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환율전쟁'은 지금 - 루블화는 잠그고, 우크라는 조금씩 풀기 시작하는데..
러-우크라 '환율전쟁'은 지금 - 루블화는 잠그고, 우크라는 조금씩 풀기 시작하는데..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0.0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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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전투만 '전쟁'이 아니다. 후방에서 펼쳐지는 경제전쟁, 그중에서도 '환율 전쟁'은 당사국 국민 모두에게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는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1년 7개월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각기 짧고 긴 호흡으로 환율 방어에 주력해왔다. 그 결과, 10월 들어 양국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러시아는 루블화가 달러당 100루블을 넘어서는 '환율 위기'에 직면했고, 우크라이나는 전시의 '고정환율제'에서 '관리형 변동환율제'로 바꾸는 도전에 조심스레 나섰다. 여차하면 고정환율제로 후퇴할 태세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매체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루블화는 3일 모스크바 거래소에서 장 초반부터 달러당 100.25루블을 기록하면서 또 다시 100루블대에 진입했다(99.7루블로 마감). 지난 8월 14일 이후 7주 만이다. 

지난 1달여간의 루블화 등락 추이. 맨 왼쪽이 9월 1일. 오른쪽 표는 열흘간의 고지 환율 변화/사진출처: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프롬스뱌지방크' 금융 분석가들은 루블화 약세의 주 요인으로 꾸준한 달러 수요를 들었다.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 공급보다, 병행수입 등 수입 증가에 따른 수요가 더 많고, 러시아 수출업체들의 달러 공급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러시아 정부가 최근 국내 에너지 가격의 안정을 위해 경유 등 석유 제품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고, 시중에서 넘쳐나는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한 당국의 조치가 늦어진 것도 달러화 약세를 부추긴 것으로 분석됐다. 

알파 캐피탈 매니지먼트사(社)의 통화 전문가 블라디미르 브라긴은 "잇딴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도 이미 소진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연 7.5%에서 8.5%로 1%포인트(P) 인상한 데 이어 8월과 9월에도 각각 3.5%P, 1%P 인상한 바 있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13%.

통상 기준금리가 오르면,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이 유입돼 자국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데, 러시아에서는 서방의 금융 제재조치로 이같은 '환율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환율에 미치는 기준금리 인상의 약발이 금방 떨어졌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중국식 환율 관리제도의 도입 검토다. 

막심 레셰트니코프 러시아 경제개발부 장관은 지난 9월 25일 루블화 안정을 위해 중국식 환율 관리 방식을 검토해볼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중국식'이란 역외와 역내 환율을 달리 관리하는, 소위 '이중 환율제'다. 홍콩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역외 외환시장에서 위안화 가치는 '시장 매커니즘'에 의해 결정되고, 국내(역내)에서는 중앙은행이 일일 기준 환율을 설정한 뒤 이 기준에서 2%내에서의 변동성만 인정하는 방식이다. 

러시아 하원에서 통화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참석한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

레셰트니코프 장관은 '이중 환율의 용인'이 러시아 경제에 해가 된다며 중국식 제도 검토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루블화는 (위안화와 달리) 러시아 계정(역내)이든 외국 계정(역외)이든 어디서 교환되든지, 환율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중국식 제도 검토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또 "수출업체에게 가득한 외화의 일정량을 시장에서 외무적으로 판매하게 하는 정책으로의 복귀도 환율 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미 있는 것은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의 3일 발언이다. 그는 이날 루블화 가치 하락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달러 환율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과거의 '유물'에 불과하다"며 "이제는 루블화 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며, 달러 환율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가혹한 경제 봉쇄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루블화 생활권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까 싶다.

루블화의 향후 전망은 국제 유가의 상승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알파 캐피털은 향후 6~12개월 동안 달러당 85루블까지 떨어질 수 있다(가치 상승)고 내다봤다. 국제 유가의 상승으로 외화 공급이 증가하고, 통화량도 조만간 조절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 관리형 변동환율제로 전환하는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사진출처:bank.gov.ua

반면, 우크라이나는 자국 경제 보호를 위해 지금까지 유지해온 고정환율제를 3일 '관리형 변동 환율제'로 전환했다. 한마디로, 은행간 외환거래로 환율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또 과도한 변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할 방침이라고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측은 밝혔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 중앙은행은 3일 지금까지 시행해온 달러당 36.6흐리브냐(UAH)의 달러 고정 환율제를 포기하고, 부분적으로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흐리브냐 환율은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3월 달러당 29.25UAH로 고정됐으나, 같은 해 7월 25% 평가절하돼 지금까지 36.6UAH에 묶여 있었다. 

우크라 중앙은행은 “꾸준한 인플레이션 하락과 상당한 수준의 외화 준비금 확보, 흐리브냐 예금과 국채에 대한 관심 제고 등을 감안해 환율체제를 유연하게 바꾼다"고 변동환율제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피시니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총재/사진출처:스트라나.ua

안드리 피시니 중앙은행 총재는 "(전쟁 중 환율을 크게 조정한) 작년 7월과 비교하면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며 "금융 시장 안정성이 최고 수준에 달해 국가 경제와 기업에 힘을 보태주기 위한 전시 금융 체제의 완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율의 변동 폭을 제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라나.ua는 3일 "외환시장이 오늘부터 자유로와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중앙은행이 자체 규칙과 알고리즘에 따라 시장을 관리하고 있다"며 "그 내막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변동환율제 도입 첫날인 3일 흐리브냐 환율은 달러당 36.66UAH에서 시작됐지만, 빠르게 36.55UAH로 떨어졌고, 36.61UAH로 마감됐다. 흐리브냐(UAH)화의 강세 흐름이다.

우크라이나 흐리브냐화/사진출처:픽사베이.com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하루 달러 판매량으로는 최고치인 5억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다. 전날 중앙은행이 월간 판매 규모를 30억 달러, 일일 평균 1억 5천만 달러로 예상한 것과 비교하면, 3일 하루 판매량은 무려 3.3배나 많았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이 너무 빨리 소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이유다. 

이날 은행 간 달러 거래량(블룸버그 플랫폼)도 5억 5020만 달러로, 올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날(2일) 250만 달러, 9월 29일에는 거래량이 55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앙은행 측은 "외환보유액이 현재 400억 달러에 가깝고, 잠재된 수요가 풀리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며 "수요가 곧 줄어들 것"으로 자신했다.

우크라이나의 변동 환율제 도입으로 환투기 세력이 몰려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우크라 중앙은행 측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라도 올해 말까지 41.2 UAH을 유지하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일각에서는 환 투기세력이 발호할 경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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