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강제동원의 민낯은 '뇌물' - 오데사 군사위원 해고로 드러난 '5천 달러'의 실상
우크라 강제동원의 민낯은 '뇌물' - 오데사 군사위원 해고로 드러난 '5천 달러'의 실상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7.04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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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7월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동원령에 대한 법률 개정안 (법안 9342호)에 서명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전쟁 동원 대상 범위의 확대다. 우크라이나의 동원 대상은 기본적으로 18~59세인데, 부모와 자녀 등 가족 중에 1, 2급 장애인이 있으면 부양 책임이 있는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새 법안은 장애인을 돌볼 가까운 친인척이 있다면, 동원 대상자에 새롭게 포함되도록 했다.

새 법안에는 또 최소 1개월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동원 대상자(예비군)를 전장에 곧바로 내보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의 법안 서명 소식을 전하면서 세 가지를 지적했다. △장애인을 돌볼 가까운 친인척의 존재 유무를 누가 판단할 것이냐와 △병력 손실을 보충할 동원 작업이 이전보다 더 화급하고 절실해졌고, 그러다보니 △동원된 예비역들이 최소한의 훈련도 받지 않고 최전선에 투입되고 있다는 현실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장애인을 돌볼 수 있는 가까운 친인척의 존재 여부는 군 등록 및 입대 사무소(군사 위원회, 우리 식으로는 병무청)가 판단하게 된다. 군사 위원회의 권한이 더 커졌다는 뜻이다.

장애인인 한 우크라이나 남성이 받은 동원 소환장을 들어보이고 있다(위), 아래는 아내와 딸/사진출처:스트라나.ua

문제는 군사 위원회의 권한 남용이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군사 위원회 책임자의 비리로 민심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 위원회의 권한 강화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던져준 셈'이라는 비아냥도 일각에서 나온다. 

우크라이나의 부정 부패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2022년 부패 순위에서 우크라이나를 전체 180개국 중 116위로 꼽았고,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우크라이나의 선제 해결조건 중 하나가 부정부패 척결이다. 특히 올해 초에는 대규모 군납비리가 터졌고, 우크라이나 대법원장마저 지난 5월 뇌물 수수혐의로 체포됐다.

일상화한 부패 구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발령된 총동원령에 의해 징집되는 대상 예비역 동원이 공정하게 진행되었을 것으로 믿는 것은 순진하다. 개전 초기 너도 나도 자원해서 전선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애국심에 대한 외신 보도는 '눈에 보이는 한 장면'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 징집 사무소/이미지 출처:porady.org.ua

눈에 보이지 않는 '부패 구조'는 건강 상의 이유 등으로 동원 대상자에서 제외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문서인 '화이트 티켓'(белый" билет)을 발급하는 과정에서 예외없이 작동했다. '화이트 티켓'을 얻기 위해 뇌물이 제공되고 그 과정은 '돈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진공 청소기'라는 표현까지 우크라이나 언론에 등장했다. '화이트 티켓'은 전쟁 초기 5천~6천500 달러였으나 이제는 8천 달러 언저리로 높아졌다고 한다. 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 대신에 드는 돈이니 우크라이나 동원 대상자의 목숨값이 그 정도라고 할 수도 있다.

동원 조직상의 '부패 고리'가 공론화한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6월 23일 오데사 지역 군사위원 예브게니 보리소프의 해임을 발레리 잘루즈니 군 총참모장(합참 의장격)에게 지시하면서부터. 군사위원의 임면권은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에게 있는데,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군총참모장에게 지시한 것도 (군 조직내 파워게임상) 흥미롭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보리소프 군사위원의 비리는 지난 4월 말 처음 폭로됐다. 그의 가족이 스페인 유명 휴양지 '마르베야'(안달루시아 자치지역의 말라가주)에서 고급 빌라를 사들이고, 외제 자동차도 여러 대 굴리고 있다는 것. 빌라 가격만도 395만 유로(약 55억원)에 이른다고 했다. 폭로 시점은 오데사 지역에서 빈발한 강제 동원 스캔들과 맞물리면서 민심이 폭발했다. 그가 오데사 지역의 동원 과정 전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데사 군사위원 가족이 사들였다는 스페인의 고급 빌라/사진출처:스트라나.ua

보리소프 군사위원이 '화이트 티켓'의 판매로 막대한 '블랙 달러'를 챙긴 게 아니냐는 의혹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의 가족이 스페인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빌라의 등기부 등본이 제시되자 "아내가 그곳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며 자신은 모르는일이라고 잡아뗐다. 그 시기에 해외 여행을 떠난 것도 합법적이라고 강변했다. 

일시적으로 직위해제됐던 그는 곧바로 직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분노한 여론을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 언론들이 보리소프 군사위원의 비리를 구체적으로 파고들면서 그 뿌리가 드러났고, 급기야 대통령이 해임 지시를 하기에 이르렀다.

스트라나.ua는 대통령의 해임 지시 나흘 뒤인 27일 '돈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진공 청소기'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위원회의 부패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낱낱이 폭로했다. 보리소프 군사위원이 책임을 맡은 오데사 지역의 동원 캠페인은 왜 악랄하기로 유명한지, 그 뒷면에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도 파헤쳤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오데사 군사위원회 소속 실무자들은 마치 납치하듯 대낮 대로변에서 남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고, 주변의 눈을 피하기 위해 구급차를 동원했다. 현지 SNS에는 길거리에 남성이 구급차에서 바로 간이 신체검사를 하고 징집 통보를 받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저녁에 거리에서 어디론가 끌려간 남편이 이튿날 아침에 징집 사무소에서 징집 통보를 받는 게 정상이냐고 항변하는 아내의 글도 올라왔다. 오데사주(州) 레니시에서는 동원 대상자를 강제로 끌고 가기 위해 군사 위원회 실무자들이 공중으로 위협사격을 가했다는 영상도 공개됐다. 

오데사에서는 강제동원을 위해 구급차가 등장하고(위), 강제로 끌고 가고../텔레그램 영상 캡처

이같은 곤욕을 치르지 않으려면 뒷거래로 '화이트 티켓'을 손에 쥐는 일이다. 스트라나.ua는 "화이트 티켓을 얻는데 드는 비용은 2천500~3천500달러였으나, 전쟁이 시작된 후 5천~6천500 달러로 치솟았다"고 전했다. 특히 전쟁 발발후 바다로 일하러 나갈 수 없었던 선원들이 가장 먼저 징집 대상이 됐고, 선원들은 아예 5천~6천 달러를 주고, '화이트 티켓'을 구한 다음 해외로 돈을 벌러(배를 타러) 나갔다고 한다. 2022년 말 '화이트 티켓' 가격은 최대 7천, 8천달러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화이트 티켓'의 뇌물 고리는 이렇게 작동된다.
동원 문제를 책임지는 한 지역의 군사위원이 되려면 일단 수만 달러(지금은 최대 20만달러)가 든다. 또 지역 군사위원회는 윗선에 월 2만~5만 달러를 상납해야 한다. 이를 벌충하기 위해 오데사와 같이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의 군사 위원회는 매일 한두 사람에게 화이트 티켓을 팔고 1만~1만 5000달러의 뇌물을 받는다.

매월 총 수입 30만~36만 달러 중 절반은 군사위원 책임자(오데사의 경우 보리소프 위원)가, 4분의 1은 군의관, 500~1천 달러는 중간 소개인이 챙긴다. 또 법 집행기관에 월 2만~ 5만 달러를 상납한다. 

군사 위원회의 비리도 폭로되고, 뇌물 수수혐의로 체포된 기사도 나온다. 하지만 모두 실무자들과 중개인이라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또 지난 1년 반 동안 우크라이나의 모든 법 집행 기관과 국경 수비대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남성들을 대거 체포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돈이 없어 '화이트 티켓'을 못 산 경우이고, '화이트 티켓'을 갖고 합법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난 사람들의 수는 알 수 없다고 이 매체는 꼬집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보리소프 군사위원의 해고와 함께 각 지역 군사위원회의 비리를 전수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그는 "우리 국가를 위해 전선에서 죽어가는 영웅들의 기억을 불명예스럽게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군 부상병 이송/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그러나 최전선의 병력 손실을 시급하게 보충해야 하는 한, 동원 과정의 비리 척결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키예프(키이우) 사회문제 국제연구소 조사(опрос Киевского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института социологи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의 10명중 7명에게 전쟁중 부상하거나 사망한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 것으로 29일 나타났다. 이 연구소가 5월 26일~6월 5일 진행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78%가 다치거나 사망한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있다고 대답했다. 죽은 친구나 친척이 있다는 응답은 63%에 이르렀다. 전쟁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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