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의 문명의 시원을 찾아사--아무르강가에서
김지하의 문명의 시원을 찾아사--아무르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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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1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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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우데가 갈색인들의 도시라면 이르쿠츠크는 백인천지이듯이 아직도 캄차카가 오지(奧地)요 화산과 온천의 땅이라면 하바로프스크는 첨단적인 백인과 혼혈들이 들끓는 미끈한 유럽 도시다.

“우리는 러시아의 흰 피부에 둘러싸인 섬이다.”
대학 민속학부 부총장 킬레 안토니나 세르게이예브나 할머니의 첫마디다.

‘할머니’였다.

그 옛날 목포에서 여러 혈족(血族)들에게 둘러싸여 살 때 만났을 법한 인자하고 따뜻한, 그리고 내내 미소를 잃지 않는 또 한분은 다알리아라는 젊은 학자였다. 나나이 샤머니즘에 대한 정겨운 소개와 식사로 시작된 대담은 그러나 얼마 안가 중국요리를 간판붙인 업소의 난장판 노래와 밴드의 확성기소리에 밀려 그야말로 술취한 중국인과 백인들의 야단법석에 둘러싸인 작은 외딴 섬이 되고 말았다.

나나이 샤머니즘의 갈 곳은 어디인가?

내년 6월 생명과 평화 세계포럼에의 초청 이야기와 함께 갖고 간 한매(寒梅) 두 점을 선사함으로써 겨우겨우 그 굴레를 뚫고는 나왔으나….

머리를 지끈지끈 죄어오는 짜증에도 소리소리 질러가며 얻어들은 몇 마디 지식은 그러나 단순한 지식나부랭이로 머릿속에 입력되질 않고 위기속에서 부딪힌 실존적인 각성의 육각(六角) 결정체 같은 것이었다.

―나나이 샤머니즘에서는 여무(女巫)가 우세한가?

“여무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능력이 중요할 뿐 성은 중요하지 않다. 이 점은 현대 남녀관에도 매우 중요하다. 샤먼의 역할은 문화의 담지자로서, 전통의 계승자로서, 약제사와 치료사로서의 기능인데 그것은 작은 샤먼의 일이다. 큰 샤먼은 죽은 이를 관에서 꺼내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영매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길닦음하는 ‘영혼인(Homo spiritus)’ 말인가?
“그렇다. 그 길닦음은 나나이 샤먼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나나이 샤먼의 우주는 어떻게 생겼는가?
“천상계 아홉, 인간계 아홉, 지하계 아홉으로 도합 스물일곱계의 세계가 있다.”

―나나이 샤머니즘의 현대적 의미를 묻는다면?
“맨 처음은 ‘슬로베카류비에’ ‘사람을 사랑하라’이니 인간끼리의 평화공존이고 그 다음은 자연생명의 보존이다. 물이 뜨거워질 때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 물고기 아가미에다 돌을 집어넣어 아래 찬물 쪽으로 가라앉히는 예절을 매우 중요시한다.”

―‘카사’는 한마디로 무엇인가?
“거대한 천도식이다. 처음 육신의 죽음 이후 일년 만에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주는 중요한 제사이니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간에 공동부담으로라도 어떻게해서든 꼭 치러야하는 나나이적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예절이다.”

―‘카사’의 정신을 간결한 주문으로 압축한다면?
“끼아-끼아, 엥두르-아마, 벨레치루, 호나-가, 아야지, 울렌지 바벤두”

―무슨 뜻인가?
“신이시여 신이시여, 엥두르(가족신) 아버지시여, 도와주세요, 가능하시다면, 주십시오, 제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아마도 한민족사상의 중심흐름이라할 ‘신(한)-이승·저승(울양)-천지인(천상·인간·지하)’의 길은 나나이 앞에도 그대로 열려있고 그것이 더욱 동북방 샤머니즘의 성수(聖數)인 ‘3’과 ‘9’로 일관되어 있는듯하다. ‘카사’는 또한 ‘나는 샤먼’ 신화를 안고있으니 고구려 창건기의 해모수·주몽·유리의 우주여행과 모자의 새 깃털에 그대로 연속되며 접신(接神)을 ‘아자미(ajami)의 방문’이라하여 ‘세계정신(아니마문디)’을 가리키고있으니, 그렇다! 현대인에게 가장 요청되는 ‘우주혼의 체현’이 바로 그것이다.

호텔 창 밖의 아무르강 위에 아침이 오고있다. 그러나 저 아침은 참으로 오고있는 것인가? 중국인들과 러시아 백인들의 포위 속에서 아무르강의 저 나나이 샤먼의 섬은 이승과 저승을 참으로 길닦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내년 6월 한반도의 세계 생명과 평화 포럼앞에서 오래고도 신선한 그 우주의 통로를 드디어 열 것인가?

(김지하 ·시인·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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