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베리아횡단열차 - 그나마 이 정도 시설이 어디냐?
뉴-시베리아횡단열차 - 그나마 이 정도 시설이 어디냐?
  • 이진희 기자
  • 승인 2020.02.18 0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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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이틀쯤 지내니, 시설의 좋고 나쁨에 대한 평가 기준이 생겼다. 아마도 6인실에 타고 있는 젊은 한국 여성들의 당찬 소감들이 적지 않는 영향을 줬다. 

그들은 "지낼 만하다" "재미도 있다" "번역기를 돌리지만, 타고 내리는 러시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꿀잼이다" "첫날은 문 열리는 소리에 자주 깼지만, 둘째날부터 잠도 푹 잘 잔다" "6인실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여행을 언제 어디서 해보겠느냐?"라고 했다.

6인실 모습(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응원단의 열차 탑승 블로그 사진). 밤에는 침대로 바꿔 잠을 청한다 


6인실을 지날 때, 세면장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봤기에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봤다. 으례 대답은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싶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달리는 차장 밖을 내다보며 맥주를 한잔 하고 싶다"고 했다. 이 한마디가 프리미엄 신형 열차의 시설 수준을 정확히 집어내는 것 같았다. 
 

블라디~울란우데 시베리아열차서 내다본 바깥 풍경. 최근 몇년간 평년에 비해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젊은 여성들도 이 정도면 6인실에서 큰 불만없이 사흘 나흘씩 기차여행을 할 수 있을 만하다. 여기에 맥주라도 한잔 걸치며 스쳐 지나가는 시베리아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면, '남만적인 시베리아 여행' 이라고 불러도 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001 열차가 프리미어 급이었지만, 기대했던 혹은 외국인 블로그에서 보았던 신형열차와는 많이 달랐다. 화장실과 같이 있는 세면대는 아직 현대식으로 바뀌지 않았고, 샤워시설이 달린 세면장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1인당 150루블에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홍보물이 세면장 뒤에 붙어 있을 뿐이었다.
 

샤워시설 운영 홍보물(사진 위)과 세면대. 수도 꼭지를 누르면 몇초간 물이 나온다. 옛날 열차엔 수도 꼭지 아래를 손으로 밀어 올려야 물이 흘러내리는 식의 세면대가 설치돼 있었다.


또 꾸뻬가 있는 객차의 복도 양쪽에는 전자 스크린이 설치돼 시간과 기온, 화장실(세면대) 사용 가능 여부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6인실 객차에는 이같은 정보 제공용 스크린이 없어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곤했다.
 

복도 한켠에 설치된 전자 스크린 - 화장실 사용중이라는 표시가 나와 있다.

샤워 시설은 두 사람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바깥에 쇼파와 다림질용 판이 있어 한 사람이 샤워를 하는 동안 쇼파에 앉아 쉬거나 옷을 다림질 할 수 있는 구조다. 당연히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을 적은 '경고문'도 붙어 있다. 어길 경우 최고 10만 루블의 벌금에 처한다고 했다. 염색이나 빨래, 술담배 금지가 대표적이다.

샤워시설은 이 정도면 괜찮다 싶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을 보통 2~4 사람이 함께 한다고 하면, 둘씩 가든지, 3명이 함께 샤워장으로 가서 한 사람이 들어가 샤워하는 동안, 바깥에서 기다리기에 불편하지 않다.
 

샤워시설 내부 모습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난다. 하지만 지갑을 두고 왔다. 갔다가 다시 오려면 불편하다. 식당에는 몇번 갔으니, 맥주 값을 외상으로 하면 안될까? 엉뚱한 생각이 든다. "그래, 까짓 거. 해보지 뭐!" 

식당 차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손에 든 수건과 세면용 손가방을 보고 "샤워하고 오느냐?"고 아는 체를 했다. 얼른 말을 잡아챘다. "샤워하니 맥주 생각이 나는데, 지갑을 안가져왔다. 나중에 주면 안되겠느냐?"고 했더니, 두말 없이 '오케이'다. 하긴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몽땅 이 식당차에서 해결하는 우리는 그야말로 VIP 고객 아닌가? 

꾸뻬에서 마실 보드카와 맥주 안주로 준비해온 견과류, 흑태, 번데기 등등으로 다시 서울로 가져가야 할 판이다. 하루 한끼 정도만 식당 차를 이용하고, 나머지 두끼는 꾸뻬안에서 해결하되, 맥주나 보드카를 반주로 겯들이는 게 시베리아 여행을 즐기는 진짜 팁이라고 말하고 싶다. 

식당 차에는 3종류의 맥주를 팔고 있었다. 이름이 좀 그렇지만, '코로나 맥주'가 가장 맛있었던 것같다. 그 다음이 스텔라, 독일 뮌헨산 맥주 슈파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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