
스트라나.ua는 지난 31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서방 진영의 분위기와 최전선의 상황이 한 해 전(2022년 말)과는 현격하게 다르다"는 지적에서 '2024년 새해 전망 기사'를 풀어나갔다. 

이 매체에 따르면 1년 전에는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하르코프(하르키우)와 헤르손 지역의 수복으로 2023년 봄, 여름에는 크림반도에 진입할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수장(사망)과 강경 군사작전 주창자인 이고르 기르킨(투옥) 세력, 일부 군사 텔레그램 채널이 러시아 군당국을 거의 파괴적으로 몰아세웠다. 자칫 러시아에 사회적 불안이 증폭되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우크라이나 측에서는 기대감)도 일각에서는 한껏 높아졌다. 

하지만, 1년 만에 러-우크라 양측의 입장이 역전됐다. 우크라이나의 야심적인 반격은 무산됐고, 러시아군은 주요 전선에서 역공에 나서기 시작했다. 프리고진의 군사반란이 실패로 끝나면서 크렘린 주변의 엘리트층과 국가 시스템은 푸틴 대통령 중심으로 재통합됐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에서는 '크림반도 수복'이라는 당국자들의 공언과 그에 따른 국민들의 높은 기대가 어그러지면서 내부적으로 권력 다툼이 시작되고, 사회적으로는 실망감이 확산됐다. 대다수 우크라이나인들은 더 이상 장기간의 전쟁과 희생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방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실패와 팔레스타인 하마스-이스라앨 분쟁 발발로 승전 기대감이 줄었고, 조속한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對)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이 일단 차단됐다. 

우크라이나군 장갑차(위)와 참호/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새해들어 두 가지 대안에 직면했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이유로든) 전선의 균형이 유리하게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장기 방어전'에 나서든가,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러시아와 협상을 시작하는 방안이다. 

우크라이나의 정치 군사 지도부는 두 번째 안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전략적 방어에 나서면서 내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 주재의 최고 지도부 회의가, 또 잘루즈니 총참모장이 그리는 새해 군사 전략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실현 가능성은 앞으로 4~6개월 내에 판명될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내다봤다. 그 기간에 서방의 추가 군사 지원 규모가 결정되고, 또 병력 보충을 위한 군 동원및 징집활동이 원활하게 돌아가면서 우크라이나 내부의 안정이 유지될 지 여부가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만약, 장기 방어 전략이 실패하고 있다는 게 명백해지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수순에 우크라이나측도 동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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