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설? 러시아 대선 투표율 상승, 위험은 감수 - 우크라, 3월 대선 아예 포기
전쟁의 역설? 러시아 대선 투표율 상승, 위험은 감수 - 우크라, 3월 대선 아예 포기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3.1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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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도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를 치러야 할까?
15~17일 대통령 선거를 강행한 러시아는 여러 곳에서 투표소 방화와 투표함 훼손, 반(反)푸틴·반전 시위 등 전에 없는 혼란을 겪었고, 우크라이나는 아예 대선 실시를 포기했다. 러시아는 또 대선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의 드론·미사일 공격(포격)으로 상당한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다. 국경 마을에서는 무장세력의 기습 침투 작전 등으로 불안한 평화마저 깨졌다.

이같은 혼란을 예상한 우크라이나는 아예 계염령을 이유로 대선 시행 자체를 포기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고심 끝에 지난해 말 전선에 배치된 군인들과 해외 난민, 투표장의 안전, 선거 실시 비용 등 현실적인 이유로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러시아의 2024년 대통령선거 포스터/사진출처:현지 매체 영상 캡처

여론도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키예프 사회학 국제 연구소(KIIS, 러시아어로는 КМИС Киевский международный институт социологии)가 지난해 10월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1%는 '전시중 선거'에 반대했고, 찬성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또 대다수의 응답자는 전자 투표(온라인 투표)에 반대했으며, 특히 65%는 '부정 선거'의 위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러시아 대선 이후 러-우크라 양국의 정국은 정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투표율 73.33%에 예상 득표율 87%에 이르는 선거 결과를 손에 쥔 푸틴 대통령은 지난 2년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민 지지를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반면, 대선 실시를 포기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존의 법적 임기가 끝나는 5월 20일 이후, 범야권의 정치 공세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서방의 지원 축소로 반전이 쉽지 않는 전황도 그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좁힐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공식)임기' 이후 우크라이나 정국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가제타ru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는 대선 사흘 내내 몸살을 앓았다. 투표 마지막날인 17일에는 페름의 한 투표소 화장실에서 60대 주민이 폭죽을 터트려 자신의 한쪽 팔을 잃었고, 선거 관계자 등 50여명이 급히 대피해야 했다. 또 크라스노다르에서는 10대 소녀가 투표소내 책상에 불을 질렀다.

대선 투표장 주변에 배치된 러시아 경찰(위)와 기표소 방화 순간/현지 매체, 텔레그램 영상 캡처

수감중 돌연사한 야권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푸틴에 저항하는 정오' 시위도 이날 러시아 국내외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17일 낮 12시, 러시아 투표소 곳곳에서는 '정오 시위'에 동참하려는 유권자들로 긴 줄이 만들어졌다. 모스크바 시민 율리아(28) 씨는 연합뉴스에 "경찰이 많이 배치돼 있었지만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면서 "투표 관리원들이 빨리 (투표)하고 퇴장하라고 재촉해 서둘러 투표만 하고 나와야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푸틴 대통령이 아닌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무효표를 만들자는 나발니 측의 요청에 따라 "4명의 후보 모두에게 기표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오 시위'는 역설적이게도 러시아의 대선 투표율을 높여준 것으로 추정된다. 시위가 없었다면 아예 투표하러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야권 지지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소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땅이 넓은 러시아에서 정오 시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는 추정하기 어렵다"면서 "그나마 투표소에 따라 수십∼수천명이 모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 투표율은 2018년 대선(67.54%)을 훌쩍 넘긴 73.33%를 기록했다. 소련 붕괴 후 역대 러시아 대선에서 1991년 첫 대선(74,66%)을 제외하고 투표율이 70%를 넘긴 적이 없다. 1991년 대선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크렘린의 주인으로 등극한 선거였다.

또 푸틴 대통령이 연임 제한에 걸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총리가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로 나선 2008년 대선도 높은 투표율(69.81%)을 기록했다. 그만큼 경쟁이 뜨거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이미 '따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투표율이 70%를 훌쩍 넘긴 것은, '정오 시위'와 함께 투표 기간 연장(하루에서 사흘로), 모스크바 등 일부 지역에서 도입된 전자투표(온라인 투표)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섣불리 온라인 부정투표를 거론하기에는 조심스럽다.

푸틴 대통령의 전자 투표/사진출처:크렘린.ru

푸틴 대통령이 당선된 4번의 대선에서는 투표율이 2000년 68.64%, 2004년 64.38%, 2012년 65.34% 2018년 67.54%였다.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나발니의 대변인인 키라 야르미시와 함께 독일 베를린에서 정오 시위 현장에 등장, 다른 참여자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미사일 공격은 대선 마지막 날에도 계속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17일 모스크바 상공에서 4대, 야로슬라블 4대, 칼루가 2대, 남부 크라스노다르 16대 등 본토와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에서 총 35대의 드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크라스노다르주(州) 슬라뱐스크 정유 공장은 드론 공격으로 화재가 발생, 1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에는 중부 사마라 지역의 시즈란 정유공장에서 드론 공격으로 화재가 발생한 바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접경 벨고로드와 브랸스크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 무장세력의 국경 침투와 탄도 미사일 공격을 격퇴했다고 러시아 국방부는 밝혔다. 미국의 '블랙 호크'로 추정되는 헬기의 불타는 영상도 인터넷에 올라왔다.

우크라이나 무장세력이 타고온 것으로 추정되는 헬기가 파괴되는 장면/영상 캡처

러시아 점령지역인 자포로제주에서는 투표소가 자폭 드론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러시아 측은 연일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대선을 방해하려는 시도로 보고 강력 대응을 다짐한 바 있다.

러시아에서도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에 대응하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됐다고 한다. 연방 근위대를 정유 공장이나 유류 저장소 등 인화 물질 취급소 인근에 배치해 안티(반·反)드론총이나 중기관총 등으로 날아오는 드론을 격추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이같은 반드론 작전을 시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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