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정보기관 FSB 오스카 상을 아시나요? 지난해 수상작은?
러 정보기관 FSB 오스카 상을 아시나요? 지난해 수상작은?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3.03.02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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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은 여론전의 효과를 잘 안다고 한다. KGB 요원 출신 답게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으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인식한 탓일 수도 있고, 대통령에 오른 뒤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일 수도 있다.

여하튼 그는 2000년 집권 이후 언론을 장악해왔다. 야당 성향의 TV를 축출하고 국영화 과정을 통해 방송을 손아귀에 넣었고, 친 정부 영화 제작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제정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KGB 후신인 'FSB발전에 기장 기여한 영화에게 주는 상' (FSB 오스카상)이라는 것도 있다. 2006년에 처음 시상되었다고 하는데, 매년 FSB와 그 요원들의 활약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영화가 이 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된다고.



지난해 11월 카렌 샤크나자로프 감독이 '벨르이 찌그르(백호)가 FSB 오스카상을 받았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구 소련군 탱크 운전병이 독일 나치 유령부대와 싸우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전투 중 기억상실증에 걸리지만 "집에 돌아가 치료를 받으라"는 자상한 KGB 요원의 제안도 거절한 채 "나는 소련군이다"라며 승리를 향해 돌진한다. 이 KGB요원으로 분한 배우에게는 '올해의 배우상'을 안겼다.

샤크나자로프 감독은 'KGB 오스카' 수상 소식을 듣고 망설였다고 한다. 이 상을 받으면 영화계 동료들이 수군댈 것이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턱시도 차림으로 모스크바 루비안코 광장에 있는 FSB 본부에서 파파라치나 일반 관객 대신 보안요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정부와 영화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수상 소감을 밝혔다.

FSB는 왜 영화상을 수여하는 것일까. 전 KGB 직원인 푸틴 대통령이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대중문화를 장악하려는 정책의 일환이라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최근 분석했다.

그렇다면 받는 사람은? 돈 때문이다. 러시아 영화계는 푸틴 정권의 당근을 거부할 처지가 아니다. 러시아 영화계에는 90년대 초반 구 소련 붕괴로 정부지원이 끊기면서 많은 영화 제작사가 문을 닫은 트라우마가 있다. 국가적 지원없이 영화 제작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기관이든, FSB든, 주는 돈을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FSB는 직접 영화, TV 드라마도 제작한다. 2004년에는 2002년 일어난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을 모티프로 삼은 영화 '퍼스널 넘버'를 만드는 데 700만달러(76억원)를 쏟아 부었다.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은 체첸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반군 42명이 850명의 관람객을 인질로 잡자 FSB가 이를 진압하려고 가스를 살포해 인질 중 130명이 사망한 최악의 참사였다. 하지만 배경을 극장에서 서커스장으로 옮긴 영화에서 인질들은 FSB의 활약에 힘입어 모두 무사히 구출된다. 무슨 의도로 제작한 것인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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