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현장에서 확인되는 한-러시아 대학생 우정
발굴현장에서 확인되는 한-러시아 대학생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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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7.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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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현장에서 식사 당번은 한국과 러시아측 대학생들이 하루에 각각 두 명씩, 순번제로 하고 있었다. 당번이 되는 조사원들은 그날만은 발굴현장에는 가지 않고 순전히 음식준비만 했다. 조야라는 러시아 여학생만은 붙박이 식사 당번이었다.

발굴현장은 텐트촌에서 1㎞ 가량 떨어져 있었다. 걸어서 20-30분이나 소요된다. 텐트촌과 발굴현장을 오가는 데는 군용트럭이 이용된다. 오전 9시 무렵 조사원들을 한꺼번에 싣고 갔다가 점심시간이면 다시 데려오고 하는 식이다.

왜 이렇게 숙소를 잡았을까? 정석배 교수는 물 때문이라고 했다. 나중에 발굴현장에서 확인한 사실이지만, 그 주변에서는 물을 구하기 힘들어, 특히 조사 중에 범벅이 된 심신을 씻어 내리기 위한 '샤워 시설'이 없었다. 조사원들을 위한 샤워 시설은 텐트촌 바로 옆을 흐르는 냇물 웅덩이를 말한다.

이렇게 험난한 곳, 지난한 환경에서 한국전통문화학교 재학생 16명(주로 2-3학년이었다)은 극동국립기술대학 재학생 20명과 공동 발굴조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 한여름 해는 9시가 넘어서야 지기 때문에 발굴작업은 대체로 오후 8시 정도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점심시간은 긴 편이었다.

묵을 텐트를 각각 정하고, 짐을 풀어놓은 다음 다시 군용트럭 편으로 발굴현장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현장까지는 완연한 대지였다. 정석배 교수에 의하면 이 넓은 대지가 발해시대 주거지로 추정된다고 했다.

조사원들은 정광용ㆍ김경택 두 교수를 특히 환영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뒤늦게 놀라게 한 주인공은 문화재청 이춘근(51) 국장이었다. 1남1녀를 슬하에 둔 그의 아들(19)이 바로 한국전통문화학교 1학년에 재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장난기가 발동한 기자가 현장에서 공개해 버렸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에서 4년 정도를 생활했으므로 러시아어에 능숙하다고 한다. 아마도 내년에는 그의 아들도 틀림없이 이 현장에 올 것이다. 통역은 도맡아 놓았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발굴 면적은 생각보다 좁았다. 대충 300평 가량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발해시대 토광묘만 약 45기가 확인되는 바람에 한-러 학생들은 쉴 틈이 없는 듯했다. 발굴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 각각 한국과 러시아 학생들이 조사를 하고 있었다.

두 나라 조사원들 사이에는 '발굴패션'이 확연히 달랐다. 조사원 중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양국 여학생들은 더욱 두드러진 대비를 보였다. 러시아 학생들이 거의 예외없는 '비키니 패션'이었던 반면, 한국학생들은 '양촌리 전원일기 패션'이었다.

이런 한국 학생들을 보고 기자가 "복길이 엄마 패션"이라고 했더니 어떤 학생은 "그러는 기자님은 양촌리 이장님 패션이네요?"라고 받아쳐 한바탕 웃고 말았다.

우리 조사원 중에 유난히 피부가 탄 남학생이 있어 누군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4학년 재학생이자 복학생으로 해병대 출신이라 했다. 이 학생은 그날 밤 열린 '한-러 모닥불 파티'에서 해병대 특유의 '엉거주춤' 춤 솜씨를 과시하기도 했다.

수은주가 38도까지 치솟은 연해주 폭염은 두 나라 대학생들이 누비는 발굴현장에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녹아 내리고 있었다.

연합뉴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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