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블라디로 간다-2 : 공항에서 시내로, 고1 정도면 혼자서도 쉽다!
다시 블라디로 간다-2 : 공항에서 시내로, 고1 정도면 혼자서도 쉽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19.09.25 0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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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일대는 지도를 확대해 보면, 아무르만과 우수리만 사이에서 남쪽으로 툭 삐져나온 길쭉한 주머니처럼 생겼다. 더 남쪽으로는 루스키 섬을 중심으로 섬들이 태평양 해상에 촘촘히 박혀 있다. 도시는 육지 깊숙이 들어온 아무르만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데, 아마도 구소련 시절 태평양함대 기지로 건설하다보니, 외부의 적으로부터 방어와 은폐가 쉬운 지정형적 이점을 최대한 살렸지 않았나 싶다. 또 아무르만 해안쪽이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아 도시로 발전하기 쉬웠을 것 같다. 

가뜩이나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지형에 공항이 북쪽 끄트머리쯤이나 있어 공항에서 시내, 혹은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접근성이 상당히 나쁜 편이다. 지난 몇차례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것도 나쁘게 남아있는 것 중의 하나다.

이해할 만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소련시절, 블라디보스토크는 일반인들의 평상시 접근마저 금지된 많은 소비예트 '폐쇄 도시' 중 하나였다.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안보를 위해서다.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도심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으니, 항공편에 크게 기댈 상황도 아니었다. 거꾸로 공항을 태평양사령부 가까이 둠으로써 모든 시설이 한꺼번에 적의 공격 레이다 안에 들어가게 할 이유도 없었다.

2000년대 초 마지막 방문 당시만해도 블라디 공항은 우리나라 지방 버스터미널을 연상케했다. 공항청사로 이어지는 트랩같은 것은 아예 없었고, 짐을 들고 입국장으로 가야했다. 모스크바서 국내선 여객기를 타고 갔을 때에는, 짐을 들고 바로 공항바깥으로 나와 호객하는 택시에 탔던 기억도 난다. 현재 공항 소재지 지명은 '크네비치' кневичи 인데, 그때는 '아르쫌'이라고 했다. 주변에서 가장 큰 마을이 아르쫌이기 때문이다.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정상회담을 계기로 블라디 공항과 그 주변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이뤄졌다. 번듯한 현대식 공항건물에 넓은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뚫리면서 아르쫌은 물론, 이름조차 없었던 크네비치도 '업자'들에게 요주의 지역이 됐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번듯한 현대식 건물로 다시 지었다. 출입 보안은 까다로운 편이다

 

그렇다고,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가 물리적으로 가까워질 수는 없다. 교통편이 많아지고, 편리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도시 규모에 비해 공항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 곳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원성의 대상이 되곤한다.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든, 족히 1시간은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멀다"는 선입관만 떨쳐내면, 러시아어를 모르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도 어렵지 않게 시내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공항에서 이용할 수 있는 교통편은 크게 4가지. 단체 여행이 아닌 배낭여행객들이 애용하는 숙소 픽업서비스와 택시, 공항철도, 버스다. 

픽업서비스는 현지 투어회사나 예약한 숙소에 미리 부탁을 하면 된다. 비용은 각자 형편에 따라 다르다. 택시는 청사 안에 있는 '공항택시 서비스'를 통해 택시를 부르거나, 택시공유 앱(얀덱스 택시, 막심 택시)을 이용하면 된다. 과거에 가장 흔한 풍경이었던, 허름한 옷차림의 아저씨가 "딱시? 딱시?"하던 모습은 이젠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바가지를 각오한다면, 공항 바깥으로 나가 정차 중인 택시를 잡아타도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수 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미리 예약한 러시아인 민박집 주인은 공항에서 108번 버스를 타고 종점, 즉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까지 온 뒤 택시 탈 것을 권했다. 서울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블라디 공항에 오전에 내리는 만큼 느긋한 마음으로 민박집 주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공항 바깥으로 나와보니, 아뿔사! "이건 아니다" 싶었다. 썰렁하고 조용한 공항 앞 광장. 막막함이 앞섰다. 일반 버스보다 유용하고 빠르지만, 값비싼 '셔틀버스'(마르쉬루트)로 보이는 승합차(픽업 전용차량인지도 모른다) 1대에 사람들이 몇명 몰려 있고, 택시와 승용차가 몇대 서 있을 뿐이었다. 서울의 공항처럼 바깥으로 나오면 최소한 버스가 한두대 지나가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이런 모습을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약간 떠들썩한 과거 공항 풍경보다 훨씬 삭막했다. 

비행기에서 갓 내린 짐 보따리를 끌고 어디로 가서 버스를 타야하는지, 또 몇분 후에나 버스가 도착하는 지 물어볼 게 갑갑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현지인들은 모두 모바일 앱으로 버스 도착 시간을 체크했다) 마음을 바꿨다. 좀 더 가까이 있는 공항열차를 타자.

공항청사의 출입을 통제하는 센서감지 출구. 뒤쪽이 청사안.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번 공항 청사 바깥으로 나오면 모든 짐을 '엑스레이 검사대'를 거친 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단다. 소련시절 부터, 큰 건물에는 들어가고(프호드 вход), 나오는(브이호드 выход) 문이 따로 있다. 그런 줄만 알고, 나오는 문으로 살짝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막힌다. 우리나라 지하철의 '요금 터치대'처럼 생긴 출입통제기가 바깥으로 나오는 쪽으로만 센서가 작동한다. 이 센서는 나오는 사람을 인식해 잠깐 문을 열어준뒤 바로 닫혔다. 

한국인 특유의 '잔머리'를 굴려야 했다. 우선 나오는 사람의 시간적 틈을 빌어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다. 두번 세번.. 실패. 짐 보따리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했다. 더 큰 잔머리는 안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것. 다행히 그날따라 뱃지를 단 북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어슬렁어슬렁하던 북한친구 하나가 다가왔다. 그 친구는 깔끔하게 부탁을 들어줬다. 밖으로 나올 것처럼 센서 앞에 서 있으면, 문이 열리고 그 사이에 안으로 들어갔다. '고맙다'는 인사를 두번, 세번했다. 그냥 웃어주기만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행 공항(특급)열차를 타러 가는 출입문. 위에 '블라디행 고속전철'이라고 적혀 있다

 

공항 바깥으로 나오기 전에 러시아 현지 폰 '유심'을 사고, 루블화 환전을 한 뒤 우연찮게 공항 열차 시간도 확인했었다. 기억으로 블라디보스토크행 11시15분? 시계를 보니 10시45분이었다. 공항열차 승강장으로 통하는 문으로 가니, 아무도 없었다. 문을 슬쩍 밀어보니 열렸다. 왜 아무도 없지? 고개를 갸웃할 즈음에야 번개처럼 머리에 스치는 것, 바로 서울과 블라디 간의 시차였다. 여기서는 시간이 서울보다 한시간 일찍 가고 있었다. 블라디 행 열차는 벌써 30분 전에 떠났던 것이다.

비행기가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착륙한 뒤 머리위 선반에서 배낭을 내리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큰일 났다. 택시가 한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대. 시차를 생각하지 못하고 택시를 불렀어, 어쩌지..".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웃은 지, 채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똑같은 실수를 한 셈이니 바보다! 

무료하게 공항에서 2시간 넘게 시간을 죽였다. 공항 열차를 타서는 또 아주 당연한(?) 실수를 했다. 러시아 사람들 뒤를 따라 공항철도 청사로 가서, 매표소에서 250루블을 주고 블라디보스토크행 티켓을 끊는 것까지는 너무나 쉽다. 또 현지인들이 하는 것처럼 '바코드'를 찍어 통과하고, 가장 가까운 열차 칸에 오르니, "앗! 이게 뭐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상상조차 못한 풍경이 눈에 잡혔다. 객차 내 좌석과 배치, 비치 품목이 KTX 특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다. 

공항열차의 특실 내부. TV에 정수시설, 별도 적재칸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블라디 공항열차는 이렇게 좋은 건가?" 놀라면서 열차내 풍경을 카메라에 담은 뒤 느긋하게 앉아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여성 승무원이 다가와 "빌레트 билет!", 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뿌리는, 그 짧은 시간에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특실이었다. 250루블 짜리 티켓은 보통석이니 앞으로 가란다. 특실은 추가요금 130루블(2500원 정도) 내야 한다. 어쩐지, 열차가 너무 좋더라니..

무거운 가방을 다시 내렸다가 다음 열차칸에 올렸다. 열차 진행 방향은 분명했다. 다만 왼쪽 창문가냐? 오른쪽 창문가냐?의 선택만 남았다. 오른쪽에 사람이 많았다. 여유를 부린다며, 왼쪽 좌석에 앉았다. 한참을 달린 뒤에야 현지 사람들이 오른쪽 좌석에 앉는 이유를 알았다. 오른쪽 차장쪽으로 아무르만 바닷가가 멋지게 열렸다 사라지는데, 그 반대쪽은 논밭과 주택, 듬성등성한 나무들이 서 있는 얕은 산, 언덕, 황무지만보일 뿐이었다. 블라디 입성 첫 풍경으로 넓고 푸른 바다를 보고 달렸으면 오죽 좋으랴! 

블라디 기차역 인근의 공항열차(전철) 역사 모습. 기차역 왼쪽에 있는 현대식 건물이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달려가면서 몇차례 정차했다. 오르고 내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안내문에 나온 대로, 55분쯤 달리니 열차가 속도를 늦추고, 바깥 풍경은 도시로 바뀌었다. 역사는 깔끔하고 아담했다. 역사 바깥으로 나오니, 오른쪽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는 블라디보스토크 기차 역과 해상터미널이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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