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항기 강제착륙 후폭풍에도 끄떡않는 벨라루스, 뭘 믿고?
민항기 강제착륙 후폭풍에도 끄떡않는 벨라루스, 뭘 믿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5.26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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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벨라루스 고립작전 나서 - 영공진입 금지, 추가 제재 등
벨라루스, 폭탄 테러 위협 거듭 강조, 야권인사 여친도 구금

벨라루스가 자국 영공을 지나는 민항기,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RYANAIR) 소속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킨 뒤 야권 인사 등을 체포한 사건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24일 임시 정상회의를 열고 이 사건에 대한 대책을 합의, 발표했다. 벨라루스 항공사 '벨라비아' 소속 여객기의 EU 영공 비행및 공항 접근 금지 조치와 EU 소속 항공기의 벨라루스 영공 통과 회피 권고, 벨라루스 고위 관리들에 대한 추가 제재 등이다.

영국 항공당국, 벨라루스 모든 항공기의 운항허가 정지/얀덱스 캡처
EU 정상회의, 벨라루스 항공사의 유럽 운항 금지/얀덱스 캡처 

하지만 EU의 이같은 조치가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로 국가간 이동이 크게 줄어들었고, 벨라루스에 대한 EU 제재가 상당 수준으로 가동되고 있는 상태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우선 EU 정상들은 벨라루스 국적 항공기가 EU 영공을 비행하거나, 공항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EU에서 탈퇴한 영국도 '벨라비아 항공'의 영국 운항 허가를 정지시켰다.

EU 정상들은 또 역내 항공사에 벨라루스 상공 비행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 라트비아 항공사 에어발틱 등은 즉각 벨라루스 영공을 통과하는 항로로 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에어발틱 여객기는 25일 벨라루스 영공을 우회,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영국도 자국 항공사에 벨라루스 영공 비행을 피할 것을 권고했다.

벨라루스를 우회해 우크라이나로 가는 라트비아 항공사 에어발틱 항로/캡처

하지만,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벨라루스의 하늘길이 막힐 경우 유럽 항로가 복잡하게 꼬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외교담당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벨라루스가 지난해 여름 대선 불복 시위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자국을 침공하려 한다는 이유로 육상 국경을 봉쇄했다"며 "항공편까지 막힐 경우 벨라루스는 과거 '철의 장막' 때처럼 반체제 인사들의 탈출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U 정상들은 또 벨라루스 고위 관리와 기업을 더욱 광범위하게 추가 제재하기로 했다. EU는 지난해 대규모 시위를 강경진압한 루카셴코 대통령을 포함한 벨라루스 고위 인사 60명을 제재 대상에 올린 상태다. 이들은 EU 입국이 금지되고 자산이 동결됐다. EU는 지난해 11월 루카셴코 대통령과 그의 아들 빅토르까지 제재 명단에 올려 앞으로 추가로 제재할 대상이 남아 있는지 여부가 궁금하다. 

EU의 대 벨라루스 성명도 강경일변도다. 라이언에어 항공사의 여객기 강제 착륙을 벨라루스 정부에 의한 '납치 행위'로 규정하고, 현장에서 체포된 야권인사 로만 프로타세비치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는 자국 주재 벨라루스 대사를 초치해 강제 착륙 사건에 대해 강력히 규탄했다.

라트비아는 아예 자국 주재 벨라루스 대사와 외교관들을 추방하기로 하기로 했다. 

라트비야, 벨라루스 대사와 모든 외교관 추방/얀덱스 캡처

미 백악관도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뻔뻔한 모욕”이라며 즉각적인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서방측의 강력한 대응에 벨라루스는 한걸음도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폭탄테러를 이유로 '라이언에어'를 강제 착륙시킨 것을 정당화라도 하듯이 24일 오후 "폭탄 테러 위협을 접수했다"며 독일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2시간 동안 이륙을 막았다. 

벨라루스 교통부 항공국은 '라이언에어' 강제착륙의 이유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로부터 받은 폭파 협박 서한을 제시했다. "(5월 중순 그리스에서 열린) 델피 경제 포럼(Delphi Economic Forum) 참석자들이 귀국하는 (라이언에어) FR4978 편에 폭탄이 설치돼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격을 중단하고, EU가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폭탄이 23일 (리투아니아) 빌뉴스 상공에서 터질 것"이라는 협박 서한이다. 

하마스, 라이언에어 항공사 사건 연루 부인/얀덱스 캡처

하지만, 하마스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하마스를 악마화하고 팔레스타인인들과 그들의 합법적 저항에 대한 국제적 동정여론을 막으려는 어떤 의심스러운 세력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벨라루스가 이렇게 대응하는 것은 역시 믿는 구석인 '러시아' 때문이다. 지난해 시위 사태 당시에도 루카셴코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여러차례 만나 지지를 확보했다. 이번에도 러시아로부터 변함없는 지지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측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4일 러시아를 방문한 니코스 덴디아스 그리스 외무장관과 회담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벨라루스의 여객기 강제착륙 사건에 대한 평가를 성급하게 내리지 말 것을 촉구했다. 

자하로바 대변인, 라이언에어 강제착륙에 대한 서방의 반응을 '히스테리'로 규정/얀덱스 캡처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도 벨라루스의 여객기 강제 착륙을 비판하는 서방을 향해 (과거에 일어난) 오스트리아와 우크라이나 당국의 항공기 강제착륙 사건에 모두 충격을 받든지, 아니면 벨라루스의 유사한 조치에 대해 충격을 받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녀가 지적한 오스트리아 건은 지난 2013년 7월 미국의 요청으로 오스트리아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탄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킨 사건을 말한다. 당시 모스크바에서 열린 가스수출국 포럼에 참석한 뒤 귀국하던 모랄레스 대통령의 전용기가 미 정보당국의 기밀을 폭로하고 러시아로 망명한 미 정보요원 에드둬드 스노든을 몰래 태웠다는 의혹을 받아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에 비상착륙 해 14시간 동안 수색을 받은 바 있다.

2016년엔 벨라루스 여객기가 우크라이나측에 의해 키예프에 강제 착륙당한 적이 있다. 

체포된 텔레그램 채널 넥스타Live 전 편집장의 구치소 영상이 처음 공개/얀덱스 캡처
체포된 뒤 구치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프라타세비치 전 넥스타 편집장/러시아 매체 영상 캡처 

강제착륙 뒷 이야기도 하나씩 나오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라이언에어'의 마이클 오리어리 최고경영자(CEO)는 24일 벨라루스 당국은 로만 프로타세비치와 그의 여자 친구를 체포하기 위해 사실상 납치한 것이라며 함께 타고 있던 벨라루스 정보요원들도 민스크 공항에서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벨라루스 당국은 프라타세비치의 여자 친구로 알려진 소피아 사페가(23)도 체포했다. 사페가는 러시아 국적이어서 주벨라루스 러시아 영사가 구치소에서 그녀를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타세비치와 사페가는 민스크의 오크레스티나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고 한다. 오크레스티나 구치소는 지난해 대규모 시위 당시 시위 참가자들이 끌려가 고초를 겪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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