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재에 60달러 유가 상한제까지.. 러시아가 지난해 그 파고를 헤쳐나간 방법
경제제재에 60달러 유가 상한제까지.. 러시아가 지난해 그 파고를 헤쳐나간 방법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1.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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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중국의 최대 석유 공급국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에 따르면 로이터 통신은 20일 중국 세관 자료를 인용해 "러시아는 지난해 중국에 석유 1억702만톤(t)을 수출해(하루 214만 배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등 다른 주요 석유 수출국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전까지 중국의 최대 석유 공급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전년 대비 1.8% 감소한 8596만톤에 그쳤다. 

이같은 역전 현상은 러시아가 선진 7개국(G7)과 유럽연합(EU) 주도의 러시아산 유가 상한제(배럴당 60달러) 제재를 피하기 위해 수출 루트를 아시아쪽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유조선/사진출처:pexels.com

러시아 일간지 로시스카야 가제타(RGru)는 지난 14일 '러시아 석유 산업이 지난해 미국과 EU의 제재에서 살아남은 법'(Как нефтяная отрасль прожила прошлый год под санкциями США и Е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는 지난해 전체 석유 수출량의 90%를 중국과 인도로 넘겼다"며 "러시아는 앞으로 두 나라의 추가 할인 요구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 2022년 12월 서방의 유가 상한제 도입 이후, 수출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자국산 '우랄 원유'의 할인율을 확대했다. 그만큼 싼 '우랄 원유'는 중국측 구매자들에게는 중동산 석유보다 더 매력적이었고, 소위 '그림자 선단'이 위험한(?) 운송에 기꺼이 나서면서 수출 확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에너지 장관 출신의 부총리 알렉산드르 노박은 지난해 12월 27일 국영 TV 채널 러시아와의 회견에서 "러시아 원유를 수입하지 않던 인도도 '우랄 원유'의 가격이 떨어지자 대량 구매를 시작했고, 현재는 러시아 원유 수출의 40%를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유럽으로 향하던 러시아 원유는 원래 40~45%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4~5%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는 “러시아는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관계를 맺어왔다"며 "미국과 EU의 금수 조치는 우리의 에너지 공급망 재조정을 가속했으며, 결과적으로 서방의 제재를 성공적으로 우회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RGru는 "러시아 석유 산업은 지난해 서방의 제재 압력에도 잘 버텨왔다"며 "원유 생산및 수출 물량이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유 수출액은 8조 8천억 루블로, 최다 기록을 세운 2022년(11조 6천억 루블)에 비하면 줄어 들었지만, 2021년(9조 1천억 루블)과 거의 같은 수준이고, 2019년(5조 2천억 루블), 2020년(7조 9천억 루블) 비하면 훨씬 늘었다는 것이다. 

생산량도 예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은 약 5억 2,700만 톤으로 추정(니콜라이 슐기노프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되는데, 2022년의 5억3,500만 톤에서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이같은 감소분은 국제유가의 하락을 막기 위해 '오펙 플러스'(OPEC+)가 합의한 감산 결정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석유산업은 지난해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선방한 것으로 전해졌다/캡처

콘스탄틴 시모노프 러시아 국가에너지안보기금 대표는 "러시아는 현재 하루 평균 350만 배럴의 원유를 해상으로 운송하고 있다"며 "우리 석유 산업의 뛰어난 유연성을 보여주는 매우 좋은 지표"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동안 인도를 중심으로 원유 운송을 위한 유조선 확보와 보험, 물류, 대금 결제 등에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일부 나왔지만, 원유 수출 수익의 예산 기여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EU도 러시아 석유산업의 선전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유가 상한제가 사실상 깨졌기 때문이다. EU는 지난해 12월 18일 발표한 제 12차 대러 제재안에서 유가 상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재 강화 방안을 제시했고, 미국도 같은 날 러시아 원유 운송을 도운 아랍에미리트(UAE)와 홍콩 기업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그러나 세계 원유 시장이 이미 달라졌다는 게 러시아측 인식이다. RGru는 "과거에는 스위스 중개인과 그리스 해운사, 런던 보험사가 세계 원유 거래의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제 3의 중개인이, 제 3의 해운회사도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제 3의 해운사는 서방 측에게 '회색(그림자) 선단'로 불리지만, 공식적으로 등록된 유조선을 운영 중이다. EU가 추정하는 '그림자 선단'의 규모는 600척에 이른다. 

또 홍콩과 UAE 회사들은 스위스 중개인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미국이 지난해 12월 양국 중개및 해운 회사들을 제재대상에 올린 이유다. 러시아 국영 선사 소유의 UAE 선박 관리회사 선십(SUN Ship)과 UAE에 본사를 둔 볼리턴(Voliton), 홍콩 소재 벨라트릭스에너지(Bellatrix Energy), 코바트(Covart) 등이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들 기업이 지난해 5, 6월부터 러시아산 원유 수천만 톤을 거래하면서 가격 상한선을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G7과 EU의 가격 상한선은 러시아산 원유가 배럴당 60달러, 석유 제품(휘발유과 디젤 등)이 배럴당 100달러, 중유(Fuel oil)는 배럴당 45달러다. 분명히 시장 경제 원리를 저해하는 반(反)시장 조치이지만, 러시아는 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러시아 석유산업이 새해에도 직면할 문제는 유가 상한제와 중국·인도로 집중된 수출 루트다. RGru는 "러시아 원유 수출 가격은 2023년 하반기 가격 상한제 제한을 극복했지만, 그 영향력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며 할인율이 지난해 11월~12월 배럴당 10달러에서 15달러로 높아진 것을 실례로 들었다. 상한제 실시 이전까지 '우랄 오일'은 기준 유종인 '브렌트유'에 비해 배럴당 1~3달러 할인된 가격으로 시장에서 거래됐다. 

유가 상한제 이후 러시아산 오랄원유 가격 추이. 맨 아래는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우랄 원유 할인율, 회색과 붉은 그래프는 각각 우랄 원유, 브렌드유 가격 변동 추이/출처:RGru 캡처

비즈니스 컨설팅 기관인 '비즈니스드롬'의 파벨 사미예프 대표는 러시아 석유 산업의 또다른 위험으로 서방이 (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하는) '그림자 선단'를 추적한 것을 들었다.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원유 수출을 극적으로 감소시키거나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이미 세계 원유 거래 시장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림자 선단'식 거래 자체는 이미 잘 알려져 있고, UAE와 홍콩 기업이 제재를 받더라도, 새로운 중개및 해운사가 계속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원유 정제 공장/사진출처:현대오일뱅크

반면, 중국과 인도에 집중된 원유 수출선은 두고두고 골치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서방의 대러 제재 조치에 편승한 베이징과 뉴델리가 러시아 석유회사 측에 추가적인 할인과 특혜를 요구하는 등 가격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석유 산업은 2023년을 선방했지만, 서방의 다양한 제재 극복을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게 RGru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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