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다르 전총리 러시아는 이제 좀 따분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가이다르 전총리 러시아는 이제 좀 따분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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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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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전대통령이 시장 경제를 처음 채택햇을때 깜짝 발탁했던 가이다르 전총리는 시장경제 중시자다. 구 소련을 비롯해 러시아적인 상황에서 시장경제론자라는 게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그 목표가 훨씬 뒤떨어지지만, 우리나라 보다도 더 뒤떨어질지 모른다, 그나마 시장경제가 필요하고 그게 어떤 것인지 보여준 총리다. 물론 그 와중에 부정부패와 마피아의 양산 등 부작용도 많았다.

그 가이다르가 러시아의 현 집권층 푸틴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통치철학을 시장경제 즉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위험한 것으로 보는 칼럼을 썼다. 그는 총선때마다 친 푸틴진영이 아니라 반 푸틴 진영에 서 있다. 당연한 글이지만, 러시아의 경제정책과 앞날을 보는 시각이 재밌다. 경향신문에 실린 기고다.


나는 러시아가 좀 따분한 나라였으면 좋겠다. 향후 몇십년만이라도 말이다. 20세기 러시아는 온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기록적인 격변과 사회적 실험의 시기였다. 이젠 휴식이 필요하다.

2003년 말까지만 해도 이런 바람이 이뤄지거나 적어도 이뤄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모스크바에 파견나온 외신기자들은 푸틴의 러시아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불행히도 러시아의 통치자들은 러시아와 외부세계가 심심하도록 내버려 두는 데 익숙지 않은가 보다. 원래 국민들을 겁주어 복종하게 하고 투자자들을 몰아내는 데는 불안감을 서서히 조성하는 것이 최고다. 나라가 민주적이냐 그렇지 않으냐는 투자자들에게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안정과 예상가능한 지도자이다.

투자자들의 태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관성’이라 할 수 있다. 투자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일단 투자결정이 내려지면 그 과정을 바꾸기도 어렵다.

러시아 정부는 지금 ‘기업 물리학(business physics)’의 법칙을 무시하고 진행중인 투자를 죽이는 그 어려운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사장이 체포됐을 때 러시아에 투자중이거나 투자에 관심이 있던 기업들은 이 일에 대해 ‘세상 물정을 좀 더 잘 알아야 하는 한 기업주’의 정치활동이 불러온 단독 사건으로 해석하려 했다. 2003년 후반 러시아 정부가 유코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세금 추징이라는 법적 수단을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유코스가 법적·재정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도 러시아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투자자들은 사태의 진전을 무시하려 애썼다. 그들은 “이건 예외일 것”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되뇌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램프의 요정 ‘지니’는 램프 밖으로 나와버렸다. 2004년을 거치면서 러시아 보안당국은 정치·경제 문제를 결정하는 주도권을 쥐게 됐다. 그들은 대기업에 대한 투쟁을 테러리스트에 대한 투쟁처럼 생각했다. 두 가지 투쟁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국은 유코스뿐만 아니라 더 많은 회사에 세금 징수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으며 이는 투자자들에게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명백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에 가장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영국 국영석유회사 ‘브리티시 피트롤륨’(BP)은 최근 코빗키노 유전에 대한 자사의 권리가 전혀 보장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재산은 언제든 러시아 정부가 회수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것들이 단기적이고 그다지 심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탈(脫)사회주의적 성장은 쉽게 멈춰질 수 없는(멈춰서도 안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만약 러시아 당국이 계속 러시아 경제를 흔든다면 불안 풍조는 뿌리박을 것이다. 그럴 경우 러시아는 중국이 이룩한 빠르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잊어야 할지 모른다. 대신 러시아인들은 그 절박했던 경제위기를 되돌리려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물론 누구도 언제 그 위기가 닥쳐올지 예견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선택하려 했던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는 러시아에 매우 위험한 시기가 될지 모른다.

이고르 가이다르 전 러시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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