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환율 방어에 서로 다른 길 - 기업 외화 판매 강제 vs 외환보유고 풀기
러-우크라, 환율 방어에 서로 다른 길 - 기업 외화 판매 강제 vs 외환보유고 풀기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0.14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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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환율 방어를 위해 택한 길을 비교하면 흥미롭다. 전쟁 비용 출혈이 불가피한 두 나라로서는, 자국 통화의 가치를 온전히 시장에 맡겨놓을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지난 11일 루블화가 달러당 100루블을 넘어서자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가득 외화를 시장에 내놓으라는 강제 매각 조치를 또다시 꺼냈다. 지난해 2월 특수 군사작전 직후, 금리의 대폭인상과 이 조치를 병행하면서 재미를 본 학습효과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진출처:현지 SNS인 ok 이즈베스티야 계정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1일 주요 수출기업에 대해 수출로 획득한 외화를 6개월 이내에 국내 시장에 팔도록 의무화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주요 석유업체를 포함한 연료·에너지, 철·비철, 화학, 목재, 농업 등 43개 분야 기업이 그 대상이다. 외화 수입의 의무 매각 비율과 조건 등 세부 내용은 별도 정부 법령으로 정할 계획이다. 지난해 2월 전쟁 초기에는 기업들에게 외화 매출의 80%까지 시장에 매각하도록 한 바 있다.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외환시장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환율 투기 가능성을 줄이는 게 이번 조치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측도 "이번 조치가 기업의 외화 판매를 늘리고 시장 유동성 상황을 개선하며, 외환시장의 단기 변동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러시아 중앙은행은 환율 안정의 핵심 요인으로 무역수지 개선과 통화 정책(금리 인상)을 두 축으로 한 인플레이션 완화를 꼽는다. 다행히 3분기 수출 여건이 개선되고, 연이은 긴축 통화 정책(금리 인상)에 따라 수요가 줄고, 루블화 저축의 매력이 증가하면서 루블화가 안정될 것으로 중앙은행 측은 내다봤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Bloomberg Economics)의 러시아·중부 유럽 담당 알렉산드르 이사코프는 "수입 외화의 의무적 매각 조치가 기준 금리의 추가 인상으로 2024년 경기 침체를 위협하는 정책보다는 정부에게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9월 "외화 의무 매각 조치의 재도입이 루블화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했다. 그녀는 "수출업자들이 외화를 판 뒤 필요한 만큼 재구매할 것이기 때문에, 외환시장의 거래 규모는 증가하겠지만, 외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시장 균형은 변하지 않는다"며 "외화를 일부 지출해야 하는 수출 기업에게는 오히려 불편과 비용 증가만 초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한달간의 루블화 환율 변화 추이. 오른쪽은 열흘간의 등락/얀덱스 캡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블화는 이번 조치 발표 당일인 11일 모스크바 거래소에서 장중 달러당 96.45루블로 떨어지는 등 지난 주 내내 100루블을 밑돌았다.

◇ 우크라 외환보유고 계속 매각 

이달 초(3일) 관리형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은 지난 열흘간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대량 매도하는 방식으로 자국 통화 흐리브냐(UAH)화의 안정을 꾀했다. 동시에 가수요(심하게는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외화를 판매하는 시중은행들에게 기업의 외화 매입에 대한 점검및 감독 강화를 주문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게 서한을 보내 외화 구매자(기업)들에 대한 모니터링과 통제 강화를 요구한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변동 환율제로 전환한 뒤, 매일 예상을 뛰어넘는 시장의 달러 수요에 불안감을 느낀 때문으로 관측된다.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사진출처:위키미디어

실제로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의 달러 매도 물량은 기록적인 수치로 늘어나고 있다.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10월 첫 주(10월 2~6일, 변동환율제는 3일부터 시작), 중앙은행의 달러 매각 규모는 11억 6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2023년 들어 주간 최대 기록. 이전까지는 월 평균 매도액이 약 20억 달러였다. 불과 나흘만에 월 평균 매각 달러의 절반 이상을 시장에 내놓았던 것이다.

비상이 걸린 중앙은행 측은 수입업자들이 사들인 달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했고, 의심스러운 계약을 포착했다. 시중은행 측에 외화 판매의 감시및 감독을 촉구한 이유다. 특히 외화거래 규모가 회사의 정상적인 사업 규모를 넘어서거나 통화 거래의 본질과 기업 활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FATF(자금 세탁 방지를 위한 국제 금융 행동 그룹)가 규정한 자금 세탁용 페이퍼 컴퍼니에 대해서는 철저한 확인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흐리브냐화/사진출처:kurs.com.ua

10월 둘째 주(9일~13일)에도 중앙은행은 흐리브냐화 안정을 위해 달러를 계속 시장에 내놓아야만 했다. 중앙은행은 13일 외환시장에 1억 1,500만 달러를 내놓은 등 약 5억 8,000만 달러를 매각했다.

이같은 조치에 흐리브냐화는 13일 은행간 거래에서 달러당 36.395 UAH로 시작해 36.36 UAH로 마감됐다. 내주 월요일에는 36.5827 UAH로 거래를 시작한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달러 수요의 대부분을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에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가득 달러 공급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당초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측은 변동환율제 도입후 흐리브냐 강세를 유지할 경우, 기업들이 보유 외화를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안드리 피시니 중앙은행 총재는 "수출업자들이 가득한 외화를 우크라이나로 들여와 판매하는 데 서두르지 않고 있으며, 약 80억 달러가 해외에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기업은 대금 수금후 늦어도 180일(6개월) 이내에 외화를 국내로 반입해야 한다. 그렇다고 (러시아 처럼) 시장에 팔아야 하는 의무는 아직 없다. 

흐리브냐화의 강세가 수출업체에 실제로 영향을 미쳐 외화 판매를 점진적으로 늘릴 것이라는 게 중앙은행 측의 기대였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내주에는 흐리브냐화가 상승(가치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 속도를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를 푸는 방식으로 흐리브냐화 강세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그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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