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트 거리-빅토르 초이의 벽
아르바트 거리-빅토르 초이의 벽
  • 이재원
  • ljw0302@hanmail.net
  • 승인 2006.05.26 1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르바트 거리의 "빅토르 초이의 벽"



빅토르 초이는 고려인이다. 한마디로 소련동포.



원래는 '재러동포'라는 말이 맞다.

하지만 사람들이 '고려인'이라고 부르다 보니 그렇게 익숙해졌다.

(러시아말로 고려인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재러동포들이 많다.

루스꼬-까레이스키가 아닌 라시이스꼬-까레이스키 로 불러달라며)



어쨌든,



이 고려인들은 1860년 조선시대 때 한번, 일제시대 때 한번

이렇게 두번에 걸쳐서 러시아로 넘어왔다고 한다.



이 빅토르 초이의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러시아인이다.



1985년 고르파쵸프가 등장해서

이때 개혁이다 개방이다 세계평화다 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빅토르 초이는 당시 상트 뻬쩨르부르크의 광산 노동자였는데

음악을 좋아해 모스크바에 와서 저 벽 앞에서 처음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그룹 사운드 '키노'를 조직해 락(Rock)을 했다.



락이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의 반항, 정열등을 느낄수 있다

공산주의때는 금지되어있었지만,

고르바쵸프 때는 시대와 맞아떨어져 아주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도 음반 판매하는 곳에 가보면,

그의 음반들이 죽- 나열되어 있다.



그는 제2의 비틀즈라 불리웠으며,

미국 공연 2번, 유럽 공연을 5번씩이나 했었다고 한다.

또 1980년도 '루쥐니끼'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공연장이 꽉차고 밖으로 8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한다.



그는 러시아의 영웅이었으며,

안타깝게도 한국 공연을 앞두고,

에스토니아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다.



이때, 320명의 여성들이 그와 영혼 결혼식을 했으며

사람들이 1년반동안 30명씩 번갈아가면서

그의 묘지를 지켰다고 한다.



지금 이 벽 앞에도 락을 하거나, 빅토르 초이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모이곤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이 관광을 오면,

같은 핏줄이라 이렇게 벽 앞을 찾곤 하는데,

젊은이들이 사진을 못 찍게 하거나, 경계할 때도 있다.

신성한 우리의 영웅을 건들지 말라, 뭐 이런 뜻도 있다.



내가 사진 찍을 때에도 이런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몰래 사진 찍어왔다.

저 파란색 간이 화장실 뒤쪽으로 젊은이들이 앉아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