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게이트의 숙명.. "안개가 꼈다고 정상을 못오르겠느냐"?
오일게이트의 숙명.. "안개가 꼈다고 정상을 못오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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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5.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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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유전 투자를 둘러싼 오일게이트 수사도 이젠 막바지에 이른 듯하다. 이희범 산자부장관이 불려갔고, 황영기 우리은행장도 곧 소환된다. 주변 조사가 끝나면 바로 정치권으로 들어갈 태세다.

그렇게 오일게이트는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어디까지이고, 어차피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는 게이트의 속성이 부끄럽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의 고뇌도 갈수록 증폭된다. 수사 주체인 서울중앙지검에서는 그래서 요즘 ‘선문답(禪問答)’이 유행이다. 수사 브리핑을 전담하고 있는 박한철 3차장검사의 독특한 은유화법 때문이다.

‘피의 사실 공표’를 교묘히 피해가면서도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 기 위한 박차장의 화법에는 검찰 수사의 ‘맥(脈)’을 짚어주는 묘미가 담겨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유전게이트 수사가 막 시작됐을 즈음인 지난달 22일, 박 차장이 던진 화두는 “봄이 왔으되 봄은 아니다”였다.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사건에 대한 부담감을 빗댄 말이다.

다음날에는 기자들이 압수수색을 앞두고 고의로 자료를 파기한 철도공사 직원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자 “호랑이가 사슴을 쫓고 있는데 토끼가 지나간다 해서 쫓아가선 안된다”고 짧게 답했다. 수사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증거인멸죄 따위나 검토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뜻이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한달여가 지난 12일, 박 차장의 답답함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주역의 궤를 뽑아봤더니 천지비(天地否 )라.” 하늘과 땅이 통하지 않는 형국이란 의미다. 피의자들이 입을 열지 않아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김세호 전 차관을 구속하면서부터는 박 차장의 선문답 내용이 사뭇 달라지고 있다 . “검찰 수사가 7분 능선을 넘어 8분 능선을 돌파하고 9분 능선 을 향해 가고 있다.” 고지가 가까웠다는 뜻이다.

“정상이 보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차장은 “안개(잠적한 허문석)가 껴서 잘 보이지가 않는다”고 답했다. “안개가 걷히겠냐”는 질문 에는 다시 “안개 때문에 정상에 오를 수 없는 건 아니다”고 되받아쳤다.

지난 16일 박 차장은 김세호 전 차관의 닫힌 입을 열게 하는 것이 마지막 고비라고 얘기하면서 일본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 의 명언을 소개했다.

“최고의 무사는 쳐서 이기지 않고 이긴 다음에 친다.” 검찰 수사가 이제는 ‘검도’의 경지를 논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빗댄, 자신감의 표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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