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처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처 소피아는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1.05.3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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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사망 100주년 기념식이 러시아에서 열렸다. 그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이자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은 타락한 그리스도교를 배제하고, 투철한 원시 그리스도교에 복귀해 간소한 생활을 영위하고 악에 대한 무저항주의와 자기완성을 신조로 하여 사랑의 정신으로 전 세계의 복지에 기여하려는 것이었다. 1885년에는 사유재산을 부정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잘 알려졌으나 그의 처 소피아에 관해서는 악처라는 것외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처 소피아는 톨스토이와 사유재산권 문제로 대립한 뒤, 일체의 저작권을 맡아 관리했다.

그녀는 남편의 소설을 청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남편이 문호로서 명성을 떨치는 것을 기뻐했다. 소피아는 남편이 소설로부터 이탈하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다투기 시작했는데, 톨스토이는 62세경부터 변했고, 소피아는 50세경부터 히스테리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정교회에 속하지 않는 성령부정파교도(聖靈否定派敎徒)와 친교가 있었으며, 4000명에 달하는 이교도들을 미국에 이주시키기 위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부활'(1899)이다.

'부활'에서 동방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원에서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그는 많은 작품과 논설을 발표했다.

톨스토이는 만년에 종교에서 구제를 받으려고 했다. 사유재산과 성욕을 부정하고, 순결을 내용으로 하는 작품을 썼을 때부터 부인 소피아와의 사이가 험악하게 됐다. 톨스토이의 사상의 변화에 대해 소피아는 배신자로 생각했던 것이다.

마침내 1910년 10월 29일 이른 아침 장녀와 주치의를 데리고 집을 떠나 방랑의 여행길로 오른 톨스토이는 도중에 병을 얻어 아스타포보(현 톨스토이역)의 역장관사에서 사망했다. 1910년 11월 20일 82세의 나이로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대문호로서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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