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한인 성매매에 대해
모스크바의 한인 성매매에 대해
  • 운영자
  • buyrussia@buyrussia21.com
  • 승인 2004.10.14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 지도학생(남학생)이 오랜만에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민주화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석사과정에 들어온 뒤 마음을 다잡고 러시아 지역연구에 매진했고, 장학금을 받아 러시아로 유학 갔다.

박사과정에 다니는 그에게서 전해들은 근황은 다소 뜻밖의 것이었다. 그는 논문 준비를 하는 한편 동지들과 함께 성매매 반대운동을 펴고 있다. 그는 러시아에 온 많은 한국 남성들이 지위, 학력, 정치적 신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식 접대문화를 옮겨와 러시아 여성들의 성을 구매할뿐더러, 더불어 즐기기를 자신에게까지 강요하는 데 큰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러시아 마피아를 끼고 성매매 영업을 하는 한인 소유 업소도 다수 생겨났는데 러시아 여성들이 한인들을 기피하자 이들 업소는 중앙아시아에서 여성들을 수입하여 성매매에 종사시키고 있으며, 그런 영업을 하는 외국인은 한인들뿐이라 한다.

체제 전환기 경제적 고통에 싸인 외국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고 그 과정에서 구타와 욕설, 성폭력까지 가하면서도 이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항의하기 시작했으나 돌아온 것은 차가운 따돌림이었다.

사람을 사랑하기를 꿈꾸어 왔던 젊은이로서 최소한의 자기기율을 지키며 살고자 했으나 성적 착취에서는 본의 아니게 공범이 되기까지 하는 현실에서 괴로워하다가 그는 러시아에서의 한인 성매매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갖은 압력이 가해지고 있지만 그는 꿋꿋하게 인신매매적 성매매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국회에서 성매매방지법이 통과되고 최근 시행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가장 흔한 반발 근거는 성매매를 모두 금지하면 성매매 여성의 생계 수단이 없어진다는 것과 성문제에 국가가 법률로 개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문제에 관한 국가의 개입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매매방지법의 취지는 인신매매적 성매매를 근절하자는 데 있다. 성매매 여성들을 범죄자로 여기던 종래의 관념에서 벗어나 피해자로 규정하며 사회적 차원에서 그들의 자활을 지원해야 된다고 보는 것은 과거의 관련법에 비교하여 큰 진전이자 변화다.

범죄자로 규정되는 것은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여성의 인신을 사고팔고 감금하는 업주들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지원하기 위해 여성부는 38억원이라는 큰 액수의 재원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지만 물론 부족하다. 이들의 생계 문제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이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되 보호처분 아래 놓이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의 범죄자화’라는 낡은 개념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은 점이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전향적으로 시정되어야 할 사항이지 법제정 이전으로 돌아갈 근거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법에 대한 반발이 왜 이렇게 심한가? 한마디로 말해 “매춘은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논거 아래 성매매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강간의 경우도 그렇지만) 성적 의지는 일방적으로 행사되는 것이라 전제한다. 근대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노비나 농노 같은 예속민의 존재는 자연의 질서에 속하는 것이라 여겼고, 지배자는 피지배자에 대해 자의적 권력을 행사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기율 없는 권력의지가 전제적 지배자, 폭군을 낳았다.

이제 적어도 정치적 영역에서는 타인에 대한 폭력적 의지의 행사를 당연시하는 인간은 없다. 그런데 유독 성매매에 대해서만은 그것이 명백히 몸의 매매, 곧 인신예속이 따르는 행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폭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정치권력이 천부적 권리의 주체인 타인에 대한 존중에 입각하여 자기기율을 갖추면서 민주주의에 적응해 갔듯이 성적 의지 또한 타인에 대한 존중과 자기기율에 바탕을 두고 행사되어야 한다. 성매매 옹호자들은 서로 인격적으로 대하고 정성을 쏟는 관계, 곧 사랑을 하는 데에 좀더 노력을 기울일 일이다.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