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 해제' 요구에 속 끓이는 러-우크라, '동원 500일 집회' vs '동원법 개정안'
'동원 해제' 요구에 속 끓이는 러-우크라, '동원 500일 집회' vs '동원법 개정안'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2.0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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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전쟁 발발 2년을 코 앞에 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슬금슬금 확산되는 동원 병력의 귀향(歸鄕) 요구로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3월 대선을 앞두고 동원 예비군 아내와 부모, 가족들이 '이제 그만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목소리가 더욱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우크라이나는 최전선의 병력 부족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동원령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심의 중인데, 일정 기간 복무한 현역 입대자들의 제대와 예비군의 동원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난감해 하는 분위기다. 

rbc 등 현지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동원 예비역의 아내, 부모, 가족 200여명은 3일 부분 동원령 발령 500일을 맞아 모스크바 크렘린 근처 무명용사의 묘에서 "남편,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집으로'(Путь домой) 집회를 가졌다. '집으로' 집회는 매주 열렸으나, 이날엔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집회 주도자들은 전날 인터넷을 통해 동원 500일 맞아 열리는 집회에 참가를 호소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22일 부분 동원령을 발령하면서, 동원이 언제 끝날지 명시하지 않았다.

3일 크렘린 인근에서 열린 러시아의 '집으로' 집회 모습/텔레그램 영상 캡처

텔레그램에 따르면 러시아 경찰 당국은 집회 참자자 1명과 '인권 운동' 단체 회원들, 취재 기자 등 25명 이상을 연행했다. AFP 통신은 군사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취재하던 자사 영상 기자 등 언론인 20여명이 경찰서로 강제 연행됐다고 전했다. AFP가 촬영한 영상에는 현장 취재기자임을 알리는 노란색 조끼 차림의 기자(PRESS)들이 연행되는 모습이 담겼다.

앞서 모스크바 검찰청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모스크바 도심 집회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인터넷에 홍보되고 있다"며 "행정(조치)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강제 해산및 연행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온 영상을 보면, 과거와 같은 경찰 병력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또 지금까지 '집으로' 집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을 형사 처벌하지도 않았다. 

이같은 러시아 당국의 태도는, 외부(비우호국) 불순세력의 개입을 차단한 뒤 참가자들의 애로 사항을 듣고 해결해주는 방법으로 '집으로' 목소리의 확산을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대선을 앞둔 상태에서 자칫 잘못 건드려서 일을 크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크렘린은 각 지역 담당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동원된 예비역들의 아내들과 선제적으로 접촉해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듣고 해결 방법을 찾아줄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2월 3일 키예프 시청사에서 열린 '동원 해제' 요구 집회/캡처 

우크라이나도 병역 의무에 따라 현역으로 입대한 27세 이하 병사들의 전역과, 개전 후 동원된  예비군들을 '집으로 보내달라'는 집회로 난감해하고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징집병(현역 입대자및 동원 병력)의 아내, 어머니들의 시위는 새해 들어 거의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12월 3일 키예프(키이우)시 청사 앞에서 마지막으로 열렸다. 심의 중인 새로운 동원법에 지금이라도 의무 복무 기간을 정하고, 이후 자동으로 제대 혹은 동원 해제되는 조항이 삽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그 진행 상황을 아내·부모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총동원령이 발령된 우크라이나에서는 '집으로' 집회 참가자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2020~2021년 입대한 현역병들이 전쟁 발발로 전역이 미뤄지자, 이들의 전역을 요구하는 어머니들과, 개전후 자진 입대 혹은 동원된 예비역들의 동원 해제를 요청하는 아내들, 그리고 개전 초기 최대 격전지인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에게 항복한 '아조프(아조우)스탈' 사수 병력의 친인척들이다. 아조프스탈 포로들의 친인척들은 러시아와의 포로교환을 통해 '조속히 집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조프스탈 포로는 2천40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일부는 포로교환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다. 튀르키예(터키)에 억류된 지휘관들도 지난해 7월 젤렌스키 대통령의 터키 방문을 계기로 석방됐다.

튀르키예(터키)에 억류돼 있던 아조프스탈 사수 지휘관들이 지난해 7월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귀국해 환영을 받는 모습/캡처 

가장 큰 문제는 전쟁 발발 직전 현역 입대한 젊은 병사들의 제대 여부다. 이들은 27세 이하로 총동원령에 의한 동원 대상이 아니다. 순수한 병역 의무자다. 알렉세이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 안보회의 서기(장관급)는 불만이 고조되자, 2020~2021년 소집된 현역병들의 전역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최전선의 병력이 부족하고, 동원된 예비역들은 나이가 많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 상태에서, 젊고 전투력이 있는 27세 이하 현역병들을 전역시키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의 '집으로' 집회는 새 동원법이 확정되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동원 후 18개월, 혹은 36개월간 복무한 뒤 자동으로 해제되는 조항이 빠질 경우, 아내·어머니들의 불만은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3일 우크라이나 사회가 동원 문제 등으로 폭발 직전에 있다고 보도할 정도다. 이 신문은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문제는 '징집 기피 현상'이라며 현지 전문가의 말을 인용, "우크라이나는 하루에 20~30구의 시신이 최전선 영안실로 옮겨지는 등 '공동묘지'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불만은 전선을 사수해야 하는 군 최고 지휘부에서도 터져나온다. 동원법 개정안에 일정 복무후 자동 해제 조항이 포함되면, 더욱 심각한 병력 부족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동원된 러시아 예비역들이 훈련을 받는 모습/러시아 SNS ok의 국방부 계정

일단 전선으로 동원된 병력이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기약할 수 없는 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푸틴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발령한 지 한 달 남짓 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30만명 징집 임무를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이중 전투지역에 직접 동원된 인원은 24만4천명이라고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연말 기자회견에서 확인했다. 그러나 이들의 동원 해제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답변을 하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최전선 배치 동원 병력의 교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복무 기한이 법률에 규정되지 않았고 전선 상황이 어떻게 변할 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시점이 되면 동원 병력이 단계적으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푸틴 대통령의 약속 한달 쯤 뒤인 지난해 9월 러시아 국방부는 “특수 군사작전 참전 부대의 전투태세 유지 등을 위해 동원 인력의 순환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오히려 '동원 병력의 복무 기간은 부분 동원령이 해제될 때까지'라는 국방부의 또다른 답변이 나와 일각에서는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군 장성 출신인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국가두마(하원)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아예 "동원 병력은 특수 군사작전이 완료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논란에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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