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가 남긴 모든 문양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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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6.27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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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Myth and Symbol

아리엘 골란 지음, 정석배 옮김

푸른역사, 1212쪽, 5만9000원

두툼하다는 표현으로 모자랄 만큼 뚱뚱하다. 한 손으로 들기가 버겁다. 1200쪽이 넘는 두께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몇만년 전 지구에 나타났던 모든 문양을 담은 이 야심찬 책은 열자마자 그림이 눈을 끌어간다. 러시아에서 공부할 때 처음 이 책과 만난 옮긴이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도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이 그림”이었다고 했다. 2~3쪽마다 나타나는 그림을 읽다보면 그 아름답고 기묘한 무늬와 기호가 우리를 저 아득한 선사시대로 데려간다.

한국 토기에서 자주 발견되는 지그재그 열(列) 무늬가 유라시아와 흑해, 서시베리아, 중앙 유럽, 영국에서도 나온다. 지은이는 그 지그재그 다발이 비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옛 문양에서 흔히 보이는 삼각형 또한 여러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여섯 개 꽃잎이 든 둥근 형태의 ‘로제트 무늬’는 태양의 기호였다. 1장 ‘비와 하늘’로부터 28장 ‘무늬의 양식’까지 스물여덟개 주제어에 따라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한 풍부한 내용이 첫눈에 질린 몸매를 넘어선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 인류의 조상이 남긴 정신의 결정체인 문양은 이집트 것이든 로마 것이든 번역이 필요없다. 그림 속에서 헤엄치던 눈이 좀 자유로워질 때쯤 지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연구의 본질은 고대 상징을 해독하고, 상징을 매개로 표현된 종교적 신앙을 복구하는 것이다. 필자는 신석기시대에 종교가 존재하였고, 그 종교가 근본적으로 초기 농경문화가 분포한 근동과 동남 유럽 전지역에서 공통적이었음을 논증했다.”

지은이 아리엘 골란(83)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1960~70년대에 고고학·민속학·지역학 조사활동에 참여하며 이 방대한 작업을 준비했다. 20년 동안 상징적 기호를 연구한 그는 “전세계적으로 보이는 서로 흡사한 상징적 무늬와 신화적 모티브는 다(多) 중심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공통의 연원을 가진 것으로, 그 연원은 바로 구석기시대에 생성된 신화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 모든 표현물이 종교적 개념이 도식적으로 형상화된 상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골란은 서론에서 “이 책은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며 “충분한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독자에게 말했다. 인류의 기억을 압축해 놓은 듯한 책 속에 노인 한 분이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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