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트 거리-푸쉬킨 동상
아르바트 거리-푸쉬킨 동상
  • 이재원
  • ljw0302@hanmail.net
  • 승인 2006.05.26 1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푸쉬킨이 살던 집 맞은편에 있는
푸쉬킨과 그의 부인 나탈리아 동상 앞에서.

클레오파트라 말고, 서양의 최고의 미인을 뽑으라면
당연히 푸쉬킨의 부인 나탈리아의 이름이 거론된다.
푸쉬킨은 어느 파티에 참석했을 때
나탈리아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프로포즈를 했지만 그 대단한 푸쉬킨도 단번에 거절당했다.
2번만에 나탈리아를 결혼 승낙을 하게 되고,
이 결혼에 전 러시아, 전 세계의 남성들이
땅을 치고 통곡을 하게 된다.

그 당시 파리에서는 나탈리아의 머리모양,
옷 스타일, 하물며 손톱 모양까지도 유행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유럽의 슈퍼스타였던 것이다.


땅을 치고 통곡을 한 남성 중
프랑스 외교관의 아들, 남작 출신이자
군인 출신인 단테스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 단테스는 나탈리아의 친 여동생과 결혼,
옆에서 틈틈히 나탈리아를 손에 넣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

신은 공평한지,뛰어난 미모를 나탈리아에게 주었지만,
그에 걸맞는 도덕성이나 지헤를 갖추지 못하고
결국 나탈리아는 단테스와 눈이 맞게 된다.
이 단테스와 나탈리아의 연분은 유럽까지 소문이 났다 한다.

이에 푸쉬킨은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되고,
등을 맞대로 3까지 센다음 총을 쏘라고 한다.
하나, 둘, 셋을 외치고 난 후 되돌아 섰을때
푸쉬킨은 공중을 향해 2발을 쏘고,
단테스는 2발을 푸쉬킨의 하복부에 명중시키게 된다.
푸쉬킨은 그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

많이 사람들이 "왜 시인이 군인출신에게
결투를 신청했을까"하고 의문을 품었는데
그 후 푸쉬킨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단서가 될만한
메모 쪽지 한장이 발견되면서 알게된다.

그는 400여년간 내려온 가문이 자신 때문에
먹칠이 된 사실을 가슴아파하고 있었다.
두번째로,러시아 귀족사회에서는 푸쉬킨만 없다면
나탈리아를 넘볼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옆에서 계속 부추긴 이유도 있었다.
또 단테스와 연분이 났을때 나탈리아를 내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자신을 원망스러워했다.

결국,자신의 명예를 찾는 길은 죽음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자살 아닌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푸쉬킨을 자세히 보면, 곱슬머리에 얼굴이 검은편이다.
러시아의 한 황제가 이디오피아의 간디발이라는
흑인 노예로부터 도움을 받고, 친구로 삼는다.
황제의 친구인데, 평민과 결혼시킬수 없어
귀족의 딸과 결혼시키려 했지만, 아무도 찬성하지 않아
어마어마한 넓은 영토와 황금을 내걸고 귀족딸과 결혼시킨다.

간디발과 그 여자가 결혼해서 딸을 낳게 되는데
그 딸이 푸쉬킨의 3대 증조할머니이다.
한마디로, 푸쉬킨은 혼혈인이라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