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바이칼이 보인다.
아 바이칼이 보인다.
  • 운영자
  • buyrussia@buyrussia21.com
  • 승인 2005.08.15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ㆍ러 유라시아 대장정' 랠리팀은 최대의 난코스라는 하바로프스크-치타 구간의 비포장 도로를 쉼없이 달려와 이제 목적지 `바이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막상 바이칼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자 랠리팀에게는 다소 초조한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바이칼은 도대체 무엇이며, 광복 60주년을 맞은 우리들은 왜 지금 뜬금없이 바이칼을 찾아가는 것인가'

시베리아를 횡단하며 랠리팀이 만난 러시아는 다양했으나 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무엇이고 러시아를 러시아답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대륙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 현재를 설명해줄 하나의 뿌리. 러시아에도 이 `뿌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편린(片鱗)들은 아직 부족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처지였다.
시베리아를 달리던 선조들은 왜 대륙의 끝자락 한반도까지 흘러왔는가. 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얼굴, 같은 피부색의 몽골리안은 우리와 어떤 관계인가.

시골 마을마다 보이는 솟대와 서낭당, 우리와 비슷한 문화와 언어들.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이들과 우리는 어떤 혈연(血緣)을 갖고 있을까.

끝없는 질문을 안고 랠리팀은 시베리아를 달리고 있었다. 앞서 7일 오후 랠리팀은 러시아의 브리야트 공화국 수도 `울란우데'에 도착했다.

칭기즈칸 시대에서부터 아시아로 통하는 관문으로 인식돼온 이곳은 인구 40만명의 제법 규모있는 도시로, 인구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브리야트인은 우리와 같은 혈통이기 때문에 외양상 한국인으로 착각할 만한 사람들이 많았다.

울란우데는 `붉은 강(red river)'이라는 뜻으로 원래 `우데(강)'라고 불리다가 1920년대 일본이 이곳을 점령했을 당시 얼어붙은 강위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온 강이 붉게 물들었다는 데서 `붉은 강'(울란우데)이란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한다.

울란우데 중앙에 자리한 레닌광장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 두상이 세워져 있어 과거 사회주의 소련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브리야트족(族)에게 붉은 색은 핏빛이나 공산주의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의미하기도 해 울란우데는 `아름다운 강'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인 8일 우리와 같은 얼굴의 친근한 브리야트인이 살고 있는 울란우데를 뒤로 한 채 랠리팀은 가슴뛰는 설렘으로 또다시 길을 나섰다.

이날의 목적지는 바이칼 호수변의 작은 마을 바솔스코예. 드디어 바이칼을 눈앞에 둔 것이다.

밤 9시. 해가 길어 아직 어둠이 채 깔리지 않은 저녁 노을을 뒤로 한 채 자그마한 목조건물이 모여있는 바솔스코예 마을에 도달했다. 차량마다 장착된 무전기를 통해 선두 차량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이칼이다!"



붉고 푸르고 어스름한 노을속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장관 그 자체였다.

차가운 담수를 직접 맛보기 전에는 해변인지 호변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백사장, 밀려오는 파도와 부서지는 하얀 거품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하늘과 물이 맞닿은 곳.

생명을 잉태하고 대륙을 품은 거대한 `생명의 시원(始原)' 바이칼이었다.

부산을 출발해서 20여일간 5천600km를 달려온 랠리팀은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자연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전쟁과 파괴, 분열과 갈등, 이기와 탐욕의 인간사는 대자연의 고요함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여정 내내 랠리팀의 가슴을 짓눌러온 답답한 질문들도 시원한 바이칼의 바람에 절로 씻겨나갔다.

고(古) 아시아인의 흔적을 따라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아가는 이 여정의 의미는 가장 시원적인 대지로 돌아가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위한 영감을 얻는 것이었다.

이 여정은 또한 대륙의 끝 반도에서 수천년간 머물면서 점차 잃어갔던 우리 조상의 대륙적 기질과 시야를 되살려내는 과정이었다.

랠리팀은 이제부터 시작될 유라시아 시대를 향한 한반도의 눈이자 더듬이였던 것이다.



지난달 22일 부산을 출발한 랠리팀은 분단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동해 바다를 거쳐 연해주로 들어왔다.

고려인과 조선족ㆍ한국인이 한데 엉켜 살고 있는 연해주에서 랠리팀은 20세기 초 최대의 민족적 비극이라는 고려인 강제이주의 피맺힌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우리의 옛땅, 발해 외성 앞에서 랠리팀은 광야에서 말 달리던 선조들의 함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사방이 탁트인 시베리아 평원과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침엽수림을 지나 도달한 곳은 우리와 똑같은 얼굴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둔 흔적을 따라 길없는 길을 뚫고 달려온 랠리팀 앞에 펼쳐진 것은 세계에서 가장 넓고 깊은 호수,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져간 우리 선조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 바이칼이었다.

랠리팀은 이제 모든 여정을 마치고 바이칼의 푸르른 물결앞에 섰다. 어렵고 힘든 여정이었다. 사전답사도 없었고 정보도 부족했다. 우리가 내딛는 한발 한발이 미지를 개척하는 발걸음이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고려인의 한맺힌 눈빛을 보았고, 분단의 아픔 속에 고된 삶을 이어가는 조선족과 탈북자를 보았으며,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한 반가운 사람들도 만났다.

6천km의 대장정동안 우리는 그동안 잊고 버렸던 동포를 만났다. 시원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둔 우리의 핏줄들을 하나씩 확인해왔던 것이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가 만난 이들은 아직 `광복'되지 않은 우리의 동포였고 아직 `빛을 찾지 못한' 우리의 과거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지금부터 풀어가야 할 숙제이자 우리의 미래였다.

20여일간 시베리아를 달려온 랠리팀 대원 고혜경 교수(가톨릭대)는 "`한민족'에만 매달리지 말고 뿌리에 대한 이해와 인류를 보듬는 자세로 시야를 넓히고 감성을 넓힙시다. 이 대지가 주는 감각을 절절히 느끼고 돌아갑시다"라고 대장정의 의미를 되새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