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의 라트비아, 그리고 수도 리가의 평온한 풍경
발트해의 라트비아, 그리고 수도 리가의 평온한 풍경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1.11.22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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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최근 구 소련의 라트비아를 방문했다. 목적은 수도 리가의 라트비아대학 동아시아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아의 풍경과 시’라는 주제의 회의 참석. 처음으로 이 나라를 찾은 김 교수에게는 모든 게 신났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모 신문에 지리적 인간 라트비아 주마간산기 라는 걸 썼다. 그중에서 라트비야 여행에 관한 걸 따모아보자.

'4박5일의 짧은 체제 중 주마간산격으로 살펴 본 리가와 라트비아는 기술 문명이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특별하게 좋은 자연 환경, 지리적 환경을 가진 곳이었다. '

수도 리가는 독일의 어느 도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유럽적인 도시였다. 지금 라트비아는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되어있지만, 유럽은 역사적으로 상호 문화교류가 활발한 지역이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리가는 고풍한 느낌이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였다. 리가의 구시가지의 조약돌 포장 길에는 석조와 벽돌의 옛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빽빽이 서있었다. (고층 건물이 많지 않은 이곳에서 신흥 지역 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고층건물의 하나는 ‘삼성’이라는 광고판을 달고 있었다.) 간판이 없는 좁은 길들에 서 있는 건물들은 음침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이 오래 눌러 살아 온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구건물의 상당수는 자세히 보면 화려하게 장식을 새겨 넣은 건물들인데, 이것들은 19세기 말의, ‘유겐트슈틸’ 또는 ‘누보아르’라고 부르는 양식의 건물들로서, 이곳이 유네스코에서 누보아르 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라고 했다. 과히 넓지 않은 강을 끼고 펼쳐진 공원의 푸른 나무와 잔디는 구시가지 전체를 자연의 일부가 되게 했다.

인구 70만의 리가는 우리 기준으로는 작은 도시이다. 사람이 북적대지 않는 공원은 시인이 시를 명상하면서 거닐 수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공원의 한 쪽에는 흰 주랑(柱廊)이 받쳐 든 오페라 하우스가 서있는데, 10월 한 달 내내 오페라, 콘서트, 발레 등이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입장료는 6000~7000원 정도인 것 같았다.)

도시도 오랜 시간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데, 리가는 그러한 도시였지만, 라트비아는 자연의 나라였다. 시골을 돌아 볼 기회를 가졌다. 리가 시를 가로지르는 다우가바 강은 도시를 벗어나자 곧 강변을 채운 무성한 나무들과 그 위의 맑은 하늘을 비추면서 흐르고 있는 유유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후에 이어서 농가들이 외롭게 서있는 초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의 하나는 집 곁에 전신주처럼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 기둥들이었다. 그 꼭대기에는 새둥주리를 받들고 있는 나뭇대들이 얹혀 있었다. 이것은 철따라 옮겨 오는 황새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한번 자리를 정하면,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황새들의 습관이라고 했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농가들 가운데에는 폐가처럼 보이는 집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많은 경우 폐가가 아니라 건축 중인 집들이라고 했다. 새 집을 짓거나 귀농하는 사람들은 집을 짓다가 몇 년 그대로 덮어 두고 돈이 모이면 다시 계속해 짓고 하는 식으로 집을 짓는 데 그러한 집들이 폐가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거주지와 집의 진정한 뜻을 생각하게 하는 참으로 여유 있는 삶의 표현이었다.

원래 라트비아는 12세기부터 독일에서 진출해 온 모험가, 기사, 신부들이 개척하면서 유럽 문명권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곳인데, 그러한 사람들의 성(城)들의 유적이 있다고 했지만, 그러한 성곽을 찾아보지는 못했다.

우리의 국도 넓이의 길에는 자동차가 많지 않았다. 우리가 갔던 도로의 상당 부분은 비포장 도로였다.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곳에는 포장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에서 하는 일은 계절에 따라 도로의 흙을 고르게 다지는 정도라고 했다. 사실 라트비아의 면적은 남한의 3분의 2 정도가 되지만, 인구는 230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공원에서 며칠 사이에 세 사람의 걸인을 보았다. 한 사람은 아코디언을 또 다른 사람은 트럼펫을 연주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에 본 50대 후반이나 60대 초의 부인네였다. 그녀는 별로 날씬하지 않은 몸매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들은 돈을 구걸하는 것보다는 공연에 대한 요금을 청하는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나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여들지는 않았다. 저녁 무렵에는 호텔 근처의 길에 수레를 밀고 온 장사꾼들이 기념품을 팔다가 일정 시간 후에 짐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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