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려는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음미해야 할..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려는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음미해야 할..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6.07.10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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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을 달리는 계획을 세운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나지막하게 입에 올리기만 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라는 단어. 주변에서 "언제 한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같이 타자"는 얘기를 듣는다. 젊은 시절,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 봤을만한 최고의 여행이다. 

러시아어로 뒤덮인 낯선 사람들과 뒤섞여 보드카에 취해 기나 긴 시간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을 스쳐 지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일 수도 있다. 더욱이 감동 짙은 영화나 문학작품에서 등장하는 시베리아 열차에 대한 일종의 로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닥터 지바고’나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수많은 문학작품,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등 러시아아 대한 애틋한 환상은 끝이 없다.

그리고 시베리아 벌판 위를 기적소리 요란한 기차를 타고 횡단하는 판타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연기를 뿜어내며 달리는 열차 옆 푸르스름한 어둠 속 자작나무숲 위로는 아마도 늑대의 눈빛과도 같은 날 선 달빛이 가득하리라는 환상을 품고.

하지만 실제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비좁고 낯설고 지루하다.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가 귀를 울리고,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만 하는 열차 생활은 그렇게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샤워는 고사하고 세수하는 것도 불편하기만 하다. 화장실 한 쪽에 있는 조그마한 수도는 꼭지 아래를 손으로 밀어 올려야만 물이 나오게 되어 있어서 불편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전기 사용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 객차 사이에 놓인 보일러의 뜨거운 물로 식사를 해결한다. 인스턴트식품에 물을 부어 먹는 것은 괜찮은데, 햇반을 데워 먹거나 하려면 삼 십분 정도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낭만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고, 오랜 시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 익숙했던 것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 기나긴 시간 아무 생각 없이 창 밖 풍경을 즐기면서 그저 멍때리려는 사람에게 적합한 여행이기도 하다. 절대로 기대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게 경험자들의 이야기다. 

오래 전에 처음 탄 시베리아 횡단열차서 남아 있는 강한 느낌은, 그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그저 멍한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니 끝없을 것 같던 자작나무 숲이 사라지고 지평선이 아스라한 평원이 펼쳐진다. 또 늪지대가 나타나, 악어만 없을 뿐이지 소름끼치는 눅눅함과 찝찝함이 밀려온다. 타이가와 늪지대 말고도 때론 메말라 보이는 들판이 나타나기도 한다. 스텝 초원인 듯하다. 가만히 앉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지역을 지나치는 기분이다. 

어느 순간 창밖은 온통 물안개가 자욱하고, 그 안개에 반쯤 묻힌 나무며 지붕들이 쉴 새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또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 안개 위로 붉은 태양이 불 붙은 솜사탕처럼 몽글거리며 떠오를 때, 짧은 탄성이 터진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면 안개가 걷히고 마알간 연둣빛 자작나무 이파리들이 햇살과 섞여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반짝이며 지나간다.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창밖 모습으로 여행의 묘미를 찾아나갈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얼른 배낭을 꾸려 시베리아 열차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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