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는 가냘프지만/ 의지는 약하지 않네/ 사랑이 없으니 내 마음 오히려 가벼워졌네/ 하늘은 드높고/ 산바람 불어오니/ 티 하나 없는 나의 생각들/ 불면증을 돌보던 간병인도 다른이에게 가버렸고/ 나 이제 회색빛 재를 갈망하지 않으니/ 시계탑 문자판의 휘어진 바늘이/ 죽음의 화살로 보이지도 않네/ 과거는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네/ 자유는 눈 앞에 와 있으니/ 나는 모든 것 허락하네/ 햇살이 촉촉한 봄의 담쟁이 덩굴을 따라/ 뛰어내리는 것을 지켜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이란 그녀는 역사의 격랑과 개인의 상처로 파란만장하게 살았지만 누구보다 강하게 살다간 시인이다.
그녀는 여섯 살 때부터 시를 쓴 신동이었고 23세 때 첫 시집 ‘저녁’을 냈으며 다섯 살 때부터 톨스토이의 철자교과서에 따라 글 읽는 법을 배웠고 프랑스 말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세기 초 20년 동안 러시아의 가장 인기 있었던 시인이기도 한 그녀에게도 16세 때 부모의 이혼으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좋은 시를 만나면 ‘나는 감동에 젖어 모든 슬픔을 잊고 그것을 읽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이 한마디로도 그녀가 얼마나 시를 사랑했고 운명처럼 생각했는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슬픔이라며 슬픔을 시로 꽃피운 그녀를 생각해 보는 아침. 비로소 나도 슬픔만한 거름이 없다고 말해본다.
(천양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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