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러시아 방문, 현지 언론이 한국 언론을 인용하는 '기이한 현상'마저..
김정은 러시아 방문, 현지 언론이 한국 언론을 인용하는 '기이한 현상'마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9.12 0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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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밤 전용열차로 평양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전세계 언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김 위원장의 4년 여전(2019년 4월) 러시아 방문과 달리, 북한과 러시아에서 공식 발표가 늦어지면서,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과 러시아, 미국 언론들이 서로의 추측 보도를 인용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게 북-러 정상회담의 날짜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크렘린은 11일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조만간(в ближайшие дни, 국내 언론은 '수일 내'라고 번역)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곧 러시아를 방문해 회담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2019년 4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내리고(위), 환송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사진출처:연해주 사이트 primorsky.ru

양측은 외교 관례에 따라 보도 시점을 한국 시각 오후 8시, 모스크바 시각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때로 맞췄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평양 출발 시간과 러시아 도착 예정 시간, 회담 일자와 장소 등 자세한 방러 일정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유력 언론 매체들이 자국 대통령의 회담 일정을 보도하는 데 한국 언론을 인용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북한의 최고 수뇌부(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위원장) 일정은 사전에 공개된 적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019년 2월 말에 열린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김정은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도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에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가 베트남의 휴양지 다낭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언론들이 다낭에 숙소를 예약했으나 하노이로 회담 장소가 바뀌는 바람에 예약금을 다 날려야 했다.  

러시아 매체 가제타.ru는 11일 한국의 YTN를 인용, "김 위원장이 13일쯤 열리는 러시아 측과의 회담(정상회담)을 위해 장갑열차를 타고 평양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뒤이은 후속 기사에서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은 1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구체화했다.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위)와 환영 만찬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한국 언론은 러시아 매체를 인용해 13일 정상회담 개최를 전했다. 
동아일보는 김 위원장의 러시아 출발 기사에서 "러시아 언론(온라인 매체) RBC는 이날 러시아 대표단 관계자를 인용해 회담이 13일에 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고 밝혔다. 회담 장소로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루스키섬에 있는 극동연방대 캠퍼스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극동연방대는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는 제8차 동방경제포럼(EEF, 10∼13일)이 열리는 곳이다. 4년 5개월전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마주 앉은 곳(극동연방대학 S동)이기도 하다. 당시 두 정상은 단독·확대 정상회담과 만찬까지 무려 5시간 동안 대화를 주고받았다. 

정작 동아일보가 인용한 러시아 매체 rbc는 "한국의 YTN이 (한국 정부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대로 두 정상의 만남은 13일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이는 러시아 대표단의 소식통에 의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러 정상회의가 동방경제포럼의 틀 안에서 진행되지 않을 것이므로,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날은 13일 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rbc는 또다른 기사에서 "YTN이 한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떠났다고 전했다"면서 "(한국 정부) 소식통은 정상회담이 13일에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종합하면. 북-러 정상회담의 13일 개최설은 YTN→가제타.ru, rbc→동아일보로 이어진 셈이다.

국영 TV채널 러시아-1의 자루빈 기자 텔레그램

북-러 정상회담 소식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의 입으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친 크렘린 기자의 개인 소셜 미디어(SNS)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서였다. 국영 TV채널 '러시아-1'의 정치기획 프로그램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을 진행하는 파벨 자루빈 기자는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듯한 페스코프 대변인을 붙잡고 북-러 정상회의에 대해 물었다. 그는 매주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크렘린 측과 접촉이 가장 많은 기자로 통한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자루빈 기장의 질문에 "북한은 우리의 이웃이며, 여느 이웃 국가들처럼 우리는 좋은 호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는 푸틴 대통령이 지속해서 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전격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단독, 확대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방문을 환영하는 공식 만찬을 열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페스코프 대변인은 정상회담 회담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열릴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조만간 할 수 있다"며 "이번 방문은 김 위원장의 공식 방문으로, 필요하다면 양국 정상이 1대1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김 위원장의 방러 움직임을 가장 먼저 포착한 미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구체화할 '무기 거래' 여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쓸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포탄, 북한이 비대칭 전력 확보에 투입할 러시아의 첨단 군사 기술을 교환하는 '무기 거래'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마무리될지 미국측은 지켜보고 있다. 

김 위원장의 전용 열차가 도착하자, 경호원이 달려가고, 열차를 닦은 일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현지 매체 영상 캡처 

북-러 무기 거래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러시아는 한국을 향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지 말라는 경고는 '실없는 발언'이 될 판이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교부에서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제 1아주국 국장은 11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공급하지 않고 경제·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를 여러 경로로 러시아에 전달하고 있다"며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간접적으로 무기와 군사 장비를 공급하는 성급한 결정을 하면 양국 관계가 파탄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한국의 접근 방식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한국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러시아에서 심각한 손실을 봤으며, 또 시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무기 거래외에 북-러 정상이 협상 테이블에 올린 의제로는 북한 외화벌이를 위해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 규모를 늘리는 문제, 러시아의 대북 식량 수출, 유엔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할 수 있는 여러 조치 등이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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