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벼랑끝 전술에 휘청거리는 우크라 흑해 곡물 협정 - 17일 이후는 어떻게?
러시아의 벼랑끝 전술에 휘청거리는 우크라 흑해 곡물 협정 - 17일 이후는 어떻게?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7.1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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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17일로 만료되는 '흑해 곡물 수출 협정'의 시한을 앞두고, 당초 약속이 지켜지지 읺으면 협정 연장은 없다고 버티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이 협정의 연장에 동의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요지부동이다.

러시아가 협정 연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지난 1년간 가동됐던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해상 수출 길은 막힌다. 이같은 최악 상황을 막기 위해 흑해 곡물 협정의 산파(産婆) 역할을 맡았던 유엔과 튀르키예(터키)는 한달 전부터 바삐 움직였다. 레베카 그린스판 유엔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이 지난달 9일 스위스에서 세르게이 베르시닌 러시아 외무차관과 만난 게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터키 하역/쿨레바 우크라 외무장관 트윗
지난 8일 터키에서 회담을 가진 젤렌스키-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최근 정상회담을 통해 협정 연장에 합의한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4일 "나와 푸틴 대통령은 흑해 곡물 거래에 대해 '공통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AFP는 이를 푸틴 대통령이 협정 연장에 동의한 것으로 해석했으나, 크렘린은 즉각 이를 부인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현재로서는 흑해 곡물 거래 협정을 연장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13일) 협정 연장의 조건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이제는 약속 이행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약속이 지켜지면 참여하겠다"는 것. 그가 말하는 약속은 러시아 농업은행의 국제결제망(스위프트, SWIFT) 연결과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토글랴티~오데사 암모니아 가스관의 차단 해제 등이다. 조건을 제시한다는 것은 협정 연장의 문을 아직 완전히 닫지 않았다는 뜻이다. 러시아의 '벼랑끝 전술'이다. 

흑해 곡물협정이 체결된 것은 1년 전인 지난해 7월 22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중재자인 유엔-터키와 각각 협정을 맺는 '불완전한 형식'으로 시작됐다. 러시아가 연장을 거부하면 '러-터키-유엔 합의'는 끝난다. 그러나 젤렌스키-에르도안 대통령이 최근 협정 연장에 합의한 만큼 '우크라-터키-유엔 협정'은 살아남는다. 우크라이나와 터키가 러시아에게 협정 연장을 압박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 참고 또 참은 러시아

120일을 기한으로 정한 '흑해 곡물협정'은 지금까지 지난해 11월과 지난 3월, 지난 5월 세 차례 연장됐다. 지난 3월의 두번째 협정 연장 협상부터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유엔 측에 '당초 약속'을 지켜줄 것을 요구한 것. 그러나 그 약속은 서방의 대러 제재조치와 연결된 것이고, 유엔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을 향해 '제재의 일부를 완화하라, 어쩌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진통 끝에 가까스로 협정이 연장됐으나, 기한이 기존의 절반인 60일로 단축됐다. 그리고 지난 5월 협상에서는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길이 진짜 막힐 뻔했다. 푸틴 대통령이 위태위태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막판에 통크게 양보했다. 이번에는 러시아의 양보를 기대할 수 있는 건수 자체가 없다.

흑해를 항해중인 곡물 선적 선박/사진출처:터키 ahaber.com.tr 영상 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 소식통도 17일 이후 '흑해 곡물 수출 항로'가 막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지난 5월에는 터키의 대선이 있었지만, 이제 선거도 끝났다"고 말했다. 

시한을 하루 앞둔 16일 현지 분위기로는 연장 가능성이 '제로'(0)다. 러시아가 이에 미리 대비한 흔적도 많다. 러시아는 터키에 설치된 러-우크라-터키-유엔의 4자 '합동조정센터'(Joint Coordination Center,JCC)에서 곡물 수출 선박의 입출항(入出港) 검사를 중단했다.

이즈베스티야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입출항 허가를 받고 우크라이나 흑해 항구로 들어온 선박은 16일 마지막으로 오데사 항구를 떠났다. 지난 6월 28일 JCC의 허가를 받은 이 선박은 이날 옥수수 2만3,500톤(t)과 유채씨 1만5300톤을 싣고 출항했다. 흑해 항구에 정박한 곡물 선적용 선박은 더 이상 없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농업협회는 러시아가 6월 26일부터 흑해로 들어오는 선박 검사를 중단하면서 이집트와 중국, 방글라데시, 터키 등으로 곡물을 실어나를 20척의 선박이 터키 영해에서 발이 묶였다고 주장했다. 6월에는 총 200만 톤의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흑해를 통해 각지로 수출됐고, 이미 입출항을 허가받은 선박에 추가로 100만톤이 선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탄불에 있는 JCC의 모습/현지 매체 영상 캡처

◇ 협정 탈퇴후 러시아의 다음 전략은? 

우크라이나와 서방 측은 러시아의 협정 탈퇴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가 취할 다음 행보가 극히 제한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영국 해군 전문가 H. I. 서톤(H. I. Sutton)은 △흑해 함대(잠수함, 항공기 등)가 곡물 운반선을 공격하거나 △특수부대가 오데사 항구에 상륙하고 △흑해 주요 항로에 기뢰를 부설한 방법 등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곡물의 수출길을 방해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 측이 제공한 하푼, 넵튠 미사일이나, 드론(수상및 항공)으로 이에 대항할 것으로 내다봤다. 흑해가 불바다로 변하면, 터키가 중재에 나서 합의를 모색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같은 시나리오는 너무 극적이고 이상론적이다. 
가장 손쉬운 해결 방안은 푸틴 대통령이 지적했듯이, 협정 당사자들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엔이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2일 푸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협상 타결을 위한 방안들을 제안했다고 발표했다. 서방 측의 대러 제재 조치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상태에서 러시아 측의 요구도 일부 수락하는 '타협안'으로 추측된다.

파이낸셜 타임즈(FT)는 지난 3일 EU가 흑해 곡물 거래의 중단을 막기 위해 러시아 농업은행(로스셀호즈방크, Rosselkhozbank)의 자회사를 만들고, 이를 SWIFT에 연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농업은행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면서 국제결제의 숨통을 열어주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자회사를 만들고 SWIFT에 연결하는 데 몇 달이 걸리기 때문에 실행 불가능한 방안"이라고 일축했다.

끝내 합의가 결렬되면 러시아가 취할 '무력 시위'는 크게 두 가지다. △곡물 운반선이 통과하는 항로에 있는 흑해 전략요충지 '뱀섬'에 대한 공격과 △흑해 상에 떠도는 기뢰를 이용하는 것이다. 러시아으로부터 경고도 이미 나왔다.

특수 군사작전 개시와 함께 러시아군이 점령한 뱀섬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 500일 영상물도 '상징적인' 뱀섬에서 찍었다. 이 뱀섬에 대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최근 재개됐다. 흑해 항로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 전쟁 500일인 지난 8일 공개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뱀섬 영상/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또한 러시아 국방부는 14일 "흑해 북서부 해역에서 '알 수 없는 수의 기뢰'가 표류하고 있다"며 "해상 운송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기뢰들은 2022년 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해상 접근을 막기 위해 흑해 연안에 부설한 것으로, 폭풍과 해류 등에 의해 기존의 위치를 이탈해 바다 위를 떠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새삼스럽게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세계 주요 선박회사들에 대한 분명한 경고성 메시지다.  

최악의 상황은 민간 선박이 러시아 측의 동의없이 흑해 뱀섬 인근을 지나다가 러시아의 미사일에 의해, 또는 흑해 상에 떠도는 기뢰에 부딪쳐 손상되는 경우다. 해상운송의 '큰 손'인 보험사들이 당장 우크라이나산 곡물 선박 운송에서 손을 뗄 수 밖에 없다. 곡물 운반선 투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 예상되는 러시아의 리스크

물론, 러시아가 곡물 협정에서 탈퇴할 경우, 감당해야 할 리스크도 크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선박이 러시아 측의 검사없이 자유롭게 우크라이나 항구로 접근이 가능하다. 일부 선박에는 군사 장비 등 군수품이 실릴 수도 있다.

러시아가 이들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경우, 도덕적 비난은 물론이고, 서방의 강력한 추가 제재가 예상된다. 최근들어 가뜩이나 삐걱거리는 터키와의 전략적 협력 관계가 완전히 끊길 수도 있다. 특히 터키가 러시아 선박의 보스포러스 해협 통과를 차단한다면, 최악이다. 러시아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흑해에서 발이 묶이게 된다. 일부 서방 전문가들이 러시아가 흑해 곡물 협정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다.

스트라나.ua는 "기한이 만료될 때마다 러시아 측으로부터 비슷한 수사(위협)를 들었다"면서 "그러나 러시아는 막판에 동의했다"고 지적했다. 

유엔과 러시아측의 곡물 협상 장면/현지 매체 영상 캡처

하지만, 러시아가 끝까지 협정 연장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는 신속하게 '플랜 B'를 가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흑해 수출 통로가 막히면,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은 월 4억~6억 달러 줄어들고, 국내 곡물 창고도 부족해 수확한 농산물이 버려지면서 곧바로 농부들이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플랜 B는 △세계적인 보험사 대신 우크라이나 정부가 민간 선박의 손해를 담보하고 △다뉴브강 항구를 통해 곡물 수출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6월 흑해를 운항하는 선박을 위해 5억 4,700만 달러의 보험 기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미콜라 솔스키 우크라이나 농업 정책부 장관은 "러시아가 협력하든 말든 우리는 이 보험 기금으로 흑해 수출 항로를 계속 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선박 보험' 보증에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예상 이상으로) 막대한 돈이 들고, 기술적인 보완장치도 필요하다. 다만 서방의 각국 정부들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 해결에 동참한다면 가능하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경제토론클럽(Экономический дискуссионный клуб) 이사인 올레그 펜진은 "대형 선사 뒤에 있는 메이저 보험사는 선박과 상품, 선원 등 모든 것을 보장한다"며 "이러한 위험들을 담보하려면 큰 돈이 필요하고, 정부 보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뉴브강 항구에서 폴란드의 그단스크항, 루마니아의 바르나항, 콘스탄타항으로 환적하는 플랜 B에도 문제가 많다. 열악한 항구 인프라와 이에 따른 취급 물량이 너무 적다. 다뉴브 항구에서 바지선에 곡물을 실어 바르나항 또는 콘스탄타항으로 이동하는데, 지난 6월 취급량이 190만t에 불과했다. 물류 비용도 흑해 항구를 직접 이용할 때보다 거의 두 배나 비싸다. 곡물 수출 가격 구조에서 물류 비중이 30%를 넘는다면, 우크라이나 농부들의 수입은 급격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가 기대하는 것은 터키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터키가 곡물 선적 선박을 호위하는 방안이다. 에르도단 대통령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

에르도단 대통령은 가까운 장래에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고, 8월에는 터키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했다. 막판 중재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러시아측은 소극적이다.

펜진 이사는 "러시아는 끝까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딜'을 할 것"이라며 "흑해 수출 항로는 (언젠가) 열릴 것이지만, 곡물 수출은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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