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톨스토이의 삶은 성경의 '욥'을 닮았다?
대문호 톨스토이의 삶은 성경의 '욥'을 닮았다?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0.09.18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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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귀족출신이다. 모스크바서 그리 멀지 않는(러시아적 거리감각으로 보면 그렇다, 한국식으로 보면 멀 수도 있지만) 곳에 그가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무덤이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가 있다.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위대한 작품을 남긴 그의 삶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문학적으로만? 아니면 삶 자체를..

그 중에 이런 시각이 있다. 빼어난 소설가이자 전기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톨스토이를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나병에 걸린 뒤 모든 것을 잃어 영적 고통을 당하는 성경 속 인물 욥에 비유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나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으며 13명의 자녀를 얻었고 생전 큰 명예를 누렸다. 그런데 왜? 욥에 비유했을까? 한순간 ‘무(無)’를 통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츠바이크가 탁월한 통찰을 통해 길지 않게 남긴 톨스토이 전기를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앤드류 노먼 윌슨은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긴 비판적 전기를 남겼다. 톨스토이(앤드류 노먼 윌슨 지음/이상룡 옮김/책세상/3만8000원)이다.

이 전기는 기존의 여타 톨스토이 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방대한 자료와 심층적 명제들을 토대로, 비판적 시각에서 톨스토이의 문학과 삶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번역자 이상룡씨는 “톨스토이 연구자나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 특히 톨스토이 문학세계와 인간적 내면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더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줄 것”이라고 상찬했다.

톨스토이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키워드는 여자, 신, 러시아다.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산 말년의 톨스토이를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젊은 날의 톨스토이는 사교계의 단골 손님이었다. 그만큼 그는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

톨스토이는 두 살 때 어머니, 여덟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보낸 불우한 청소년기와 무위도식했던 대학생활을 지냈다. 사교적 단골손님으로 흥청망청 살았지만, 사회적으로 반정부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대 혼란기를 겪으면서 그는 앞날을 두고 방황해야 했다. 마음속 깊숙이 동경했던 프랑스를 여행하는 도중 기요틴에서 무참히 사람의 목이 떨어져나가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유럽 문화에 좌절했고 절망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톨스토이는 작품 활동에 몰두했고, 혼란스런 러시아의 사회상이 훗날 그의 작품 소재로 그대로 투영됐다.

‘전쟁과 평화(1869)’ ‘안나 카레니나(1876)’ ‘부활(1899)’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 수많은 대작이 쏟아졌다.

저자는 “그저그런 삶을 살았던 톨스토이는 러시아 역사가 낳은 기이한 산물”이라고 했다. 만약 그가 이 특정한 시공간과 상황 속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그렇게 살거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평했다.

구도자의 길을 가던 말년에, 톨스토이에게 토지와 재산, 저작권의 소유는 거추장스런 존재였다. 가정까지도 그랬다. 어느 날 자기 재산을 모두 빈곤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의 저작을 모든 사람에게 보급하려고 마음먹었다.

톨스토이의 이 같은 결심은 그러나 가족들에게는 악몽이었다. 그는 가족과의 불화로 고민하다 죽기 10일 전 가출해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시베리아의 한 간이역장 관사에서 숨을 거둔다. 82세.

그는 가까운 친척들 이외에 여타 동료들과의 교류에는 비교적 소극적이었고 전원에서만 살았다. 그런 소외된 생활과 귀족으로서의 특권은 톨스토이가 삶의 후반부에서 정부를 신랄히 비판했음에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

서슬퍼런 시절에 사회주의 혁명가들이나 문필가들은 대부분 시베리아 광산에서 소금을 캐거나 검열 당국의 탄압에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전쟁의 부당성과 계급제도의 차별성, 도시 하층민들의 굶주린 삶과 영양실조, 사회적 모순을 글로 비판했다. 그럼에도 비밀경찰이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푸시킨에 이어 대문호 톨스토이가 등장하면서 러시아 문학은 프랑스를 능가하는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저자는 장대하고 서사시적인 러시아의 풍광과 배경은 오히려 오밀조밀하고 퇴폐적 삶에 탐닉했던 프랑스 문필가들을 압도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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