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대통령의 전쟁 후 2번째 미국 방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쟁 후 2번째 미국 방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9.2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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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현지서 맞닥뜨린 현실이 심상치 않다. 마치 영웅을 영접하듯 떠들썩하게 맞았던 지난해 12월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1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의회 방문을 알리면서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보다 따뜻한 환대를 받았던 지난 번 방문(2022년 12월)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미국 언론들의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블룸버그 통신은 22일 "서방 측의 압력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긴장시키고 있다"며 미국 방문 결과를 요약했다. "그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對)우크라 지원 약속이 흔들리고, 다른 서방 지도자들도 미국의 뒤를 따를 수 있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 소식통이 블룸버그에게 말했다. 또다른 매체 악시오스(Axios)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냉담한 대접'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서 긴장하고 있다고 평가한 블룸버그 통신(위)와 지난해 12월 미 백악관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는 모습  

그의 미국 방문은 지난 19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조연설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등장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을 강력하게 규탄하면서 러시아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 박탈을 주장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자체의 평화 정착 방안을 제시했다. 

스트라나.ua는 20일 유엔 총회에서 공개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 구상은 딱 두 가지 조항이라고 평가했다. △1991년 국경 내에서 흑해 함대를 포함해 모든 러시아군을 완전히 철수하고 △흑해와 아조프(아조우)해, (흑해와 아조프 해를 잇는) 케르치 해협을 경계로 한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한 통제권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두 가지 사항을 이행해야만, (러시아를) 신뢰할 수 있으며 적대 행위가 완전히 중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유엔 총회 기조연설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실제로 그가 당면한 현실은 자신의 평화 구상을 실현하기에는 녹록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의 구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서방 진영의 지원 열기가 차츰 식어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지부진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대한 질문에 "우크라이나가 연말 이전에 전선에서 큰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며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불과 하루 뒤인 21일 미 상원을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원을 (계속) 받지 못하면 전쟁에 질 것"이라고 호소했다(척 슈머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전언). 미국의 군사 지원에 대한 간절함의 표현이겠지만, 미 의회의 분위기는 이미 9개월 전과 같지 않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워싱턴 방문의 목적을 △대공 방어 체제 강화 △미국의 대러 제재 강화 △최전선의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지원 확충이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그가 워싱턴에 채 입성하기도 전에 한층 싸늘해진 미국 분위기를 체감해야 했다.
 
미 뉴욕타임즈(NYT)는 그의 워싱턴 방문에 맞춰 우크라이나의 반격작전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기사를 또다시 게재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원을 잃을 위험이 있으며, 러시아와 협상하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라는 게 요지다. 

NYT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의 반격 작전에 의해 러시아군의 첫 번째 방어선만 무너지고, 최전선의 작은 마을 '라보티노'가 탈환되었을 뿐"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지뢰밭과 참호,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고, 날씨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라보티노' 마을은 전투 중 완전 파괴됐다"며 "항공 사진을 통해 확인된 우크라이나의 손실은 탈환한 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나아가 "분명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건물이 불타고, 주변 농지가 지뢰와 불발탄으로 뒤덮일 것이라는 점"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이를 제거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라보티노의 부서진 건물 위에 꼽힌 우크라이나 국기(위)와 부서진 탱크를 지나 진격하는 우크라 장갑차량/사진출처:우크라 합참 페북, 스트라나.ua

뿐만 아니라, NYT는 지난 6일 우크라이나 콘스탄티노프카의 시장에서 민간인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사일이 우크라이나군이 잘못 쏜 '오발탄'이라고 19일 보도했다. 러시아와 유럽 일부 언론이 주장한 그간의 실체적 진실을 젤렌스키 대통령 앞에서 확인해준 것이다. 

또 그의 미국 방문에 맞춰 에이태큼스(ATACMS) 장거리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제공이 발표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무산됐다. 존 커비 미 백악관 전략 커뮤니케이션 조정관은 20일 에이태큼스 장거리 미사일의 키예프 제공에 관한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소량의 에이태큼스 미사일 제공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미 NBC 보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워싱턴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미 하원이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요청한 240억 달러의 대우크라 추가 지원안 처리의 열쇠를 쥔 곳이다. 그러나 의회 다수당을 장악한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9개월 전과 달리 그의 하원 연설 요청을 거부했다.

미 하원을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NYT에 따르면 매카시 의장은 몇몇 의원들과 함께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뒤 "240억 달러 규모의 대우크라 지원안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미국의 지원이 제대로 사용되는 지에 대한 동료 의원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구체적인 정보를 달라"고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방공 미사일과 에이태큼스 장거리 미사일의 지원을 최우선적으로 요구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미 상원에서는 일부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그와의 만남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마크 브라운 상원의원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며 "미국에게 더 많은 지원을 원한다면, 유럽연합(EU)도 공평하게 내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랜드 폴 상원의원은 "올해 미국의 재정 적자는 1조 5천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며 "중국에서 돈을 빌려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것은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미 상원의원들과 대화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문 전날, 일부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240억 달러 규모의 대우크라 지원안에 반대하겠다는 뜻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는 하원 의원 23명과 상원의원 6명이 서명했다. 서한은 "반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6개월 전보다 더 가까워졌느냐? 우리의 전략은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른 채, 지원안을 승인하는 것은 의회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WSJ는 "이 반대자 그룹이 새 지원안의 의회 통과 절차를 차단하거나 지연하기에 충분한 세력"이라고 평가했다.  

스트라나.ua는 "미국의 달라진 분위기는 이해할 수 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방문한 지난해 12월에는 하르코프(하르키우)주(州)의 거의 전체 영토를 탈환하고, 러시아군이 헤르손을 철수하는 등 성공적인 가을 반격의 '만족감'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밝혔다. 그때 흐름으로는 우크라이나군이 한두 가지 주요 작전을 더 실행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9개월 후, 그같은 희망이 지지부진한 반격으로 무너진 지금, 미국 조야(朝野)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미국이 천문학적인 원조를 제공했지만, 반격 작전에서 전략적으로 승리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 백악관의 선택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계속하기 위한 옵션은 두 가지뿐이라고 스트라나.ua는 21일 지적했다. 우선 미국이 추가 지원안을 승인하는 방안이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동안 더 지원해야 할지,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방어 전략을 돌아서는 길이다.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는 22일 키예프(키이우)에서 열린 지역 경제 포럼에서 "우리도 남부 지역에 러시아와 유사한 방어 요새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우크라 양측이 길게 뻗은 최전선의 앞뒤에서 방어 진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곧바로 우리의 휴전선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아직 제 1안(반격을 위한 추가 지원)을 희망하고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조야를 설득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실패할 경우, '한국전 시나리오'(휴전)에 따라 러시아와의 협상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스트라나.ua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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