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철수 고민) 유럽 에너지 기업은 국제유가 폭등으로 손실의 2배 이상 수익 내
러시아 철수 고민) 유럽 에너지 기업은 국제유가 폭등으로 손실의 2배 이상 수익 내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8.08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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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후 유럽 주요 기업들이 러시아를 철수하거나 사업 축소 등으로 최소 1천억 유로(약 143조원)의 손실을 봤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보도했다.

가제타루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FT는 유럽 기업 600개의 2022년 연례 보고서(감사 회계보고서와 재무제표 등/편집자)를 분석한 결과, 176개 기업이 이같은 규모의 손실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전략연구센터(Центр стратегических разработок, 영어 약자로는 CSR)는 지난해 10월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철수)하거나 축소한 외국 기업 600개의 손실 규모를 추적한 결과, 총 2천억~2,400억 달러의 손실을 봤으며, 이 중 700억~900억 달러는 러시아를 철수하기로 한 기업에서 나왔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FT와 CSR의 조사 대상 기업이 600개로 동일하지만, FT는 유럽 기업을, CSR은 러시아내 매출 57억 루블 이상인 외국 기업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FT는 러시아 내 사업체 매각, 폐업 또는 사업 축소에 따른 자산의 감가상각, 환전 관련 비용, 기타 일회성 경비 등에 따른 손실을 계산했다. 전쟁으로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과 같은 거시 경제적 영향은 포함하지 않았다. 석유및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횡재한 대규모 수익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러시아 시장 철수로 가장 큰 손실을 기록한 기업은 에너지 기업이었다. 하지만 더 큰 수익을 올렸다 

손익 계산이 모호한 기업은 역시 에너지 기업이다. 겉으로는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가장 큰 손실을 본 것으로 기록된다. 영국의 브리티쉬 페트롤리엄(BP)는 전쟁 개시 후 사흘 만에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티' 지분 19.75%의 매각을 발표하면서, 255억 달러(33조원)의 손실을 계산했다. 프랑스 토탈에너지는 지난해 말 뒤늦게 러시아 철수를 발표했지만, 148억 달러의 손실을 떠안았다고 밝혔다.

FT는 영국의 BP와 셸(41억 달러 손실), 토탈에너지 등 3개사가 치른 비용(손실) 합계가 무려 442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석유·가스 가격의 상승에 따른 이익 규모가 손실보다 훨씬 커, 3개사는 결과적으로 950억 유로의 이익을 냈다. 손실의 2배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또 은행·보험사·투자사 등의 금융사는 175억 유로의 손실을, (통신 등) 사회 기반시설 관련 기업은 147억 유로, (자동차 등) 산업 기업은 136억 유로의 손실을 봤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러시아를 떠나는 게 나을까?

FT가 접촉한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러시아를 떠나는 게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제 위기 전략 컨설팅 회사 '컨트롤 리스크'의 나비 압둘라예프는 "외국 기업들이 러시아를 떠나면서 많은 돈을 잃었지만, 남은 기업들은 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빨리 떠날수록 더 적은 손실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러 제재에 대한 풍자 만화. 미국(왼쪽)이 러시아(오른쪽)를 향해 '제재'라는 통을 던졌더니, 유럽연합(EU)이 맞았다는 뜻이다/캡처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 경제대학'의 안나 블라슈크 연구원은 러시아에 남아 있는 외국 기업들은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며 "러시아 당국에 의해 매각 자금 인출 등 출구 전략이 거의 막힌 상태에서는 (러시아에서) 그냥 사업을 정리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키예프 경제대학에 따르면 러시아에 진출한 1천871개 유럽 기업 중 50% 이상이 여전히 러시아에 남아 있다.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딧 은행, 오스트리아의 라이파이젠 은행, 스위스 식품기업 네슬레, 영국의 생활용품 회사 유니레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남은 기업 중 프랑스 유제품 업체 '다농'과 덴마크 맥주회사 '칼스버그'의 러시아 자산(주식)은 지난달 16일 러시아 연방 국유재산관리청(Росимущество)으로 넘어갔다. 푸틴 대통령이 '다농'과 '칼스버그' 러시아 법인에 대한 '외부 관리'(внешнее управление, 우리의 '법정관리'와 유사) 도입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한 것이다. 두 기업과 비슷한 길을 걸을 외국기업이 1천여개에 달한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 당국에 의해 '외부 관리'에 들어간 프랑스 유제품 업체 다농/사진출처:트위트(현 X)

물론, 러시아 당국은 '외부 관리'에 들어가는 기업의 선택 기준을 비교적 명확하게 밝혔다. 만투로프 러시아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달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남아 있으면서도 생산 등 비즈니스 활동을 중단하고, 투자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회사들은 (당분간) 이익을 낼 지 모르지만, 기업은 망해가고 있다"며 "이런 기업들은 '외부 관리'를 도입해서라도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농과 칼스버그에 대한 '외부 관리'를 승인한 푸틴 대통령도 지난 6월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 포럼에서 "우리는 아무도 러시아 시장에서 쫓아내지 않았고, 외국 기업에 문을 닫지 않는다"며 "선택권은 외국 기업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미 떠난 외국 기업들에게 재입국을 허용하지 말라는 러시아 재계의 요구가 있지만, 돌아오고 싶다면, 그에 필요한 조건을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나아가 “러시아가 폐쇄된 경제체제(소비예프 체제/편집자)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지만, 우리는 기업가 정신의 자유를 확대하는 길을 선택했고, 그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게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믿을 것인가? 기업들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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