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이 제기한 의문 - 우크라는 왜 지난해 3월 평화협정 초안을 폐기했을까?
푸틴 대통령이 제기한 의문 - 우크라는 왜 지난해 3월 평화협정 초안을 폐기했을까?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6.15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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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은 13일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는 언론(종군 기자)·인플루언스(텔레그램 계정)와의 간담회에서 "2022년 봄(3월 29일) 터키(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평화협상에서 우크라이나 대표 다비드 아라하미아는 '평화 정착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지만 키예프가 이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평화 협상을 포기한 적이 없고, 만약 그들이 원한다면,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간담회 이후 우크라이나 안팎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은 발언의 진위 여부다.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는 터키 측의 중재 하에 열린 '평화협상'에서 가조인한 '평화협정'(초안)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합리적인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뒤이어 '우크리아나가 왜 어렵게 합의한 내용을 깼을까'라는 궁금증이 뒤따른다. 러시아가 그후 나토(NATO)가 러시아를 길들이기 위해, 혹은 군사 강대국의 콧대를 꺾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대리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 것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더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와 협상에 임하고 있는 러시아 대표단. '평화를 위한 취약한 길'이라는 자막이 떠 있다/현지 매체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4일 일일 전황분석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평화 협정이 합의되었나?('Был ли согласован мирный договор между Украиной и Россией?) 코너를 통해 이 문제를 다루면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주장을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14일 "푸틴 대통령은 (러-우크라) 대표단이 서명한 문서를 보여줬다"며 "크림반도의 장기 임대 조항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정상적인 합의 내용이 있었고, 양측은 외무장관이 (1차) 서명하고, 국가 원수가 최종적으로 서명하는 과정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의해) 폐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 헌법에 따라 크림반도는 러시아 영토가 됐다"고 했다. 이스탄불 협상의 진행 과정은 당시 베넷 이스라엘 총리에 의해 확인된 바 있다. 

스트라나.ua는 "크림반도에 대한 이야기(장기 임대)가 사실이라면, 러시아는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많은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분명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스탄불 협상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협상 내용을 보도한 본보(buyrussia21.com) 기사를 되짚어 보자. 

이스탄불 러-우크라 협상이 끝난 뒤 결과를 발표하는 러시아 대표. 왼쪽이 메딘스키 단장/현지 매체 영상 캡처

당시 이스탄불 회담을 중재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협상 며칠 전(2022년 3월 25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6가지 협상 쟁점 중 4가지는 합의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4가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철회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적 안보 보장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 허용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독립과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 문제다.

러시아측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단장(푸틴 대통령 보좌관)은 협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군사적으로 재탈환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독립을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와 함께 국제적 안전보장 대상 지역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크림반도의 지위에 대해 향후 15년간 협의하자고 우크라이나 측이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국제적 안전보장 대상에서 두 지역을 제외한다는 것은 '돈바스의 현실(독립)을 인정하고, 크림반도는 계속 협상하자'는 뜻으로 해석됐다.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 '인민의 종' 대표 다비드 아라하미야 

우크라이나 측 다비드 아라하미야 단장(우크라이나 집권여당 '인민의 종' 대표)은 "크림반도와 '오르들로'(돈바스 지역내 러시아계 통치지역, 즉 독립 선포 지역)는 각기 다른 문제"라면서 "이번 제안은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양측이 평화협상 합의안 초안에 서명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 측은 향후 협상 진전을 위해 '두 가지' 양보안을 제시했다. 정치적으로는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을 양국 외무장관 간 '평화조약' 가조인과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고, 군사적으로는 수도 키예프(키예프)와 북부 체르니히우에 대한 군사작전을 크게 줄인다는 것.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화를 줄곧 요구했으나, 러시아측은 정상회담은 외무장관들의 합의에 따라 이뤄지는 게 정상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합의 내용에 따른다면 러시아는 양국 외무장관 회담과 정상회담을 동시에 열기로 양보한 셈이다. 또 러시아 군지도부는 이스탄불 협상에 앞서 러시아군은 키예프(키이우)에서 철수하고(1단계 작전 완료), 특수 군사작전을 돈바스 중심으로 펼친다고 공식 선언했다(물론 이는 서방 언론에 의해 러시아군의 키예프 패퇴로 평가됐다).

지난해 3월 특수 군사작전의 1단계 작전 종료를 선언하는 러시아군 지도부/현지 매체 영상 캡처

스트라나.ua는 "협상은 그러나 러시아군이 키예프에서 퇴각하고, (키예프 인근의) 부차 학살에 대한 정보가 확산되고,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중무기를 제공하기로 결정하면서 중단됐다"며 "이제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성공하고 크림반도로 진격하느냐? 아니면 반격에 실패하고 전쟁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협상을 통해 '한국식 종전 시나리오'로 가느냐"다. 

반격에 실패하는 두번째 시나리오로 진행될 경우,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수뇌부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1년 이상 더 끌어온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다. 특히 '한국식 종전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3월의 평화협정 초안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영토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한 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될 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가 진짜 우려해야 하는 것은 '반격'의 실패 이후다. 스트르나.ua는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진을 완전히 빼버릴 작정"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언론 간담회에서 반격 이후 '다른 옵션들'이 고려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종군기자-인플루언스 간담회를 갖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반대의 시나리오도 있다. 우크라이나와 나토측은 여전히 미국의 F-16 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 등을 동원해서라도 러시아에 군사적 패배를 안겨주기를 원한다. 미국의 F-16 전투기는 이르면 오는 10월쯤 우크라이나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나토 회원국(덴마크)은 오는 8월부터 우크라나군 조종사를 대상으로 F-16 전투기 조종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언제쯤 결판이 날까? 영국 BBC 방송은 군사전문가들을 인용, 우크라이나의 이번 반격 작전은 그 결과가 3개월 후에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했다. 일러야 9월이다. 그 즈음 또 미국이 F-16 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 등을 제공하기로 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2024년은 미국 대선의 해다. 올해보다 정치적, 군사적, 지정학적 변수가 더 복잡하게 얽히면서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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