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회는 '전쟁 장기화'를 각오하고 있는가? 회의론도 솔솔..
우크라이나 사회는 '전쟁 장기화'를 각오하고 있는가? 회의론도 솔솔..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0.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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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장기화에 대한 피로감이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최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군은 후방에 있는 국민들이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 '너무나 안일하고 느슨하다'고 질타하는 영상 메시지를 올렸지만, 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군은 군, 우리는 우리"라는 일반인들의 영상이 더 인기를 끌면서 전쟁 장기화에 대한 '엇박자 현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쟁 장기화에 대한 사회적 각성 촉구는 당연히(?)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지난 8월 중순, 젤렌스키 대통령는 대국민 연설에서 "후방에서는 마치 전쟁이 끝난 것처럼 살고 있다"며 "자유와 독립은 전선에서 싸우는 누군가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뒤이어 우크라이나군 당국은 '느슨한 후방' 분위기에 분개하고, 전선에는 새로운 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제작해 올리고 있다. 정부 각 부처와 열성적인 자원봉사 단체들도 앞다퉈 "전쟁이 길어질 것이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싸워야 한다"는 호소문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회 분위기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가 25일 지적했다. 군(軍)의 절절한 호소에도 민(民)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이 매체는 이날 '사회적 합의의 변경. 우크라이나 사회는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느냐?'(Смена общественного договора. Готово ли украинские общество к долгой войне)는 제하의 기사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30년 이상 국가와 사회 간에는 독특한 관계가 맺어졌다. 무언의 '사회적 합의'다. 그 본질은 '우리는 당신을 방해하지 않고, 당신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는다', '어떤 문제든 해결된다', '국가가 원하면 우리에게 뭐든 요구할 수 있지만, 우리도 원하는 것만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합의는 틱톡(TikTok)에 올라온 인기 있는 영상 '율랴는 훔쳤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훔치도록 했다. 그리고 모두 정상적으로 살았다' (Юля воровала, но и людям воровать давала. И все жили нормально)에서 확인된다고 스트라나.ua는 주장했다. 기업가, 공무원, 보안군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기회가 되면 뇌물을 받거나 훔치고, 다른 사람들도 뇌물을 받든, 밀수를 하든, '피싱'을 하든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고 방식은 병역 의무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우리의) 영웅이고, 명예로운 존재이지만, 원하는 이는 전선으로 가고, 원하지 않으면 후방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를 장악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사고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그동안 '봄이 되면 크림반도에 진입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니, 기다리는 게 잘못된 생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작년에만 해도 사회적으로도 별 저항이 없었다. 백만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무기를 들고 전선으로 달려갔고, '영토 수복'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크림반도 해방'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병력 손실이 커지면서 폭력적인 강제 동원은 더욱 빈번해졌다. 그러다 보니, 후방에서는 바뀐 상황에 맞춰 군 등록 및 입대 사무소(군사위원회, 병무청 격)에 뇌물을 제공하고 동원을 피하게 된다. 동원을 원치 않는 이는, '어떤 문제든 해결된다'는 확신 하에 군사위원회에 뇌물을 건네면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우크라이나인이 이런 식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캡처2-우크라 동원 징집 사무소  porady.org.ua
우크라이나 군사위원회/사진출처:porady.org.ua

지난해 9월 러시아가 동원령을 발령하고 수십만 명의 예비군을 전선으로 보내면서 우크라이나의 사회적 합의는 삐걱거리기 시작됐다. 우크라이나도 더 많은 병력을 최전선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크림반도가 해방될 것'이라는 약속도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장기전 각오'라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우크라이나 정부와 오피니언 리더, 사회 전체가 지난 30년과는 다른 논리로 움직여야 한다고 스트라나.ua는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그들(국민)이 이를 원하는지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다면 군 수뇌부의 '장기 저항'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국가가 원하는 대로 하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러시아와의 평화협상,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내는 안을 위해 나설 수도 있다고 이 매체는 내다봤다.

실제로 그같은 우려가 조금씩 현실화되는 조짐도 보인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젊은 여성 타치아나가 틱톡에 올린 한 영상이 300만명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녀는 "우리는 출산 수당으로 860 흐리브냐를 받는데, 국가는 당신이 원해서 낳은 아기 출산에 왜 수당을 올려줘야 하느냐고 말한다"며 "내가 원해서 아기를 낳는다면, 그 아이가 왜 18년 후에 국가를 위해 싸우러 나가야 하느냐?, 그 아이가 대체 누구에게 빚을 졌는냐"고 분개했다.

틱톡에 올라온 한 젊은 여성의 영상과 댓글들/사진출처:스트라나.ua

그녀는 "계엄령은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라며 "국가가 전쟁을 시작했는데, 왜 그들(고위 관리)은 싸우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여기에 "그들의 자녀들이 복무하면, 우리 군대의 장비가 더 빨리 준비될 것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빚진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글쎄요, 우리는 푸틴 정권 하에 있게 될 것이고, 우리의 언어, 문화, 예술을 잃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는 댓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상은 '느슨한 후방'에 분노하는 우크라이나군의 호소와 대비돼 주목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사회 분위기도 전쟁의 장기화에 불안해 하는 모습이다.
스트라나.ua(10월 17일자)에 따르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쳤고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러시아와 용납할 수 없는 타협을 할 수도 있으며 △정치 지도자(대통령실)와 군부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믿는다는 여론이 지난 1년간 크게 늘어났다.

키예프 사회학 국제 연구소(KIIS,Киевский международный институт социологии)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지도가 약화됐다'는 응답은 30%로, 1년 전의 15%에 비해 갑절이나 됐다. 또 1년 전에는 응답자의 5%만이 우크라이나 당국이 러시아와 용납할 수 없는 타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었으나, 올해는 12%로 늘어났다. 정치 지도자와 군부 사이의 갈등을 믿는 응답자도 32%로, 지난해14% 보다 크게 늘었다.

키예프 사회학 국제 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우크라 당국이 러시아와 용납할 수 없는 타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지난해 5%에서 7%로, 올해(맨 오른쪽 그래프)에는 12%로 늘어났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물론, 이같은 답변은 여전히 소수에 그쳤지만, 위기(전시) 상황에서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우크라이나인의 심리를 감안하면, 무시하지 못할 비율이라고 스트라나.ua는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스트라나.ua는 지난 26일 키예프 사회학 국제 연구소의 조사를 인용,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지난 7개월 동안 8% 줄었다고 전했다. 사회학 국제 연구소에 따르면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비교적 지지한다'는 응답이 지난 2월 90%에 달했으나, 이제는 82%로 줄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7%에서 16%로 늘어났다. 지난 9월 4~20일 2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변화. 지난해에는 전적으로 지지와 비교적 지지가 90%를 넘겼으나, 올 9월에는(제일 위 그래프) 82%로 줄었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16%에 이르렀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전쟁 장기화에 대한 서방 진영의 피로도가 커지고, 하마스-이스라엘 충돌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저 관심과 지원 여력을 빼앗아가는 상황에서, 장기전을 머뭇거리는 일부 우크라이나 여론은 젤렌스키 대통령 등 지도부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위기감을 안겨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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