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1년반) 러시아는 장기전의 달인? 체첸 전쟁에서 확인되는 러시아 장기전 전략은
전쟁 1년반) 러시아는 장기전의 달인? 체첸 전쟁에서 확인되는 러시아 장기전 전략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8.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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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보도에서 미국 언론과는 조금 결이 다른 독일 언론은 러시아가 앞으로 2~3년간 전쟁을 지속할 태세를 일찌감치 갖추기 시작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독일 일간지 빌트는 지난 2일 독일 군사 전문가들을 인용, "러시아는 필요하다면 현역병을 300만명으로 늘려 우크라이나에서 또다른 공세를 재개할 수 있다"며 러시아의 장기전 태세를 전했다. 러시아 병력은 현재 115만 명이다. 300만명이라면, 중국 군대보다 더 많은 병력이다.

주요 전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한 러시아는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 반격을 막고, 장기전으로는 더 큰 승리를 향해 진격할 발판을 확보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러시아 정부는 이를 위해 2023년 국방예산을 두 배로 늘리고(로이터 통신/편집자), 러시아 재정 지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00억 달러를 군수산업에 할당할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540억 달러를 써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미사일을 생산하는 군수업체를 방문한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빌트지 보도가 나온 지 이틀 뒤(8월 4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병역 연령 한도를 높이고 입대및 동원 대상자는 소환장을 받은 후 해외 출국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스트라나.ua(8월 4일자)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새 법안의 발효로 내년 1월 1일부터 입대 대상자가 18~30세로 3년(이전에는 27세까지) 늘어난다. 또 입대및 동원 대상자의 해외 여행은 소환장이 근무지나 학교 등으로 보내진 날, 또는 소환장이 전산에 등재된 순간부터 금지된다.

게다가 군 입대자는 복무 첫 달이 지나면 언제든지 우크라이나 전쟁터로 가기 위한 '특별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동원 회피자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징역형) 법안도 연내 제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장기전 태세는 사실 오래 전부터 감지됐다. 그동안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수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 점령지 주요 지역에 구축한 방어 진지는, 궁극적으로 러시아에게 우리나라 비무장지대의 지뢰밭이나 휴전선 이남의 방어 요새나 다를 바 없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종전(혹은 휴전)이 되면 그 쓰임새는 곧바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 전 대통령실 고문/사진출처:페북

한때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입'으로 불렸던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은 "러시아의 주요 비밀병기는 바로 장기전 의지"라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8월 2일자)에 따르면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은 "오랜 시간에 걸쳐 상당한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끝끝내 승리를 챙기는 게 러시아의 전략상 특징"이라며 체첸 전쟁의 승리와 북카프카스 지역의 안정화를 그 예로 들었다. 

1999년 시작된 제 2차 체첸 전쟁은 매우 길고 힘들었다. 소위 체첸 반군은 모스크바와 주요 대도시를 대상으로 '테러 공격'를 가하면서 러시아 권력을 흔들었다. 당시 러시아의 권력과 국가기구는 엄청난 비효율성을 보여 주었고,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게 아레스토비치 고문의 평가다. 하지만, 러시아는 실수로부터 배우면서 전체 흐름을 유리하게 바꿔나갔고, 2006년에는 체첸 상황이 안정됐다. 인근 북카프카스 지역도 자폭 테러와 같은 사건·사고가 줄어들었다.

2000년 제 2차체첸 전쟁 모습/사진출처:위키피디아

아레스토비치 고문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을 빨리 끝내기를 거부함에 따라, 푸틴 대통령이 '장기전 의지'를 다시 꺼내기로 했다고 본다. 여기에는 국가 지도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필수 조건이다. 또 수년간의 전쟁을 견디고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사회적 통합도 중요하다.

크렘린은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와 서방의 대 우크라 지원, 현 전선을 유지할 수 있는 전투 능력, 국민의 정상적인 삶 유지 등을 장기전의 핵심 변수로 보고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의 그늘' 지우기다. 바로 '언론 통제'다.

제1차 체첸 전쟁 당시, 러시아는 언론의 현장 취재에 의해 조성된 부정적인 이미지에 전쟁 참전 어머니회 등 일부 단체의 반전 활동이 겹쳐지면서 반전 여론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학습 효과를 바탕으로 푸틴 대통령은 제 2차 체첸전쟁 개시와 함께 언론을 완전 장악했다. 2004년 세계를 뒤흔든 북오세티아의 '베슬란 (학교) 인질극'(Террористический акт в Бесла́не, 진압과정에서 어린이 186명을 포함해 인질 314명 사망/편집자)의 충격마저 어렵지 않게 극복한 것도 언론 장악의 덕이 크다. 

크렘린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반정부및 친서방 언론을 '외국 에이전트(대리인)'로 지정하는 등 언론 통제에 나섰다. 그러나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반 프리고진의 부상과 함께 그 틀이 깨졌다. 기존 언론을 넘어서는 군사 인플루언스(텔레그램 채널), 종군 특파원 및 블로거의 존재 때문이었다.

특히 친 프리고진 텔레그램 채널은 러시아 군지휘부(쇼이구 국방장관-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뿐만 아니라 크렘린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군도 이를 놓치지 않고, 러시아 접경지역을 공격하고, 모스크바로 자폭 드론을 날려보내는 등 비판의 소재를 계속 제공했다. 

군사반란을 일으켜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를 장악한 '바그너 용병'들/사진출처:텔레그램

하지만 프리고진의 6·24 군사반란 실패와 '매파' 인플루언스 스트렐코프-기르킨의 체포 등으로 텔레그램 채널 등 1인 미디어의 비판 기조는 급격히 낮아진 상태다. 

그렇다고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제 2차 체첸전쟁과 다른 점을 세가지로 들었다. 첫째, 이번 전쟁이 체첸 전쟁보다 몇 배나 더 규모가 크고 치열하며, 러시아는 서방 진영을 적으로 돌렸다. 2000년대 초에는 미국이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러시아를 '국제 테러와의 전쟁에서 동맹국'이라고 불렀고,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대 체첸 군사 지원도 거부했다. 

둘째, 제 2차 체첸전쟁 중에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와 같은 경제적 위협 요인이 없었다. 셋째,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수많은 인기 군사 텔레그램 채널이 등장했고, 군사 부문의 언론 자유가 확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믿는 구석이 있는 눈치다. △서방의 대우크라 지원이 순조롭지 않고 △국제 여론이 변하고 있으며 △나토 일각에서도 협상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나쁘지 않는 현실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나.ua(8월 20일자)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서방측이 우크라이나에 레오파트 전차(탱크) 수백대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60대만 받았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군의 지뢰를 제거할 장비도 충분하지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군사 지도부는 서방의 군사 장비 공급 지연으로 러시아가 지뢰밭 등 방어요새를 구축할 시간을 벌었고, 그 결과, 반격이 지연되고, 지지부진하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에 제공된(혹은 제공될) 핵심 전력인 미 에이브럼스 전차와 독 레오파드2 전차/사진출처: 유튜브 

또 CNN이 이달 중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반대하는 등 대우크라 지지도 약화하는 모양새다. 

나토 내부에서도 협상 분위기가 조성되는 중이다. '영토와 나토 가입을 맞바꾸자'는 나토 사무총장실의 실장이 물꼬를 텄고,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도 적극적으로 이 논의에 뛰어들었다. 폴리티코는 이 제안을 지지하는 톰 말리노프스키 맥케인 연구소 연구원(전 민주당 하원의원, 전 국무부 차관보)의 3단계 방안을 싣기도 했다. 

제 1단계는 우크라이나가 반격에서 최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지원한다. 2단계는 내년(최대한 6월까지) 우크라이나는 공격을 중단하고 수복한 영토의 방어에 나선다. 마지막으로 내년 7월로 예정된 나토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제하는 모든 영토의 안보 보장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정식으로 초청한다. 

그는 이 방안을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을 나토에 가입시키고, 한국 전쟁 이후 한미 안보협정을 체결하는 것과 비슷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승리를 선언하고, 러시아의 점령 하의 영토 반환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렘린도 이 방안이 나쁠 게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최소한 '한국전 시나리오'는 승리한 것으로 주장할 만하다. 2014년 점령한 크림반도로 향하는 육상 통로는 물론이고, 비옥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상당 부분을 확보해 곡물 수확량을 늘리고, 세계 곡물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목표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변수다. 러시아가 이번 전쟁을 '제 2의 체첸전쟁'으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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