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르노 카라바흐의 '100년 영토 분쟁'은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100년 영토 분쟁'은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0.1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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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터진 소련권의 '땅 따먹기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활짝 웃었다. 소련시절부터 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지역에서 앙숙 관계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민족과 종교(정교회 vs 이슬람)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이 16일 완전히 아제르바이잔의 손으로 넘어갔다.

1924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스탈린 주도)에 의해 아르메니아민족공화국 소속에서 아제르바이잔 민족공화국내 자치공화국으로 바뀐지 근 100년 만에, 소련 붕괴후 영토 분쟁 30년 만에 이 땅의 주인이 아제르바이잔으로 확인된 것이다. 

국기에 키스하는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사진출처:페이스북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 등에 따르면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16일 근엄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정부의 건물로 들어가 이 지역을 사실상 통치해온 아르메니아 국기를 밟고 지나갔다. 전날 나고르노 카라바흐 주요 도시의 행정관청에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내건 데 이어 아르메니아 (자존심)를 완전히 짓밟는(?)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이 땅은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인정받았으나, 주민의 대부분(80%, 약 12만명)을 차지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의 보호를 자처한 아르메니아의 실효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특히 소련 붕괴 후인 지난 1992년~1994년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가 승리하면서 실효 지배는 굳어졌고, 2017년에는 아르메니아의 지원을 받는 '공화국'(아흐차흐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올해 9월 아제르바이잔은 군사작전을 통해 '빼앗긴' 영토를 완전히 되찾았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난 달 19일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대테러 작전'을 내세워 군대를 진입시켰고, 이름 뿐인 '아흐차흐 공화국'의 군대(민병대)를 궤멸시켰다. 3년 전(2020년 9월~11월), 아제르바이잔과의 전면전에서 패해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한 아르메니아군도,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현지에 진주한 러시아군도 손을 놓은 상태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의 진격을 막는 장애물은 아무 것도 없었다.

2020년 전쟁에서 아르메니아 포대가 아제르바이잔의 드론 공격에 속절없이 깨지는 모습/사진출처:아제르바이잔 국방부

군사작전 이튿날인 20일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승리를 선언하고 아르메니아계 자치정부(아흐차흐 공화국)와 아제르바이잔으로의 재통합을 위한 협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아르메니아는 즉각 항의했으나,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도 개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아흐차흐 공화국' 군대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이 지역에 살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아르메니아계 주민 12만명 중 80%에 이르는 10만여명이 아제르바이잔의 인종 청소를 피해 아르메니아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제르바이잔 측은 아르메니아 주민들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약속했지만, 러시아 올리가르히 출신 루벤 바르다니안 자치 정부(아흐차흐 공화국) 수반(총리 격) 등 고위 인사들을 테러혐의로 대거 체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의 약속을 믿지 않고 떠난 이유다.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지난 5일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샤를 미셸 유럽평의회 의장과 함께 4자 회담을 갖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사태를 논의했다.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이 회의에 초청을 받았지만, 참석을 거부했다. 파시냔 총리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파시냔 총리는 2년 전 항복 문서(평화협정)에서 가까스로 확보해둔 나머지 땅 86만㎡도 아제르바이잔으로 인정하는 (합병) 선언문에 서명해야 했다.

캡처2-아르메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도 stylishbag.ru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위치. 붉은 색이 2020년 전쟁 이후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진주한 곳이고, 바깥쪽 라인이 나고르노 카라바흐 경계선. 이번에 모두 아제르바이잔으로 넘어갔다. 지도를 보면 양국이 영토 분쟁을 벌일만 하다. 전쟁 후 아르메니아와 나고로노 카라바흐는 '라친 회랑'을 통해, 아르메니아에 의해 동서로 갈라진 아제르바이잔은 최남단의 '장가주르 회랑'을 통해서만 각각 연결된다/사진출처:stylishbag.ru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탈출하려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라친 검문소로 몰려드는 모습/텔레그램 영상 캡처

아제르바이잔이 30년 만에 전쟁으로 '잃었던' 땅을 전쟁으로 되찾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는 푸틴 대통령의 의중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정학적 흐름을 보면, 아르메니아는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주도의 군사협력조직인 CIS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러시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6개국)에 일찌감치 가입했고, 아제르바이잔은 가입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르메니아는 CSTO를 통해 아제르바이잔의 군사 위협에 대응하고,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반면, 1992~94년 전쟁에서 손을 놓고 보기만 한 러시아가 못미더워서였다. 그러나 1992년 CIS 국가들의 군사·안보 협력체로 출범한 CSTO는 2002년 회원국이 안보를 위협당할 경우, CSTO 전체가 개입하는 '집단안전보장 체제'로 탈바꿈했다. 일부 외신은 CSTO를 러시아가 주도하는 작은 '나토'(NATO)라고 불렀다.

CSTO 협정에 따르면 3년 전 전쟁(2020년)에서 러시아 등 5개 회원국은 즉각 참전을 선언하고, 아르메니아를 도와야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끝내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평화 협상만 중재), 푸틴 대통령의 진짜 속내는 지난 5일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열린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 국제 토론 클럽(발다이 클럽)'에서 뒤늦게 드러났다.

그는 전문가들 앞에서 "2020년 전쟁 전부터, 오랫동안 아르메니아가 1992~94년 전쟁으로 점령한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중 일부를 아제르바이잔에 양도하는 것을 타협안으로 제안했다"면서 "그러나 '예레반(아르메니아 수도)은 필요하다면 싸울 것'이라며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운명은 이제 파시냔 총리가 이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 인정하면서 확정됐다"며 "아제르바이잔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고르노 카라바흐에서 헌법 질서를 확립할 것인지는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의 '발다이 클럽' 토론 모습/사진출처:크렘린.ru

푸틴 대통령의 이날 발언만으로는 자신의 타협안을 거부한 아르메니아를 사실상 버린 것으로 해석된다. 거의 동시에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도 러시아가 자국의 안보를 지켜주지 못한다며 노골적으로 반러 성향을 드러냈다. 지난 2018년 친서방 민주화 시위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파시냔 총리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결정을 준수할 것을 약속하는 로마 규정을 비준하기로 한 것. CSTO 협정과 러시아와의 파트너십만으로는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지난 달에는 러시아에 보란 듯이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 의회는 지난 3일 ICC의 로마 규정을 비준했다. 야당은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의회를 떠났다. 파시냔 총리의 집권 여당만으로 로마 규정이 비준된 것이다. 

러시아 측은 이에 대해 극도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아르메니아는 앞으로 나토(NATO) 가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도 지난 2008년 나토 가입 시도와 함께 러시아의 무력 시위에 크게 당한 '이웃 국가' 그루지야(조지아)가 택한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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