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성을 보니 '고르바초프는 꼽추 출신?'
러시아의 성을 보니 '고르바초프는 꼽추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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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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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전통 있는 가문 출신은 '뼈대 있는 집안 사람'이라고 하고, 러시아에선 ‘푸른 피의 사람’이라고 한다. 표현이야 어떻든 한국 사람들은 자기 기원과 조상을 매우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족보라는 가문의 역사책이 있다. 출신은 ‘뼈대 있는 집안 사람이’라고 하고, 가짜도 많다고 하지만 한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심지어는 성을 바꾼다는 말은 죽음을 각오한 맹세라는 뜻이니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본이라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같은 김씨라도 경주 김, 안동 김, 김해 김, 울산 김씨 등 본은 각기 다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같은 본이면 결혼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가족의 역사를 모른다. 워낙 다양한 민족이 섞였고 지역 간 이동도 많았기 때문이다. 19세기까지는 러시아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성이 없었다.

10월 혁명 이후에야 주민등록 체계가 생기면서 모든 사람이 성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이상하고 웃기는 성이 많이 있다. 내 성은 러시아말로 ‘수보타(토요일)’에서 기원한 것이다. 내 조상 중에 누가 토요일에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토요일에 성을 만들러 관청에 간 것일까?

‘토요일’이란 성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파리’, ‘버섯’, ‘바보’, ‘주머니’ 등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단어 대부분이 성으로 쓰인다. 예컨대 고르바초프는 꼽추, 톨스토이는 뚱뚱한 사람, 고리키는 맛이 쓰다는 뜻이다.

‘대변’, ‘환자’, ‘추남’, ‘외설적인 사람’ 등 부르기에도 민망한 성이 많다. 러시아에서는 시집 간 여자가 자기 성을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게 일반적이지만, 남편의 성이 부르기 이상하면 반대로 남자가 부인의 성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족보는 것은 단순히 가족의 역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그 가족의 역사에 포함되기 때문에 세상을 좀더 바르고 훌륭하게 살려고 한다. 바로 내가 아닌 ‘우리’라는 한국인의 공동체의식이 잘 표현된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자기 조상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집안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족보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아나스타샤 수보티나(러시아인)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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