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 덮치는 전비(戰費) 부족 공포 - 서방의 대우크라 군사 지원 삭감 현실화
우크라에 덮치는 전비(戰費) 부족 공포 - 서방의 대우크라 군사 지원 삭감 현실화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0.24 0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마스-이스라엘 충돌이 제 5차 중동전쟁(1948년 1차·이스라엘 독립전쟁, 52년 2차·수에즈운하 위기, 67년 3차·6일전쟁, 73년 4차·욤키푸르 전쟁)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 우크라이나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중동으로 옮겨가고, 미국과 서방의 대 우크라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여름철 반격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전쟁 피로감이 주변 국가로 급속도로 확산되는 시점이다.

하마스-이스라엘 충돌 직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나토(NATO) 국방장관 회의에 직접 참석하는 등 "우크라이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나토 본부를 방문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과 회담을 갖는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우려는 전쟁 물자 공급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뉴욕 타임스(NYT)는 21일 우크라이나로 할당된 155㎜ 포탄 수만 발이 이스라엘에 향했다고 보도했다.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가 이틀 전 보도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19일 "미국은 두개의 전쟁을 치를 역량을 갖고 있다"며 "다른 전쟁(우크라이나 전쟁)보다 한 전쟁(이스라엘)을 우선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말과 다를 수 밖에 없다. 미 국방부 관리들도 "(우크라이나로 배정된) 포탄을 이스라엘로 보내더라도, 우크라이나가 즉각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지역(가자 지구)을 공격하는 정밀 유도 미사일·포탄은 이스라엘에, 넓은 전장에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에는 집속탄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받는 심리적 타격은 크다.

미국 155mm 포탄/사진출처:오픈 소스

일부 전문가들은 현실을 인정한다. 155㎜ 포탄 등 물량이 제한적인 일부 군사 물자를 두개의 전선으로 보내려면, 어쩔 수 없이 무기 종류및 물량에서 타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일이 서로 달라고 요구하는 무기류다. 스마트 폭탄(정밀 유도 폭탄)과 스팅어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패트리어트 방공미사일 등 3가지다. 미국은 이 무기들을 어디로 얼마나 배정할 지를 놓고 고민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대우크라 군사 지원이 이미 줄었다는 지적도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나온다. 10월 들어 미국의 군사 지원이 올해 상반기에 비해 감소했다는 사실이 미 국방부 통계로 확인됐다는 주장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군사전문 계정 '우크라이나 전투 지도'(Ukraine Battle Map)는 22일 미 국방부 자료를 인용, 미국은 지난 30일 동안 우크라이나에 단 한 개의 군사 지원 패키지만 제공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2023년 상반기 평균 대비 미국의 지원이 93.5% 감소했다는 것. 

미국의 월별 대 우크라 군사지원 추이/출처:스트라나.ua

당장 줄어든 게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20일 의회에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묶어 1,060억 달러의 추가 지원 자금을 요청했다. 이중 우크라이나에는 614억 달러 이상이 배정됐다. 미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이 지원안을 그대로 승인해줄 지 여부도 불투명하지만, 설사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내년 예산 규모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미 하원이 언제 이 지원안을 다룰 지도 기약이 없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지난 19일 1차 독회(讀會, в первом чтении)에서 2024년 예산안 초안을 채택했다. 세입 1조7천억 흐리브나(전년 대비 23.3% 증가)에 세출 3조3천억 흐리브나로, 재정 적자가 1조6천억 흐리브냐에 이른다. 써야 할 돈의 절반이 모자란다는 뜻이다.

국방 예산으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세출 자금의 절반 이상을 배당했으나,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초안보다 무려 4배 이상 많은 7조 흐리브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러시아가 전비로 연 대략 1,120억 달러를 쓰고 있는데, 우크라이나는 고작 400억 달러라니, 국방부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동안 미국과 나토(NATO)의 군사 지원으로 부족함을 메워왔는데, 미국의 군사 지원이 준다면 그 구멍을 어떻게 메꿀까? 

일반 예산항목에서도 우크라이나에게는 돈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크라이나 예산 조정에 관여하는 야로슬라프 젤레즈냐크 최고라다(의회) 의원은 21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미 백악관이 의회에 승인을 요청한 대우크라 지원금 614억 달러를 분석해 보면, 우크라이나 예산 지원 금액은 118억 달러"라며 "2024년 재정 적자 429억 달러 중 30%(128억 7천만 달러)가 미국에서 나와야 하는데, 10억 달러 이상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 부족분은 다른 국가에 의해 충당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확약받은 것은 없다"고 그는 밝혔다. 

세르게이 마르첸코 우크라이나 재무장관도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유럽연합(EU)의 재정 지원도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22일 "우크라이나는 독일에 52억 유로(약 55억 달러)의 군사및 재정 지원을 요청했으나, 독일의 2024년 예산안에는 40억 달러 정도가 배정됐다"며 "그중 군사 지원은 1억2천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옥사나 마르카로바/출처:페이스북 @oksana.markarova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도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에서 요청한 우크라이나 지원 자금의 대부분이 미국 자체의 군사적 필요를 충족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며 "군사 지원금 461억 달러 중 306억 달러는 미 국방부가 우크라이나로 보낸 무기들의 재고를 보충하는 데 사용된다"고 적었다. 

우크라이나에게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소식도 들려왔다.
스트라나.ua(9월 20일)에 따르면 미 백악관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월별 재정 지원을 11억 달러에서 8억 2,500만 달러로 줄일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백악관은 패트릭 맥헨리 하원 임시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 정부가 현재의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에 재정 지원을 계속하되, 국제통화기금(IMF)가 추산한 우크라이나의 2024년 재정 적자 규모(추정치)와 EU,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의 지원 규모를 감안해, 월별 지원을 줄이기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과 서방의 재정 지원이 줄면, 우크라이나 경제가 버티지 힘들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일부 서방 외신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 러-우크라 중 누가 먼저 경제적으로 손을 들 것인지를 두고 러시아 측과 논쟁을 벌여왔다. 전쟁이 20여개월째에 이른 지금, 러시아가 곧 경제적으로 파탄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달러화와 우크라이나 흐리브냐화/사진출처:kurs.com.ua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여건은 러시아와 다르다. 미 NYT는 "우크라이나의 경제는 서방의 도움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경제는 서방의 지속적인 자금지원으로 전쟁 상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뒤집어 말하면 서방의 지원이 주는 순간, 우크라이나 경제는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NYT는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우크라이나 경제(GDP)는 2022년 3분의 1로 위축됐으나, 올해 약 3.5% 성장할 것이라고 세계은행은 전망했다"며 "성장은 국내 소비 증가와 외국 지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습으로 무너진 도시의 인프라와 계속되는 재정 적자, 전쟁을 피해 탈출했거나 동원에 의해 부족해진 노동력 등 우크라이나 앞에는 엄청난 도전들이 놓여 있다"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현지 전문가들은 "대다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이 계속될 수 있고, 새로운 상황에서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민간 소비가 지난해 4분의 1 이상 감소한 뒤, 올해 5% 증가하는 등 전시 상황에 적응했다"고 주장했다. 한 국가의 전시 경제는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으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 한계는 분명히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