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여권은 한눈에 탁보면 알 수 있도록 각기 특징이 있다. 중국은 아예 빨간 색이고, 일본도 일장기를 디자인한 듯 빨간 색조다. 우리는 색깔이 크게 눈의 튀지는 않지만 나름의 맛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위조여부다. 외국인은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별하지 못하고, 한국은 OECD국가로 유럽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와 중국인들이 한국 위조 여권을 많이 사용한다. 이를 막으려면 한국인 여부를 체크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일 러시아와 핀란드 국경에 있는 핀란드 국경검문소. 국경수비대원들이 러시아에서 열차와 자동차 편으로 도착한 입국자들의 여권 심사에 나섰다. 입국자 대부분은 러시아인이지만 한국인들도 몇 명 있었다.
국경수비대원들이 러시아인들의 여권을 일괄 수거해가고 난 뒤, 한국 여권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돌연 A4용지를 돌렸다. 용지에는 ‘한라산은 어디에 있는가’ ‘박찬호는 어떤 선수인가’ 등 한글로 된 시험문제 20개 문항이 적혀 있었다. 모두 단답형 문제. 이른바 한국인 확인 시험이다.
열차를 타고 입국하는 경우는 객실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고, 버스를 타고 입국하는 경우는 따로 불려가 시험을 치른다. 시험은 비교적 자유롭게 치르도록 배려한다.
핀란드가 국경검문소에서 실시하는 한국인 확인 시험은 위조여권 소지자 색출을 위해서다. 중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이 한국 위조여권을 사용해 입국하는 경우가 늘고 이들의 불법 체류가 유럽연합(EU)으로 확대되면서 지난해부터 도입했다. 중국인 등이 한국 위조여권을 선호하는 이유는 한국인의 경우 EU 출입국 절차도 간소하고 유럽 전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EU 회원국이자 한국과 무비자 협정국이라서 여권만 제시하면 입국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던 한국 여행객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국경수비대원은 “한글을 쓰지 못하거나 한 문제도 못맞힐 경우 현장에서 신분조회를 한다”며 “이곳에서는 한국 위조여권 소지자가 가장 많이 적발된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에서의 한국인 확인시험은 옛 소련국이자 발트해 연안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가 가장 먼저 도입했다. 에스토니아도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데다 러시아 관광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동차나 기차로 불과 서너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어서 한국 관광객들이 유럽으로 빠지는 최적 코스다. 에스토니아는 2002년부터 A4용지 크기의 시험지를 나눠주고 한국인 확인 시험을 치르게 했다. 에스토니아의 한국인 확인 시험 문제는 보통 4문제에 4지선다형이었다.
다음 중 한국에 있는 산이 아닌 것은? 태백산, 소백산, 한라산, 장백산.
인순이가 종사하고 있는 업종은? 가수, 탤런트, 영화배우, 코미디언.
선동열의 직업은 야구, 축구, 농구, 배구식이었다.
모스크바와 핀란드 주재 한국대사관은 “에스토니아나 핀란드로부터 여권의 진위 여부를 묻는 확인 전화를 자주 받고 있다”며 “한국 위조여권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불법 거래되는 한국 여권을 구입, 사진만 부착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웃지못할 사건이지만 핀란드나 에스토니아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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