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3국을 거닐면서 느끼는 역사
발트3국을 거닐면서 느끼는 역사
  • 운영자
  • buyrussia@buyrussia21.com
  • 승인 2009.04.09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트 3국, 즉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는 중세의 고풍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중세엔 독일 영향권에 들어 있었고, 2차대전이후 소련에 합병됐다가 91년 독립했다.

라트비아의 리가. 이곳에 도시가 처음 건설된 것은 중세시기인 1201년경이다. 독일 브레멘 출신의 알베르트 북스헤브덴이 독일기사단의 리가 점령 이후 주교로 행세하면서 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한마디로 수탈을 위한 도시 건설. 당시 리가 토착민들은 토속 신앙과 성령을 지키고 싶었지만 칼을 앞세운 종교 앞에 끝내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 탈린을 가면 더 옛날 맛이 난다. 탈린의 구시가지는 시간이 멈춘 중세 도시 같은 느낌마저 준다. 600년 이상 '음울한' 고딕 양식을 지켜온 탈린의 구 시청사 건물부터 토옴페아 성과 성벽 길, 그 속에 구축된 '키에크 인 데 쾨크' 등이 모두 그런 기억의 흔적들이다.'키에크 인 데 쾨크'는 군인들이 성 아래 가옥의 부엌까지 훔쳐볼 수 있다는 뜻인데, 소위 '감시의 탑'이다.

토옴페아 성벽을 따라 걸으면 15세기 중세 주거지역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짐을 가득 실은 독일 무역상들이 마차를 끌고 사라지면, 그 사라진 지점 어귀에 길드거리가 나타난다. 거리는 곳곳에 반지하 상가를 두고 있다. 그곳에서 길드 수호신인 모리셔스 출신의 흑인 성인도 만날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 바로 탈린이다. '탈린'(Tallinn)도 에스토니아어로 '덴마크의 도시'를 뜻한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역사를 되돌아보자. 독일기사단은 리가를 거쳐 북진을 거듭하면서 탈린에 욕심을 냈다. 그러나 탈린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때마침 러시아와 스웨덴이 남진을 시도하자 이를 막기위해 독일은 덴마크를 끌어들였고, 오히려 덴마크의 발데마르 왕이은 치열한 전쟁 끝에 탈린을 정복했다. 그래서 탈린이란 이름이 붙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잊지 못할 전설도 있다. '하늘로부터 붉은 깃발이 뚝 떨어져 왕의 손에 쥐어졌다. 그것은 탈린을 정복하라는 하늘의 명령이었다'는 덴마크 전설이다. 그 깃발은 바로 붉은 바탕에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지금의 덴마크 국기라고 하니 하나의 역사가 된 듯하다.

그후 러시아 황제 이반 4세가 발트해 진출을 위해 독일과 전쟁을 벌였고, 발트는 또 다시 새로운 수탈에 시달려며 분할됐고, 에스토니아는 1561년 스웨덴에, 라트비아(당시 이름은 리보니아)는 1561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에 포섭됐다가 다시 1621년 스웨덴에 통합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