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8월의 악몽은 계속된다
러시아 8월의 악몽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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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1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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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무슨 ‘악령(惡靈)’에 휩싸이기라도 한 것일까. 지난 4일 소형 잠수함 프리즈(AS-28)가 침몰했을 때 러시아 국민들은 10년이 넘게 계속되는 ‘8월 악몽(惡夢)’을 떠올렸다. 다행히 이번에는 해상 조난 76시간 만에 승조원 7명이 전원 구조됐지만.

8월의 악몽 시리즈는 지난 1991년 소련 붕괴 후 8월에 보수파가 국가 전복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첫출발이었다. 이어 1995년엔 러시아군이 체첸 반군의 수도 그로즈니를 장악하면서 러시아 사상 최악의 내전(內戰)이 벌어졌다. 그해 여객기 추락사고도 줄을 이었다. 러시아 여객기를 타는 것은 죽음을 연상시킬 만큼 공포로 다가왔었다.

1998년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으로 러시아는 경제 위기에 빠졌다. 1999년에는 모스크바 아파트 연쇄 폭발 사고가 발생했고, 2000년에는 핵(核)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어뢰 폭발로 바렌츠해(海)에서 침몰하면서 승조원 118명 전원이 숨졌다.

2003년 8월에는 파르후트디노프 사할린 주지사 등 사할린주 고위관리 20명이 탑승한 Mi-8 헬리콥터가 캄차카주(州)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트키 산악지역에서 추락, 몰사했다. 이번 잠수정 침몰사고가 발생한 인근 지역이다. 또 그해에는 퇴역한 핵잠수함 K-159호가 해체 작업을 위해 예인되던 중 바렌츠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조원 7명이 숨졌다.

지난해에도 투폴례프(TU)-134, TU-154 여객기가 체첸 반군소속 여성 테러범들의 자폭테러로 흑해(黑海) 인근에서 연쇄적으로 공중 폭발, 89명이 숨졌다. 이 모든 대형 사건이 모두 8월에 발생했다. 그야말로 초대형 사건·사고가 8월이면 약속이나 한 듯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특히 쿠르스크호, 핵잠수함 K-159, 이번 프리즈호까지 잠수함 관련 사고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8월이었다.

러시아의 8월은 우연으로 돌리기 곤란할 정도로 너무 많은 사고가 발생한다. 안전 규정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대형사고의 주된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8월이 시작되면 아예 몸조심에 나서고, 주위 사람들에게 각별한 주위를 당부하고 수시로 안부를 묻는 등 극도의 긴장감에 사로잡힌다. 휴가 중에도 비상연락망을 챙기고 가족들이 함께 떠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지난 2000년과 2003년 잠수함 사고 발생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흑해 크림반도와 이탈리아에서 각각 휴가를 보내던 중에 사고 소식을 보고 받았다. 쿠르스크호 사고 발생 당시에는 휴가지에서 복귀하지 않고 휴가를 즐기려 했다가 언론의 혹독한 비난 세례를 받았었다. 푸틴 대통령은 잇단 잠수함 사고에 대해 “군의 기강 해이가 만연해 있다는 증거”라며 고강도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했었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도 사고의 심각성을 간과한 채 휴가를 보내려 한 것은 직무유기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8월 대형 사고 발생에 대해 “전통적으로 휴가에 대한 생각 등으로 긴장이 해이되고 나태해지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이 장기 휴가에 대한 기대로 긴장감이 풀리는 시기라서 대형 사고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잇단 재난사고는 어느 나라에서든 안전사고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는 순간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조선일보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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