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1년반) 우크라의 장기전 각오? 의회가 먼저 배수진으로 퇴로를 끊었다
전쟁 1년반) 우크라의 장기전 각오? 의회가 먼저 배수진으로 퇴로를 끊었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8.29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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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의회(최고 라다)는 지난 23일 전쟁 종식을 위해 영토의 양보를 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나토 사무총장실에서 최근 불거진 '영토와 나토 가입을 맞바꾸는 것'과 유사한 평화안에 대한 선제 대응조치로 해석된다. 패배를 각오하고 전쟁을 계속하겠다며 퇴로를 끊어버리는 '배수진'이나 다름없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의회가 이날 채택한 결의안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어떠한 영토 양보도 용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러시아의 모든 무장 조직은 하나도 남김없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크림반도 등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1991년 국경/편집자)을 회복하고 국가주권을 보장하는 것이 전쟁 종식을 위한 전제조건이다'고 규정했다. 

우크라이나 의회인 '베르호브느이 라다'(최고 라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이같은 의회 결의안은 우크라이나 권력(대통령실)의 전쟁 의지를 반영한다. 
스트라나.ua (8월 18일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과 친정부 인사들은 국민들에게 장기전에 대비하고 전시 체제를 더욱 강화할 것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동원령 확대도 주문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내세운 구호 "전방을 위해 모든 것을,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все для фронта, все для победы!)를 다시 꺼내드는 모양새라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6월 개시한 반격 작전이 '바그너 그룹'의 6·24 군사반란과 맞물려 러시아를 정치 군사적 혼란에 빠뜨리고, 자연스럽게 '전쟁 승리'로 귀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반란'을 일으키기 이전부터, '강경한 톤의 수뇌부 비판'으로 러시아군의 전열을 흐트려뜨린,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올리가르히 프리고진 개인의 영웅심리, 혹은 야망에 대한 기대가 컸다. 

스트라나.ua는 지난 16일 "프리고진 군사 반란의 실패는 빠른 승리를 위한 우크라이나 군사 전략의 붕괴를 의미한다"며 달라진 우크라이나 권력내 분위기를 전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대한 비관론이 서방 외신에 확산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장기전 태세냐, 현 전선을 따라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한국식 시나리오'를 받아들이느냐는 선택의 갈림길에 빠져들었다"고 분석했다. 

부서지고 쓰러져도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은 계속된다. 파괴된 레오파드2 전차(탱크)를 스쳐 지나가는 장갑차/스트라나.ua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일단 '전자'(장기전 태세)로 보인다. '영토와 맞바꾸는 평화(나토 가입)'라는 개념으로 등장한 평화안이 나토 내부에서도 제기됐지만, 우크라이나는 이의 확산을 적극 차단했기 때문이다. 의회의 23일 결의안도 같은 맥락이다. 

우크라이나 권력의 고민은 전쟁 참여에 조금씩 등을 돌리는 여론이다. 이는 지난해 가을, 하르코프(하리키우)와 헤르손에서 거둔 '작은 승리'를 '완전한 승리로 가는 길'이라고 국민들의 기대를 부풀렸다가 스스로 '여론의 함정'에 빠졌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진단이다. 이번 반격작전에서 제대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동원 대상 남성들은 앞으로 더욱 동원을 회피하는 등 여론이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장기전을 준비하는 우크라이나 당국에게는 가장 큰 위험요소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위기론'의 재점화에 앞장섰다. 그는 지난 14 일 대국민 연설에서 "후방에서는 마치 전쟁이 끝난 것처럼 살고 있다"며 "자유와 독립은 전선에서 싸우는 누군가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고 함께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의회의 국가 안보및 국방위원회의 예고르 체르네프 부위원장은 "국민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을 전쟁터로 동원돼야(동원 3단계, 4단계로 확대/편집자) 한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우크라이나에서 '군사 드론' 전시회를 주관하는 자원봉사 인플루언스 마리아 베를린스카야/사진출처:hromadske.ua

차기 국방장관 하마평에 오른 자원봉사 인플루언스 마리아 베를린스카야는 "우리는 러시아의 '샤헤드' 드론과 각종 미사일 공격에 익숙해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적군이 우리의 방어선을 뚫고 도시를 점령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라"고 물었다. 그녀는 또 "국가를 완전히 전시체제로 변환할 때가 왔다"며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인적 자원을 가진 러시아는 '장기 소모전'에 베팅하고 있다"며 남성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녀의 말처럼 우크라이나의 인구 구조는 러시아와 비교가 안된다. 승리를 위해서는 '총력전 체제'가 불가피하다. 
스트라나.ua (8월 20일자)에 따르면 미국의 전쟁 역사학자겸 전략가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고문을 지낸 에드워드 러트왁은 독일 일간지 디벨트 기고에서 "이스라엘이 인구의 10%를 전쟁에 동원해 제 1차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전제한 뒤, "우크라이나도 승리하려면 전체 인구 3천만 명(최근 통계로는 3천600만명/편집자)의 10%인 300만 명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50만 병력이 최전선에 배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전략도 인구가 훨씬 더 많은 러시아가 '추가 동원'에 나서면 그 효과는 현저히 떨어진다. 

내리막을 걷는 우크라이나인들의 항전 의지도 문제다. 지난 6월 초 우크라이나 사회 연구단체 '랭킹'(социологический групп "Рейтинг")'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전쟁 승리를 위해 앞으로 몇 년간 더 어려움을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11%는 앞으로 1년, 12%는 겨우 몇 달간 견딜 수 있다고 답했다. 또다른 11%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회연구단체 '랭킹' 홈페이지/캡처
우크라 동원 촉구 포스터. 전쟁터로, 입대 사무소에 가는 것을 겁내지 말라는 구호라고 한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스트라나.ua는 "전시 체제에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우크라이나의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장기전 준비가 되지 않는 국민이 거의 3분의1(34%)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현지 정치분석가 안드레이 졸로타레프는 '전쟁이 나에게 직접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리에서 동원 대상자들이 숨어들거나 해외로 도피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실도 이같은 분위기를 모르지는 않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7일 전쟁중 대선 실시에 조건부 동의를 한 것도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는 방안의 하나로 분석된다.

스트라나.ua는 28일 "전쟁 중 대선을 실시한다는 주제가 다시 떠올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며 "선거 실시 목표는 러시아와의 협상에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스페인 신문 엘 파이스·El Pais))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 매체는 '엘 파이스'의 정보가 신뢰할 만하다면, 이는 전쟁이 이르면 내년에 끝날 수 있다는 의미이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고 지적했다. 

분명한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팀(행정실)도 장기전으로 궁지에 몰리거나 지지를 잃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작정 장기전으로 밀어부칠 국면은 아닌 것이다.

그 단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국제회의에서 포착됐다. 스트라나.ua는 "제다 평화회의에서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 공식, 특히 협상 시작 전에 러시아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조건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며 "다닐로프 국가 국방안보회이 서기(사무총장, 장관급)도 '평화 공식의 순서가 바뀔 수도 있다'는 유연함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미국의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2025년 1월까지는 전쟁을 끌어갈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때까지 서방이 대우크라 무기 지원을 계속하고, 우크라이나 여론이 뒷받침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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