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러시아>마트료쉬카에 숨어 있는 러시아 경제의 허실
<신러시아>마트료쉬카에 숨어 있는 러시아 경제의 허실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4.06.16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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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료쉬카. 인형속에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의 대표적 관광상품이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끊은 민화속 여인을 기린다는 점에서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지만,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러시아인의 특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러시아 경제 역시 겉으로 보기에 잘 나가는 것 같지만, 경제강국으로 도약하는 데는 넘어야 할 장애가 많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외국인 직접투자(FDI) 통계다. 지난해 67억8천만달러로 상당폭 늘긴 했지만 경제 규모에 비해선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경제·사회 제도가 불투명하고 불신이 큰 탓이다.

무릇 사람과 상품의 드나듦에 불편을 최소화하고 속도감을 높이는 게 투자 여건 조성의 첫 단추다. 그 점에서 러시아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러시아에 들어가 공항 검색대와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데 꼬박 1시간30분, 길면 3시간이 걸린다.

비행기로 부친 짐이 손을 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항에 비닐을 이용, 여행 가방을 압박붕대식으로 싸주는 기계가 있을 정도다. 한 주재원은 “우리 돈으로 50만원을 주고 운전기사를 두고 있다”며 “생트집을 잡아 돈을 요구하는 경찰이나 차 도난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그 편이 싸게 먹힌다”고 말했다.

경제 시스템에선 1998년 모라토리움(대외채무 지급유예) 선언으로 붕괴된 금융부문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 러시아의 은행은 무려 1,300여개에 이르지만 예금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국책은행 스베르(Sber)뱅크 등 일부를 빼고는 대부분 ‘1은행 1지점’의 구멍가게 수준이다.

주러대사관 김회정 재경관은 “우리나라와 달리 은행의 파산으로 돈을 떼인 사람이 많았다”며 “지금도 스베르뱅크 말고는 예금 보장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특히 일부 은행의 경우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의 탈세를 돕는 사금고 역할을 하고 있어 금융위기가 반복되기 쉬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부의 집중도 상상을 초월한다. 억만장자 36명이 소유한 재산이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이르는 반면 전체 국민의 30~40%가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이런 차에 지난달 미국의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세계에서 부자가 가장 많은 도시는 모스크바”라며 100대 갑부 명단을 보도하자 러시아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유학생 신모씨는 “지난해 포브스에 중국 특집이 나간 뒤 중국 재벌들이 숙청당한 것을 지켜본 러시아 재계가 ‘포브스 공포’에 긴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석유·가스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크다. 국제 에너지 가격에 따라 경제 전체가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보호정책 없이는 자동차, 섬유 등 국내산업이 무너지고 말 것이란 우려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늦추는 빌미가 되고 있다. 수출입은행 모스크바 사무소 신동표 소장은 “수십년간 이어져온 관료주의와 부패가 일시에 정리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푸틴 정부의 과감한 개혁이 투자자의 불신을 걷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권석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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