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당할 위기에 몰린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의 선택지는, 3가지?
'팽'당할 위기에 몰린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의 선택지는, 3가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6.13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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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烹)이냐, 아니냐?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 공략에 앞장섰던 러시아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국방부에 의해 '팽'당할 처지로 몰렸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1일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전쟁에 참전한 모든 자원병력들에게 7월 1일까지 국방부와 계약 체결을 명령했다"며 "이는 '바그너 그룹'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 시도"라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바그너 그룹'과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권부로부터 팽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팽당하다'는 쓰임새 후에 버림받거나 배신당한다는 말로,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의 '토사구팽'(兎死狗烹·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재상 범려의 말)에서 나왔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사진출처:텔레그램

러시아 국방부는 "자원병력과의 계약 체결은 모든 참전 부대 조직에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식적으로는 뒤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민간 군사조직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특수 군사작전 개시 이후 각 지역에서는 (행정 수반들이) 자체적으로 자원병을 모집해 전쟁터로 보냈다.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해외에서 자원병(통칭 국제의용군, 우크라이나 국제군단)들이 몰려든 데 대한 대응 성격도 강했다.

병력 파견에 대규모로 움직인 곳은 '체첸 전사'로 유명한 체첸자치공화국이다. 제1, 2차 체첸전쟁을 치르고,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람잔 카디로프 체첸자치공 대통령(수장)은 직접 대테러작전에 나서듯,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참전했다.

체첸의 수반 카디로프가 푸틴 대통령과 독대후 셀카를 찍는 모습

또다른 조직은 음지에서 움직이던 '바그너 그룹'이다. 프리고진은 개전후 '바그너 그룹'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고, 러시아군이 예상외로 고전하고, 지난해 9월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분 동원령'까지 발령되자, 완전히 양지로 걸어 나왔다. 'PMC 바그너' 본부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설치하고, 전장에 나설 용병들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또 각 지역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6개월 생존시 사면'을 조건으로 수감자들을 끌어들였다. 이런 건 모두 크렘린의 묵인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프리고진은 '푸틴'의 최측근 올리가르히로 꼽힌다. 그의 언행은 모두 푸틴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인식됐다. 전쟝 안팎에서 '존재 가치'를 부각시킨 그는 조금씩 크렘린의 '군부 인사'에 개입을 시도하고, 현장 부대 최고 지휘관들의 무능력과 무기력함을 성토하는 등 정규군 지휘 체제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급기야는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특수 군사작전 최고사령관 겸임)와 첨예하게 각을 세우면서, 크렘린에게는 '계륵'이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현재 사적으로 운영되는 군사 조직을 40개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조직들을 합법화하고 지휘체제를 일원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크라이나 국제군단(다국적 외인부대)에 참여한 외국인들도 정부(국방부 관련 부서)와 계약한 뒤 무기를 받고 부대에 편성된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운 '바그너 그룹' 본부(위)와 푸틴 대통령 접대 모습/SNS

다만, 그 시점이 묘하다. 스트라나.ua는 "자원부대 조직의 합법화 조치는 '바그너 그룹'과 이를 이끄는 프리고진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그너 그룹'은 이달 초 프리고진의 명령에 따라 '바흐무트'에서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대 재정비를 위해서다. 러시아 국방부로서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부대 정비를 하고 있으니, 국방부와 계약을 맺을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당사자인 프리고진은 계약을 거부할 명분을 찾기 힘들게 됐다. '하느냐 마느냐' 선택의 기로에 몰렸다. 그러나 고심 끝에 프리고진은 12일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비합법적인 군사 조직으로 남겠다는 것이다. 그는 "쇼이구 장관이 내린 명령과 법령은 국방부 직원과 그 군인들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거부 명분으로는 좀 약하다. 

'바그너 그룹'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프리고진은 "러시아 연방의 최고 사령관"(푸틴 대통령/편집자)이라고 대답한 뒤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의 명령에 따라 군사활동을 조정하고, 수로비킨 장군(특수 군사작전 부사령관)이 정해준 임무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쇼이구 국방장관(오른쪽)이 수로비킨 장군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장면/현지 매체 영상 캡처

그의 최대 경쟁자 격인 '체첸 전사'들이 러시아 국방부와 즉각 계약을 체결한 것도 프리고진에게는 아프다. 개전 초기 최대 격전지인 도네츠크주 '마리우폴' 공략에 앞장선 '체첸 전사'를 대표하는 '아흐마트 특수부대'는 12일 '바그너 그룹'이 보란 듯이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12일 계약 체결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에 따라 '아흐마트 특수부대원'들은 특수 군사작전 과정에서 부상하거나 사망할 시 정규군과 똑같은 혜택을 받는다.

체첸의 수장 람잔 카디로프는 프리고진이 크렘린과 러시아 군지휘부를 흔들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서곤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흐마트 부대'를 이끄는 압티 알라우디노프 사령관은 "우리는 지난 15개월간 우크라이나에 수만 명의 병력을 파견했다"며 "이번 계약이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국방부와의 계약을 거부하면서 "이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국방부 측의 무기와 탄약 공급 거부"라고 예상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앞으로 "계약하고 싶지 않다고? 그럼, 더 이상 돈이나 무기 제공을 기대하지 말라"며 '바그너 그룹'에 대한 지원을 끊을 것으로 스트라나.ua는 내다봤다. 그럴 경우, '바그너 그룹'의 앞날은 험난해질 것이라고 했다. 존재 기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바그너 그룹이 바흐무트 완전 장악을 선언하는 모습/텔레그램 캡처 

프리고진이 기대하는 것은, 최전선에 있는 러시아군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바그너 그룹'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다. 그는 "천둥이 치면 그들은 달려 와서 무기와 탄약을 주며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앞으로 한동안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는 '바그너 그룹'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 일정 기간 일이 없으면, '바그너 용병'들이 돈을 찾아 다른 조직(예컨대, 체첸그룹)으로 흩어지거나 아예 그만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나.ua는 "프리고진에게는 또 다른 2개의 선택지가 남아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바그너 그룹'의 와해를 막기 위해 활동 영역을 아프리카나 해외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내전 중인 아프리카 수단은 가장 유력한 선택지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로부터 보이지 않는 지원을 받으며 활동해온 이전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날 게 뻔하다. 

마지막 선택은, 러시아 군부의 허가를 받지도 않고 우크라이나 무장세력의 습격이 잦은 벨고로드주(州) 방어에 나서는 것이다. 현지의 무기고를 털어 판 돈을 대폭 올리는 방법도 있는데, 그건 쿠데타나 다름없다. 스트라나.ua는 "프리고진이 쇼이구 국방장관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푸틴 대통령을 겨냥하기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근본적으로 의심스럽다"고 진단했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국방부와 계약하느냐, 팽당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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