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휴가 시즌에 읽어도 좋은 러시아 관련 신간들 - 책 소개
비내리는 휴가 시즌에 읽어도 좋은 러시아 관련 신간들 - 책 소개
  • 김진영 기자
  • buyrussia1@gmail.com
  • 승인 2020.08.02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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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그림노트, 킵차크 칸국, 줌 인 러시아, 코카서스 3국 여행기

질병관리본부는 여름 휴가 때 지켜야 할 수칙으로 혼잡한 곳 피하기와 늘 마스크 쓰기를 꼽았다. 가능하면 집에서 편안하게 독서하는 것을 '코로나 휴가'를 잘 보내는 방법으로 제안했다. 이럴 때 최근에 나온 러시아 관련 신간을 통해 러시아로 정보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 러시아 그림 노트(김병진 그림/미니멈 출판) 

그 흔한 사진 한 장 쓰지 않고, 펜화로만 그려낸 러시아 여행기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친구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따고 러시아의 8개 도시와 바이칼 호수를 둘러보면서 머리와 가슴에 남은 현장의 감동을 펜화로 그려냈다.

수집한 사진과 동영상, 텍스트,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 중에 경험한 공간과 음식, 에피소드 등을 3년에 걸쳐 손으로 그려 한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림책이지만 탁월한 묘사, 독특한 표현, 밀도 높은 그림으로 채워져 어떤 여행기보다 더 러시아를 잘 보여준다는 평이다. 러시아의 풍광은 물론, 20대 청춘들의 좌충우돌 여행 에피소드를 모두 펜화로 그려내 어떤 여행 에세이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러시아 그림노트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0 세종도서(구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도서) 교양부문(역사지리관광)에 선정됐기 때문. 러시아나 유럽의 주요 여행지에서 관광 상품으로 잘 팔리는 펜화의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서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저자는 현재 손으로 직접 그리는 펜 드로잉 작업 전문가, 즉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펜의 얇은 선들으로 그리는 디테일한 그림을 좋아해 최근엔 ‘여행’을 주제로 한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스스로 ‘애벌레 가면’을 쓴 캐릭터로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 킵차크 칸국 (찰스 핼퍼린 지음/권용철 옮김/글항아리 출판/360쪽/2만원)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한 뒤 곳곳에 칸국(汗國)을 세웠다. 중국에는 원(元)이, 페르시아에는 일 칸국이, 러시아에는 킵차크 칸국이 들어섰다.

킵차크 칸국은 1240년~1480년 러시아를 지배했다. 피지배자인 러시아가 남긴 몽골의 러시아 지배사는,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지만, 부정적인 기록 일색이다. 그들은 당시를 '타타르의 멍에'(Tatar Yoke)라고 불렀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중세 러시아와 몽골 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몽골제국사 전문가다. 여러 저술과 90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한 이 분야의 보기 드문 전문가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러시아가 그동안 침묵하고 은폐한 '불편한 역사'를 이 책에서 복원해 낸다. 민족·종교적 접경지대의 특징으로 볼 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늘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고, 복잡하고 다면적인 양상을 띠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대표적으로 농경사회였던 러시아가 킵차크 칸국의 중개무역 육성책으로 상업적으로 크게 발전했다는 점을 든다. 동·서 교역로를 연결하는 모스크바는 몽골 지배의 최대 수혜자였다는 것. 세금을 현물이 아닌 은으로 납부하는 마을이 등장했고, 러시아인과 몽골인의 결혼도 증가했다고 한다. 또 모스크바 공국이 차용한 몽골 제도와 행정체계 등에 대한 기록 등을 꼼꼼히 살핀 뒤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 시대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줌 인 러시아2 (이대식 지음/삼성경제연구소 펴냄/1만6500원) 

저자가 이전에 펴낸 '줌 인 러시아' 후속판이다. 전편에서 러시아라는 나라를 전반적으로 둘러봤다면, 이번에는 엄선한 20여 곳의 도시속으로 들어간다. '책으로 떠나는 완벽한 러시아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다.

넓은 땅 곳곳에 흩어져 있는 러시아 도시들은 각기 저마다 다른 역사와 문화, 매력, 그리고 삶을 갖고 있다. 세계를 한번 쓱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소비예트식 도시의 획일성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함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극동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역사 그 자체인 상트페테르부르크, 2018 월드컵 한-독일전이 열린 카잔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지명도 있지만, 시베리아의 현대적 도시 노보시비르스크, 남부 니즈니노브고로드 등은 이름조차 생소한 곳. 이 책을 통해 러시아의 주요 도시들을 하나씩 알고 지나가면 좋을 듯하다. 

책에는 또 시베리아가 자랑하는 러시아판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자동차와 항공 등 주요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한 산업도시들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러시아 경제에 관한 정보는 덤이다. 

저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원에서 19세기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에서 러시아 건축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융합형 러시아 전문가'다. 삼성경제연구소를 거쳐 2017년부터 민간연구소 '여시재'에서 연구실장으로 활동 중이다. 
 

◆코카서스 3국 여행기(박선봉 지음/랩소일거리/) 

코카서스 3국은 영어식 표현. 러시아어로는 카프카스 3국이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길게 뻗은 카프카스 산맥을 끼고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그루지야(조지야)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를 일컫는다. 

책은 ‘딸내미만 믿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란 부제처럼 디지털 세대인 딸과 아들을 앞세운 아날로그 50대 부부의 좌충우돌 여행기다. 여행은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해 조지아, 아르메니아를 훑는다. 그동안 우리에겐 '장수 지역'으로만 알려진 생소한 곳. 최근에는 청정 자연과 이국적인 삶, 건강 먹거리, 값싼 여행 비용 등이 합쳐지면서 이 곳을 찾는 여행객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늘어났다.

아직 시중에 나와 있는 카프카스 3국에 대한 쓸만한 여행서가 별로 없으니, 앞으로 이 지역 여행의 길잡이 노릇을 하지 않을까? 국문학도 출신인 저자가 탄탄하고 작위적이지 않는 스토리로 이 지역 여행을 설명한다. 여행중 현지인들과 주고받은 다양한 에피소드는 감초격이다.

이슬람권으로 둘러싸인 아르메니아에게 가장 불행한 역사인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인종학살)’ 부분은 아르메니아의 디아스포라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이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 자행된 이 제노사이드는 150만 명에 달하는 대학살과 강제이주, 그리고 디아스포라로 이어졌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충돌 역사 이야기도 유익하다.

이외에도 과거에는 금지됐던 소비예트 시절 전후의 소련(러시아) 책들도 한국어로 번역된 게 적지 않다. 앞으로 더 많은 현대 소설이 번역되리라 기대한다.

◇ 신이 되기는 어렵다(보리스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보석 옮김/ 현대문학 출판/ 372쪽/ 1만4천원) 

러시아 공상과학소설(SF)을 대표하는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초기 대표 작품이다. 아르카디, 보리스 스트루가츠키가 1964년 출간한 장편소설로 현대문학에서 기획한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두 번째 시리즈다. 이 소설은 영화로 제작되기로 했다.

공산주의 시절의 작가답게 이상적 공산주의가 완성된 22세기 미래가 배경이다. 봉건사회 체제의 외계 행성에 파견된 지구인이 역사의 자연스러운 진보를 방해할 수 없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렸다. 인간이 우월한 존재라고 '신'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유리 카자코프 씀/걷는 사람 출판/ 358쪽/ 1만5천원)

한국문학번역원과 러시아문학번역원이 한러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시작한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를 통해 나온 두 번째 작품집이다. '산문 쓰는 시인'으로 불리는 러시아 단편 작가 유리 카자코프(1927~1982)의 작품들이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 관계 단절을 다루며 자연과의 합일성을 회복하려는 그의 대표작 14편을 담았다.

◇ 아이퍽 10 (빅토르 펠레빈 씀/걷는사람 출판/ 469쪽/ 1만5천원)

한국문학번역원과 러시아문학번역원이 한러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시작한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를 통해 나온 첫 작품집이다. 엔지니어 출신 인기 작가로 떠오른 빅토르 펠레빈이 쓴 테크놀로지 공상과학 소설(SF)이다. 

경찰청 소속 '문학 로봇'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는 범죄를 수사하고 탐정 소설도 쓰는 인공지능(AI)이다. 페트로비치가 이성적 관계로 발전한 여성에 양도되고 경찰청 서버에서 지워지면서 겪는 일을 통해 작가는 '실존'에 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진다.

1962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펠레빈은 세계 문학계에서 주목하는 차세대 작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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