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러시아 억만장자 유리 밀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러시아 억만장자 유리 밀너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3.03.01 0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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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재벌(갑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자리를 잡아갈 징후를 보이고 있다. 올리가르히로 불렸던 러시아 신흥 재벌, 즉 갑부들은 그동안 부당하게 끌어모은 돈을 자신의 안위나 부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 왔으나 최근들어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부총리 출신의 금속 분야 올리가르히인 포타닌은 최근 빌 게이츠 재단이 추진하는 사회봉사및 기여에 기부하기로 했고, 올리가르히식으로 돈을 벌지 않은, 진정한 벤처투자가는 러시아와 러시아의 젊은 미래를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다. 몸을 숨기고 있던 이 벤처투자가는 유리 밀너(51) 디지털스카이테크놀로지(DST) 회장이다. DST는 페이스북 투자로 대박을 내면서 전세계에 알려진 벤처전문 창투사다. 이미 러시아에선 인터넷및 게임 유력기업 메일닷루(Mail.ru)를 키워냈다.

그는 젊은 시절 노벨상 수상자가 되거나 우주인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을 쫒아 엠게우(모스크바종합대학) 물리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확인한 것은 그 즈음. 1980년대 중반 밀너는 자신이 노벨상을 탈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자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로 갔다. 그는 실질적으로 와튼 스쿨을 졸업한 러시아 출신 1호다.

러시아로 돌아온 그는 모스크바 암거래 시장에서 고물 컴퓨터를 팔며 돈을 모아 2000년대 초반 정보통신(IT)에 투자했다. 당시는 석유와 가스 부분에 투자해야 수익을 높일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언론과 만나 IT에 투자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에는 IT 투자가 수익성이 없었다. 그러나 물리학과 선배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유명한 질문 ‘10년 후 과학은 얼마나 발전할까’를 늘 머리를 두고 있었다. IT가 세상을 바꾸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밀너에게는 ‘인터넷이 바꿀 미래’가 바로 수익원이었다. 나아가 외부 투자를 꺼리던 마크 저커버그도 만나 페이스북 최대 투자자가 됐다. 페이스북외에 SNS 의 트위터, 소셜포머스 기업 그루폰, SNS 게임 선두주자 징거 등 세계적인 IT업체들의 주요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투자하면 성공한다는 속설이 퍼지기도 했다.

그의 삶 역시 러시아 올리가르히들과는 달랐다. 올리가르히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영국을 건너가 부유하고 편안한 삶을 즐기고, 안정된 곳에 투자(축구단 언론 등)해 이름을 알렸지만, 그는 끝까지 미국을 고집했다. 월스트리트나 실리콘 밸리의 치열한 경쟁과 빡빡한 삶을 즐겼다. 이를 위해 최고급 저택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올리가르히들과는 또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근에 ‘생명과학 진보상’을 만들어 11명의 과학자들에게 300만 달러씩을 줬다. 지난 여름에는 ‘기초물리학상’을 만들어 9명에게 각각 300만 달러씩 주기도 했다.

수상자들 대부분은 밀너를 만난 적도, 그의 이름조차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과학자들이었다. 미국을 거점으로, 벤처 투자를 즐겨하는 밀너는 러시아에서 기존의 올리가르히와 같은 유명인사는 아니었다. 페이스북 투자로 러시아보다는 미국, 서방세계에 더 알려진 억만장자다.

그가 만든 두 상의 선정 기준은 밀너 답다. ‘실패 위험이 높으며, 삶을 바꿀 수 있는 연구’다. 한때 노벨상을 꿈꿨던 밀너가 노벨상과 같은 목표를 가진 상을 스스로 만들어 아낌없이 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상금 300만 달러는 노벨상(800만 크로네)의 두 배가 넘고, 공동수상의 경우 상금을 나누는 노벨상과 달리 개개인에게 300만 달러를 준다. 지금까지 어떤 과학상도 이만한 상금을 주지는 않았다.

러시아계인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브린의 부인이자 유전자 검사업체인 ‘23앤드미’의 공동창업자 앤 워지키, 페이스북 투자로 뜻을 같이한 저커버그와 부인 프리실라 챈이 이같은 밀너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올리가르히 포타닌이 빌 게이츠와 뜻을 같이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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