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흑해함대는 지금 - 우크라 '스톰 섀도' 미사일 공격을 피해 인근 기지 재구축?
러시아 흑해함대는 지금 - 우크라 '스톰 섀도' 미사일 공격을 피해 인근 기지 재구축?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0.07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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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흑해함대는 태평양함대와 북방함대, 발트함대와 함께 해군 전력의 핵심이다.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남쪽으로 향한 '창'을 열어가는 '남방정책'의 전략적 자산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로 흑해함대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쪼그라들었다. 우크라이나와 보유 전력을 분할해야 했고(1997년), 본거지인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기지를 계속 임대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러시아는 '유로마이단'(우크라이나의 친러 정부 반대 시위) 사건으로 친러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지자, 그 혼란한 틈을 놓치지 않고 2014년 흑해함대 기지가 있는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하는 강수를 뒀다. 세바스토폴 기지의 우크라이나 시설도 자연스레 러시아 흑해함대로 통합됐다.

러시아 흑해함대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흑해함대는 흑해와 인근 아조프(아조우)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지난 7월 '흑해 곡물협정'이 파기된 뒤 '흑해 봉쇄'를 선언할 수 있었던 이유다.

거꾸로 우크라이나는 세바스토폴 기지가 있는 크림반도를 영토 탈환의 최종 목표로 삼고, 시시때때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가하고, 해상 침투 작전으로 러시아군의 신경을 거스려왔다. 지난 달(9월)에는 크림반도와 흑해 함대를 겨냥한 공격이 더욱 과감해졌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지상 반격 작전이 기대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전선을 흑해 해상으로 넓혔다는 분석도 있고, '크림반도'라는 상징적 목표물에 대한 '작은 성공'을 내세워서라도 국민의 사기 추락을 막겠다는 노력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일부 서방 언론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흑해 제해권을 일부라도 되찾아 안전한 곡물 수출 항로를 확보하고, 러시아 군수물자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크림반도 공략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공격 규모로 볼 때 '군사적 의미'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진 현 전선에서 서로 상대방의 후방 목표물을 타격하는 '포격 소모전'이나 기습적으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9월 중순 몇 차례에 걸쳐 흑해 함대를 집중 공격해 러시아의 잠수함과 상륙함, 함대 사령부 건물 등을 파괴했다. 러시아 측은 함대의 수리 기지(Севморзавод)와 수리중인 함선, 본부 건물이 피격당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 진영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드론을 먼저 띄워 러시아 방공망 시스템을 어지럽힌 뒤, 영국의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로 목표물을 타격했다는 게 러시아 측 주장이다.

러시아 세바스토폴의 흑해함대 사령부 피격 모습/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지난 9월 13일 "우크라이나는 세바스토폴에 대해 처음으로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시작했다"며 "'스톰 섀도'와 같은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이 우크라이나로 이전될 당시, 키예프가 세바스토폴 주변의 흑해함대 함선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자주 논의된 바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전까지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스톰 섀도' 공격으로부터 흑해함대를 보호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고, 그 결과가 최근 어렴풋이 알려졌다. 위성 사진 판독에 따르면 일부 함정이 세바스토폴 해군기지에서 러시아 본토의 인근 군사기지 등으로 이동 배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위성 사진과 전문가 분석 등을 토대로 흑해 함대의 군함 상당수가 세바스토폴에서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 소재 민간 싱크탱크인 전략기술분석센터의 군사 전문가 미하일 바라바노프는 지난 1일 촬영된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 랩스’의 위성 사진을 보면, 세바스토폴에 정박 중이던 함정 중 킬로급 공격 잠수함 3척, 유도 미사일을 장착한 호위함 2척, 초계함 1척 등이 러시아 본토의 노보로시스크항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또 대형 상륙함 1척과 신형 기뢰제거 함정 1척, 다수의 소형 선박들도 크림반도의 동부 페오도시야로 옮겨졌다. 

제임스 히피 영국 국방부 차관 등 서방 측은 이를 “러시아 흑해 함대의 기능적 패배”라고 주장했다. WSJ는 “러시아 흑해 함대의 이동 배치는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한 푸틴 대통령에게는 놀라울만한 좌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의 위키백과러시아의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흑해 함대는 사령부가 있는 세바스토폴을 비롯해 노보로시스크(Новороссийск)와 페오도시야(Феодосия), 투압세(Туапсе), 템류크(Темрюк), 타간로크(Таганрог) 등 6개의 기지를 흑해와 아조프해의 여러 항구에 두고 있다. 시리아에 있는 타르투스 해군기지를 포함하면 모두 7곳이다.

러시아 흑해 함대의 기지 위치. 가장 왼쪽이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항구이고, 맨 아래 왼쪽부터 세바스토폴, 심페로폴(굵은 글씨, 크림반도 주도), 페오도시아, (크림대교의 시발점인) 케르치, 템류크, 노보로시스크, 크라스노다르(굵은 글씨, 크라스노다르주 주도), 투압세다. 여섯번째 투간로그는 이 지도에 없다/얀덱스 지도 캡처

장거리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든 함선들을 전쟁 중 위험 지역 바깥으로 이동 배치하는 건 러시아로서는 아주 기본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로 계속 흑해 함대를 공격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나토(NATO)의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서방 측과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콜라이 올레슈크(Николай Олещук) 우크라이나 공군 사령관은 지난 9월 15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스톰 섀도'의 흑해 함대 공격을 인정하고, 또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공군은 점령군(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서방 측의 두 가지 순항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며 "영국의 '스톰 섀도'를 수호이(Su)-24M 전폭기의 왼쪽에, 프랑스의 '스칼프'(Scalp)를 오른쪽에 걸어놓는다"고 말했다. 또 "독일 미사일을 위한 자리도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독일 측은 우크라이나군의 이같은 공격 확대를 우려해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미사일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러시아측의 추가 조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5일 러시아 흑해 함대의 세바스토폴 철수설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지만, 그 대안이 인근 '압하지야'에서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 매체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아슬란 브자니아 압하지야 대통령은 5일 '오참치라 '에 러시아 해군 기지를 건설하기로 (푸틴 대통령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군사기술협력은 상호 국방력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9월 30일 압하지야의 독립기념일에 러시아 군함이 입항했다고도 했다.

압하지야는 그루지야(조지아)에서 독립을 선포한 자치공화국으로, 2008년 러-조지아 전쟁 당시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브자니아 대통령은 전날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아슬란 브자니아 압하지야 대통령과 회담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오참치라항의 위치. 왼쪽부터 우크라이나 오데사항, 세바스토폴 흑해함대 기지, (크라스노다르주 주도인) 크라스노다르, 오참치라(표시), (그루지야 수도)트빌리시/얀덱스 지도 캡처

오참치라항은 1930년대부터 카프카스 지역의 주요 해상 기지로, 또 1960년대부터는 국경 경비함 여단 기지로 운영됐다. 소련 해체 뒤인 1996년 폐쇄됐다가 2017년 다시 러시아 국경경비대 기지로 운영이 재개됐다. 압하지야의 독립 선언 이후, 흑해 함대의 세바스토폴 기지 임대 연장 난항과 맞물려 이 곳에 러시아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흐지부지됐다고 한다.

이와함께 러시아 측은 오참치라 인근의 '수쿰 공항'도 대대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 공항은 지난 30년 간 일부 군용기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압하지야 당국은 '수쿰 공항'의 확장 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로부터 국제 공항 코드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러시아 항공사의 정기편 운항을 기대하고 있다.

흑해 함대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이 장기적으로는 러시아 흑해함대의 개편을 앞당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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